[독자투고] 장석춘 (서울 노원프레미어스엠코아파트)

오리 모양 그림을 90도로 돌려보면 토끼 모양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원뿔형 도형은 옆에서 보면 세모로 보이고, 위에서 보면 원 모양으로 보입니다. 몇주 전 대통령 선거를 하면서 평소에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이나 사회 네트워크 서비스(SNS) 친구들과 소통을 하며 정치적인 견해가 서로 다르다는 걸 느꼈습니다. 이번 대통령 선거는 당락이 단 0.8% 차이로 갈렸다는데, 선호하는 후보에 대한 견해도 전체 투표자의 반반으로 나뉘는 셈입니다.

그렇다고 나와 동일한 후보에게 투표하지 않은 사람들을 ‘틀렸다’고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다만 내가 선호하는 후보에 대한 가치기준과 내가 선호하지 않은 후보에 대한 그것이 서로 다를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것’과 ‘틀린 것’을 구분해야 하는 것입니다.

친한 친구 두 사람이 더운 여름에 오랜만에 만났습니다. 한 친구는 일찍 결혼해 아이 두 명을 데리고 나왔습니다. 한 아이는 걸리고 한 아이는 업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다른 친구는 아직 미혼으로 아주 깔끔하고 단정하게 꾸미고 나왔습니다. 미혼인 친구는 아이 둘을 걸리고 업고 나온 친구를 보면서 “이 친구는 이렇게 더운 날에 아이 둘을 키우느라 참 고생이 많구나”라고 혼자 생각 합니다. 그러나 만약에 아이 둘을 키우는 친구에게 이런 말을 한다면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이렇게 귀여운 아이를 키워보지도 않은 네가 어떻게 그걸 알겠느냐?”라고 말입니다.

우리는 종종 나하고 생각이나 상황이 다른 사람을 대할 때에 “저 사람은 틀렸다”고 단정하곤 합니다. 우리는 틀린 것과 다른 것을 구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전에서 보면 ‘다름’은 ‘비교가 되는 두 대상이 서로 같지 않음’을 말하며, ‘틀림’은 ‘셈이나 사실 따위가 그르게 되거나 어긋남’을 말한다고 돼있습니다.

사람들에게 ‘+(플러스)’가 그려진 카드를 보여주면 수학자는 ‘덧셈’이라고 하고, 신부나 목사는 ‘십자가’라고 합니다. 교통경찰은 ‘사거리’라고 하고, 간호사는 ‘적십자’라고 하고, 약사는 ‘녹십자’라고 한답니다. 모두가 다 자기의 입장에서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내가 본 것만을 생각하고 말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각각 다른 사람이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를’ 뿐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비판의 대상이 아니라 이해의 대상입니다.

제가 전에 살던 아파트에서 2년간 입주자대표회장을 맡은 적이 있습니다. 저는 2년간 입대의 회의를 할 때 단 한 건도 다수결로 안건을 처리하지 않고, 전원 찬성으로 의결을 했습니다. 그게 어렵다고요? 아닙니다. 가능합니다. 아파트의 발전을 위해 하는 일들을 동대표들이 서로 소통하고 이해하고 배려한다면 안 될 일이 없습니다. 오히려 민주주의의 보편적인 의사결정수단인 다수결 처리는 ‘다수결의 함정’이라고, 의안 처리에 반대한 소수의 협조를 구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제 대통령 선거는 끝났습니다. 내 친구나 이웃이 어느 누구를 찍었던 그 사람의 선택을 존중해 줘야 합니다. 그리고 아파트의 의사결정도 가능하면 상대방의 입장과 전체적인 발전을 위해 경청하고,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고, 서로서로 배려하는 더불어 행복한 아파트를 만들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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