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주택 층간소음' <8> / 표승범 공동주택문화연구소 소장

표승범 공동주택문화연구소 소장

우리나라 최초의 아파트는 일제강점기 서울 충정로에 세워진 유림아파트다. 일본 기업의 직원 숙소용으로 지어 지금은 남아있지 않지만 다음해 같은 목적으로 지어진 충정로의 충정아파트는 아직까지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아파트다.

해방 후 최초의 아파트는 지난번 칼럼에 소개했듯이 고려대학교 안암캠퍼스 담벼락을 따라 지은 종암아파트다. 3개동 152가구가 언덕을 따라 계단식으로 지어진 이 아파트는 전통적으로 우리 민족이 선호하는 남향으로 뒤에는 산, 앞에는 개천이 흐르는 배산임수형의 풍수지리를 담고 있었다. 주거 최초로 수세식 화장실을 집안에 설치한 문명화된 고급 아파트로 독일에서 설계하고 미국의 자본을 받아 국내기술로 건설이 됐다. 그래서 입식구조와 좌식구조가 조화롭게 공존한 한국형 아파트의 특징을 갖는다.

마포아파트

이렇게 시작된 대한민국 아파트의 역사는 1960년대 마포아파트의 건설과 함께 본격적인 아파트의 시대로 접에 들었다. “혁명한국의 상징이 되길 바란다”라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준공식 연설에서도 알 수 있듯이 마포아파트는 한국의 경제성장과 함께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지금의 아파트인 단지형 개념을 최초로 시도한 아파트였다. 단지 내에 공원과 녹지, 놀이터, 운동장 등 입주민을 위한 공공시설을 갖췄으며 최초로 엘리베이터와 중앙공급식 난방으로 설계가 됐으나 자본 부족과 주변지역 주민의 여론에 밀려 포기하게 된 비운의 아파트이기도 했다. 이로 인해 연탄을 이용한 개별난방으로 준공된 후 연탄 가스가 샌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자 관리소장이 직접 1박을 하며 안전하다는 증명을 하던 웃지 못 할 에피소드가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영화촬영장소로 빈번히 소개가 되며 고급주택의 대명사로 유명세를 톡톡히 탔다.

압구정 현대아파트

1970년대 본격적인 강남 개발과 함께 고급 민영아파트의 건설이 본격화되면서 많은 재벌기업의 탄생과 강남스타일이라는 빈부의 차이를 가져오게 된 배경이 됐다. 층간소음의 원인 중 하나인 벽식구조의 설계로 대단지 아파트 공급이 가능해졌으며 이로 인해 저렴해진 건설 비용대비 높은 분양가는 많은 건설회사가 생기는 배경이 됐고, 이로 인해 한강의 기적과 같은 고도 경제성장의 견인차가 되기도 했다. 그중의 으뜸은 단연 압구정 현대아파트일 것이다. 제3한강교 옆 현대건설이 경부고속도로 건설기자재를 쌓아두던 모래밭에 건설된 압구정 현대아파트는 현재까지도 부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세운상가 공사현장

마지막으로 빼놓을 수 없는 아파트는 최초의 주상복합아파트인 종로 세운상가아파트다. 중구청 6급 공무원의 아이디어로 시작된 대형프로젝트인 이 건축물은 청계천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이 일대 무허가 판자촌 시민들을 성남으로 대거 강제 이주시키며 시작됐다. 현대를 비롯한 여러 건설사가 공동으로 진행한 대규모 건설 사업은 획기적인 설계와 규모로 아직도 서울의 역사적 상징물로 남아 있다.

세운상가 전경

이렇게 발전해 온 반세기 대한민국 아파트의 역사는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으로 전 국민의 대다수를 불러 모으며 발전하게 됐다. 이제 우리의 아이들은 아파트 사이로 지는 노을을 보며 고향을 떠올리게 됐다. 그것도 오랜 추억과 소중한 기억이 남아 있는 삶의 터전이 아니라 언제든 떠날 수 있는 나그네의 삶, 유목민의 삶으로 말이다. 그런 삶엔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기가 어렵다. 그래서 층간소음을 포함한 공동주택의 다양한 분쟁은 갈수록 더 심각해 질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다음시간엔 갈수록 심각해지고 다양해지는 층간소음을 포함한 공동주택에서의 갈등에 대해 ‘층간소음에서 층간분쟁으로’라는 제목으로 이야기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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