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명 주택의 기술적 기저에는 서포트와 인필의 분리가 있다. 공동주택을 구성하는 요소는 수명이 길고 공공의 의사에 따르는 구조체, 공용공간, 공용설비 등의 부분인 서포트(Support)와 수명이 짧고 개인의 의사에 따르는 내장이나 전용설비 등의 부분인 인필(Infill)로 분류한다.

김수암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김수암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장수명 주택은 서로 다른 두 가지의 성격을 가진 서포트와 인필의 조합이며, 이 두 가지가 서로 다른 성격으로 인해 각각의 특성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있도록 구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까지는 서포트와 인필이 혼합돼 있고 전유부분과 공용부분, 타 세대에 걸쳐 별도로 구분 없이 설계·시공하고 사용해 왔다. 그러다 보니 수명이 짧은 설비가 구조체 속에 매설되거나 윗집 화장실 오배수 배관이 아랫집 천장 속에 있고 전기배선이나 기계설비 배관의 점검, 유지관리가 어렵게 돼 수명이 단축되거나 사용상의 문제점이 노출돼 왔다. 내장도 온돌층 속에 매설되거나 내장자재나 부품이 설비될 때 상호 간섭이 일어나고 유지관리, 수선, 리모델링할 때 구조체나 내장의 손상을 초래해 재사용이 어렵거나 쓰레기의 대량배출의 원인이 됐다. 사용자가 라이프 스타일이나 라이프 사이클 변화, 이사 등을 통한 사용자 변화에 따른 공간변화 등을 필요로 해도 쉽게 이뤄질 수 없는 구성이었다. 이러한 한계점을 줄이거나 없앤 것이 장수명 주택이다.

장수명 주택은 구조체 등과 같은 서포트를 손상하지 않고 내장이나 설비를 교체하거나 가족구성변화와 요구변화에 따라 공간구성을 변경할 수 있도록 설계·시공된 주택이다. 구조체를 유지하면서 시대와 요구변화에 따라 인필의 변화·교체를 함으로써 장기간 기능과 성능이 저하되지 않고 사용할 수 있는 거주자 맞춤형 주택이 되는 것이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구조체의 수용 가능한 설계를 바탕으로 한 내장과 설비부품이다. 물을 사용하지 않고 시공하는 건식공법의 내장으로도 접합부의 설계를 하면 인접하는 자재나 부품에 손상을 가지 않게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정도로는 가변성 실현에 한계가 있다. 보다 쉽게 생활변화를 수용하고 가변적인 공간구성과 더불어 구조체에 손상을 주지 않고 벽체·바닥·천장 등 인접하는 부재, 부품에 손상이나 파손을 초래하지 않기 위해서는 내부공간을 구성하는 구성재가 기존과는 다른 고안이 이뤄져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주택은 세대내부를 기준으로 볼 때 철근콘크리트 내력벽과 외벽을 시공하고 나면 공간의 구획과 구성은 문과 창문을 달면 끝이 난다. 나머지는 부엌과 화장실의 설비 설치, 천장반자와 바닥 온돌층의 시공, 그 다음은 마감이다. 마감은 바닥과 벽과 천장을 어떤 재료로 미적인 효과를 낼 것인가에 달려있다. 이처럼 주택건설산업이 구조체와 인테리어 마감 중심이었다고 하면, 장수명 주택을 기반으로 하는 주택산업에서는 구조체를 중심으로 하는 서포트 산업, 내장과 설비 등을 중심으로 하는 주택 내부공간 구성에 필요한 인필산업, 그리고 마감을 위한 인테리어 산업으로 재편될 수 있다. 지금까지 애매하게 구조체와 인테리어 사이에 위치해 있던 인필이 새로운 마켓을 창출하는 산업으로 전개될 수 있는 가능성과 잠재성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인필 부품으로 현재 시판되고 있는 위생도기, 세면기, 욕조 등의 화장실용 부품, 부엌용 부품, 조명을 중심으로 하는 전기용품, 문과 창문 등을 중심으로 하는 창호부품 등은 앞으로도 지속되고 여전히 필수부품으로 존재할 것이다. 나아가 이들 단독 혹은 개별부품이 좀 더 복합화 혹은 집적돼 하나의 유니트로 구성되는 화장실 유니트, 시스템 키친과 같은 부품의 진화가 필요하다. 현재 시스템 키친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지만, 조립식욕실(UBR)은 재료나 구성면에서 한계를 보이고 있다. 층상배관배수시스템 및 환기시스템과 벽체가 조합된 시스템화 된 화장실 유니트도 새롭게 선보일 필요성이 있는 부품유니트 및 시스템이며, 가구와 벽체의 결합, 패널형 가동칸막이벽체 부품 및 시스템도 새롭게 전개돼야 할 부품이다. 바닥 역시 현재는 건식온돌바닥시스템, 2중바닥과 결합한 온돌바닥시스템의 개발은 진행돼 있으나 성능과 비용측면에서 보급에는 한계가 있어 분명 지향해야 할 인필 시스템이다. 천장시스템 또한 아직 구체화돼 있지 않다. 이러한 벽과 바닥, 천장을 구성하는 부품 외에도 설비부품과 복합된 시스템 천장, 문과 설비의 복합, 벽체와 설비의 복합 등 기존 부품의 융·복합 부품도 새로운 인필부품 영역으로 자리 잡을 필요성이 있을 것이다. 장수명 주택의 보급은 이러한 인필영역의 발전과 새로운 산업의 가능성을 견인할 수도 있다. 장수명 주택의 서포트와 인필의 분리로 인해 새로운 산업이 창출되면 그만큼 일자리도 늘어나고 주택의 성능도 향상될 것이다. 우리가 장수명 주택의 실현을 기대하는 까닭이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
김수암 선임연구위원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아파트관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