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 '다산신도시 택배 분쟁' 그 이후/ '실버택배' 무산 뒤에도 공방 이어져

지하주차장 높이제한 여전, 차도·보도 구분 안돼
지상공원화단지가 가진 한계에도 주목

택배기사가 다산신도시 아파트에서 물류 배송을 하고 있다. <남양주=이인영 기자>

[아파트관리신문=이인영 기자] 이른바 ‘다산신도시 택배 갑질 행태’로 알려진 지난 21일 경기 남양주시의 자연앤이편한세상아파트에서는 평상시와 다를 바 없이 택배 배송이 이뤄지고 있었다.

이 날 2명의 택배기사는 물건배송을 위해 아파트 입구에 마련된 지상주차장에 차량을 주차하고 물건을 하차, 동별로 나열해 분류했다. 이후 핸드카트(끌차)에 물건들을 싣고 각 동별로 배송을 시작했다.

다산신도시 택배분쟁은 지난달 7일 후진하던 택배차량을 보지 못한 어린이 2명과 부모가 치일 뻔했고 이후 이 아파트는 단지 인도의 택배차량 진입 금지를 결정, 아파트 측은 단지 내 보행자 안전을 위해 택배차량의 높이를 낮춰 지하주차장을 이용하도록 요구했으나, 택배사는 차량 개조 비용 문제, 택배기사 작업 불편 등을 이유로 택배차량 높이를 낮추는 것은 곤란하며 지상 주차장 진입 허용이 필요하다는 입장이 대립됐다.

하지만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명품아파트를 만들기 위해 단지 내 택배차량 출입을 금지한다’는 이 아파트 공고문 사진이 올라오면서 다산신도시에서 갑질을 한다며 논란이 시작됐다. 급기야 택배사가 물건 배송을 거부한다며 단지 도로에 택배물건을 쌓아둔 사진도 보도돼 이 아파트 택배분쟁 논란은 일파만파 퍼졌다.

이 아파트에 부착된 저상차량 이용 안내 현수막. <남양주=이인영 기자>

“주민 안전 위해 어쩔 수 없어” VS “택배차량만 거부…이기주의”

이번 택배차량 출입거부 사태에 대해 이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는 입주민들의 보행 안전을 위해 어쩔 수 없었다는 입장이다.

관리소 관계자는 “관리사무소에서는 무엇보다 중요한 게 주민들 안전”이라며 “주민 통행을 비롯한 관리소홀로 인한 사고 발생 시 관리주체에 책임이 있기 때문에 더욱 안전에 유의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이 아파트 입주예정자총연합회는 지난 20일 연합회 인터넷 카페에 공식입장이라며 올린 글에서 ‘택배논란이 커진 후 사태해결의 조기수습을 위해 택배사와 협의를 진행, 입주민 안전을 위해 인도에 택배차량이 출입하지 않고 저상차 운행, 실버택배, 롤테이너 활용 등 대안을 제시했지만 CJ대한통운이 거절했다고 밝혔다. 저상차 개조 비용을 분담하더라도 택배기사는 개인사업자이기 때문에 택배기사가 그만두면 저상차 운영을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 택배사의 답변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던 중 국토교통부에서 중재를 한다며 협의를 요청해 참여했고 여기에서도 비영리단체와 같은 사회적 기업을 만들어 자발적으로 거점택배를 운영하겠다고 이야기 했다며 이때 CJ대한통운이 실버택배를 제안했는데, 이후 국민청원이 시작돼 여론이 악화되자 실버택배를 할 수 없다며 다시 협의하자는 통보를 해왔다고 말했다.

이어 실버택배 제안을 받았을 뿐인데 모든 비난은 다산신도시로 향했다며 총연합회는 아파트 내에서 사람이 다니는 인도에는 차량의 진입을 허용할 수 없고 대신 인도에 차량만 진입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대안도 협의할 의사가 있다고 전했다.

관리소 관계자는 “이 단지는 어린이들이 많아 수시로 단지 내 통행이 이뤄지고 있다”며 “관리소 취지와 달리 많은 언론에 갑질행태로 보도돼 씁쓸하다”고 말했다.

반면, 이 아파트에 택배배송을 하고 있는 CJ대한통운은 주민 안전을 위해 택배차량 출입을 거부한다는 아파트의 측의 입장에 이기주의라며 반박했다.

한 택배기사는 “이사차량, 오토바이, TV 등 기타 물건배송차량, 소방차 등도 단지 내 출입을 허용하고 있는데 유독 택배차량에 대해서만 안전을 이유로 거부하고 있다”며 “안전을 이유로 단지 내 출입을 제지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이 아파트의 경우 현재 제1기 입주자대표회의 구성을 위한 동대표 선거를 진행하고 있는데, 입주예정자들이 만든 인터넷 카페 ○○총연합회에서 활동하는 사람 중 동대표 후보로 나오는 사람들이 공약으로 내건 것이 택배차량 출입 제한이었다며 자신들의 뜻을 관철시켜 입주민들의 지지를 얻고 동대표로 당선하고자 하는 이권개입이 있기 때문이지 안전문제로만 제지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또한 “별내, 진접 등 이 근처 신도시 단지들 모두 비슷한 구조임에도 배송 불편 이유로 택배차량의 단지 내 출입을 허용하고 있는데 유독 이 단지만 거부하는 것은 이기주의”라며 “안전을 이유로 택배차량의 출입을 거부해 당초 택배사에서 오후 6시 이후 시간을 정해 출입하는 절충안을 협의안으로 제시했는데 아파트에서는 이마저도 거부했다”고 말했다.

또 택배기사들이 직접 배송을 거부했다는 것에 대해 “배송물건에 대한 분실·파손 책임은 택배사에 있다”며 “고객의 물건을 잃어버리면 택배사가 변상을 하게 돼 있는데 물건을 바닥에 두고 갈 리가 있겠느냐”며 원활한 배송을 위해 동별 분류작업을 한 것을 일부 언론사에서 사진을 찍어 보도한 것이라며 사실이 아니라고 일축했다.

단지 내 어린이들이 다니고 있다. <남양주=이인영 기자>
단지 입구에 안내된 2m 이상 차량 지하주차장 진입금지 표시. <남양주=이인영 기자>

지상공원화단지…지하주차장 높이기준 2.3m
지하주차장에 설치된 ‘무인택배함’ 무용지물

지난해 12월 22일 사용승인 돼 지난 1월부터 입주를 시작한 이 아파트는 지상공원화단지로 설계됐다.

지상공원화단지는 지상에 차량 통행을 저지해 소음과 매연을 줄이고 조경시설을 확대, 쾌적한 주거환경을 조성하고자 최근 신축되는 단지들에 구현되고 있는 설계방식이다. 이에 따라 이 아파트 지상주차장은 정문입구에만 소량 배치돼 있다.

하지만 차 없는 단지 실현을 위한 지상공원화단지 추세와 달리 아파트 지하주차장 높이기준은 주차장법 시행규칙이 제정된 1979년 8월 4일부터 여전히 2.3m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이에 지난 18일 국토교통부는 건설예정단지들에 대한 도시계획상 제도개선 방안을 논의했다. 아파트 단지 조성 도시계획 시 택배차량이 정차 및 하역작업을 할 수 있게 도로에 '택배차량 정차공간(Bay)'의 설치 기준을 마련하고, 단지 내에 '택배물품 하역 보관소'를 설치·유지할 수 있도록 주민공동이용시설로 명문화하며, 지상부 공원화단지로 설계할 경우에 있어서는 2.7m 이상의 높이로 상향조정 하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마저도 추가 공사비 및 분양가 상승 등에 가로막혀 확실치 않은 상황이다.

또한 택배분쟁으로 문제가 된 다산신도시 이 아파트의 경우 무인택배함이 지하주차장에 설치돼 있어 저상차량을 제외하고는 애초에 택배차량이 지하주차장까지 출입할 수 없었다.

더욱이 지상공원화단지는 차도와 보도의 구분이 없는 형태로 설계돼 이를 인도로 볼 것인지도 문제가 되고 있다. 주택건설기준에 의하면 소방차 출입을 위한 사유지 내의 통로는 소방도로로 보고 있다.

이번 사안에 대해 울산대학교 생활과학연구소 권명희 연구원은 택배차량이 후진하다가 사고 날 상황이고 자녀가 있는 부모라면 마음이 가지 않을 수 없는 아찔한 상황이었다고 공감하면서도, 단지 내 보행자 안전을 위해 아파트 자체에서는 택배차량 하역공간을 마련하고 택배차량이 입차 동시에 경보알림장치 및 안전표지판 설치, 경비원 감시 역할 등 안전감시시스템 프로그램이 부재했다고 지적했다.

권명희 교수는 "지상에 택배차량 통제를 하는 것이 사고방지책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라며 "만일 ‘지상에 차 없는 단지’에서 택배기사가 물건 배송을 위해 지하주차장을 이용한다고 해서 이런 사고가 없다고 단정 할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사전적 개념으로 최고의 품격과 가치란 인간과의 관계에 의해 지니는 중요한 것으로 품위와 격식이 높음을 의미하는데, 우리가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하는 것이 아파트 품격보다는 사람의 인격이 우선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지상은 모두 공원처럼 꾸미고, 차들은 지하도로 및 지하주차장을 통해서만 다닐 수 있게 ‘지상의 차 없는 아파트’의 좋은 취지가 조금씩 왜곡되어가는 안타까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어 진정한 품격과 가치를 가진 아파트의 의미를 살리기 위해 관리사무소, 자치회장, 부녀회장 등 머리 맞대고 하루빨리 아파트 주민들의 요구를 만족시키면서 택배기사들도 편하게 일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시급하다“며 ”택배전달의 새로운 방식으로서 단지 차원에서 현실적 대안으로 별도의 하역공간과 이동경로 등을 마련하거나 기술적 차원에서는 무인택배시스템 또는 높이 조절 가능한 차량 개발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한편 다산신도시 자연앤이편한세상아파트는 28일까지 동대표 선거 절차를 거쳐 제1기 입주자대표회의 구성을 마치는 대로 택배 문제 해결을 위한 협의안을 도출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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