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지법 판결

[아파트관리신문=고경희 기자] 아파트 경비용역계약이 4개월 만에 해지되면서 입주자대표회의가 경비업체에 퇴직적립금을 반환하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에서는 업체의 결격사유로 계약이 해지됐으므로 퇴직적립금을 반환해야 한다며 대표회의의 손을 들어줬으나, 2심은 이 계약이 도급계약인 점을 들어 반환의무가 없다고 판단했다.

대구지방법원 제1민사부(재판장 이영철 부장판사)는 최근 대구 동구 A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가 이 아파트 경비업체 B사를 상대로 제기한 부당이득금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피고 B사는 원고 대표회의에게 1476만여원을 지급하라”는 1심 판결을 취소하고 대표회의의 청구를 기각하는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경비업체 B사는 2017년 12월 A아파트 대표회의와 경비용역계약을 체결하고 2018년 1월부터 경비용역업무를 수행해 왔다.

B사는 계약에 따라 A아파트의 경비용역업무를 수행하면서 매달 경비비를 청구했는데 여기에는 경비원의 1년치 퇴직금을 12개월로 나눈 퇴직적립금도 포함돼 있었다.

대표회의는 경비용역업체 입찰 참가자격을 ‘최근 3년간 법인이 행정처분을 받은 사실이 없는 업체’로 제한하고 있었음에도 B사가 과거 3년간의 사실확인원이 아닌 1년 5개월간의 사실확인원을 제출했다는 이유로 2018년 5월 계약을 해지했다. 이에 따라 B사는 더 이상 경비용역계약에 따른 업무를 수행하지 않았다.

2018년 8월 대표회의는 B사에 ‘경비용역계약이 2018년 5월 해지됐으므로 지급한 경비비 중 2018년 1월부터 5월까지의 기간 동안 경비원 퇴직적립금에 해당하는 1476만여원을 반환하라’는 서면을 발송했다.

대표회의는 “퇴직적립금 지급은 경비원의 1년 이상 근무를 전제로 하는 것인데 B사는 불과 4개월 만에 경비용역업무를 그만두게 됐으므로 퇴직금이 발생할 여지가 없어 B사는 용역비 중 퇴직적립금 명목의 돈을 부당이득으로 반환할 의무가 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반면 경비업체 B사는 “경비용역계약은 B사가 월 용역비 한도 내에서 자기의 책임 하에 각종 경비를 부담하기로 하는 총액도급계약이므로, 퇴직적립금을 지출하지 않고 보유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부당이득을 취한 것이 아니므로 대표회의의 청구에 응할 수 없다”고 반론했다.

이에 대해 1심 재판부는 “이 사건 경비용역계약은 피고 B사의 결격사유로 체결 후 4개월 만에 취소돼 근로자의 퇴직금 채권이 발생할 여지가 없으므로 피고 B사는 원고 대표회의에 이를 반환해야 한다”면서 대표회의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경비업체 B사는 이 같은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를 제기했고 2심 재판부는 1심 판결을 뒤집었다.

2심 재판부는 “피고 B사가 경비용역업무를 수행한 기간 동안 원고 대표회의로부터 받은 용역비 중 일부를 반환해야 하는지 여부는 계약의 성격에 따라 정해진다”며 “이 사건 경비용역계약은 용역대금을 총액으로 계약해 피고 B사가 계약에서 정해는 용역비의 한도 내에서 자기의 책임하에 각종 경비를 부담하기로 하는 도급계약”이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경비업체 선정공고에는 퇴직금, 연차, 4대 보험을 100% 산출해 임금을 산정하도록 돼 있고 월별 각 직무별 1인당 및 전체 인원에 대한 산정내역이 명기된 산출내역서를 제출하도록 돼 있으나 산출내역서가 경비용역계약 계약서의 일부로 포함되진 않았다”며 “산출내역서는 경비용역계약의 내용이 아니라 용역비를 결정하기 위한 기초자료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또한 재판부에 따르면 경비용역계약서는 제목을 ‘경비용역 도급계약서’로 하고 서두에 도급계약임을 명시하고 있으며, 계약서는 ‘퇴직금 등 직접노무비와 국민연금보험료 등 간접노무비, 피복비 등의 제경비 이외에 일반관리비, 기업이윤 등을 포함한다. 다만, 국민연금보험료 및 고용보험료는 실비정산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B사에 지급하는 경비비는 계약기간 중 변경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어 대표회의는 이러한 기준에 따라 국민연금과 고용보험료만 피고 B사의 실 지급액을 기준으로 정산한 다음 총 용역비를 지급해 왔다.

아울러 계약서에는 경비원이 업무수행 중 발생한 손해에 대해 B사가 손해배상을 하고 B사가 경비원을 선발해 배치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반면, B사는 경비원의 인사에 관한 사항 중 채용, 징계에 관한 사항을 대표회의에 서면 통보하고 경비운용과 지휘·감독 권한을 쌍방이 갖는다고 돼 있다.

재판부는 “이 규정은 도급조건에 수반될 수 있는 원고 대표회의의 일반적 권한에 불과할 뿐 위임계약을 전제로 한 원고 대표회의의 개별 경비원들에 대한 직접적, 구체적인 통제·관리권한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고 꼬집었다.

이어 “원고 대표회의가 피고 B사로부터 경비용역계약 내용에 따라 지급받은 용역비는 피고 B사의 실 지급액을 기준으로 한 정산을 전제로 하는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용역비에 퇴직적립금이 포함돼 있고 피고 B사가 경비용역업무를 수행한 기간이 1년 미만에 해당돼 퇴직금 지급사유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해서 피고 B사가 법률상 원인 없이 부당이득을 취했다고 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대표회의는 ‘B사의 귀책사유로 인해 경비용역계약이 무효 또는 취소됐으므로 퇴직적립금을 반환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피고 B사가 제출한 행정처분 유무 사실확인서가 진실한 이상, 기간의 장단에 대해서는 피고 대표회의가 검토해야 할 사항이지, 피고 B사가 기간을 축소한 사실확인원을 제출했다고 해서 피고 B사가 원고 대표회의를 기망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경비비는 매월 일정 금액을 지급하는 것으로 정해져 있어 피고 B사가 제공한 4개월의 경비용역에 한해서는 일의 완성에 이르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일축했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원고 대표회의의 청구는 이유 없으므로 이를 기각하고 1심 판결은 이와 결론을 달리 해 부당하므로 피고 B사의 항소를 받아들여 이를 취소한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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