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길익 소장의 조경더하기 52

‘히어리’. 영어 같기도 불어 같기도 한 이 이름은 도대체 어디서 왔을까? 1960년대 초 식물조사단이 순천 일대를 훑고 있을 때 마을 사람들의 흥얼거리는 노랫가락에서 찾았다는 것이 믿을만한 이야기다. 그때 들었던 ‘뒷동산 히어리에 단풍 들면 우리네 한해살이도 끝이로구나’라는 노랫말이었는데, 일본인 식물학자가 붙인 이름 ‘송광납판화(松廣蠟瓣花)’를 가리켜 히어리라 불렀던 것이다. 송광사 가까운 데서 발견한 밀랍 같은 꽃, 송광납판화가 순우리말 히어리로 탈바꿈하는 순간이다.

따사로운 햇살과 살랑거리는 봄바람이 겨울잠 자는 수목들을 간지럽힌다. 간지럼을 참지 못한 녀석들은 이내 입고 있던 외투를 벗어 던지며 속살을 드러내는데 요즘 우리가 관리하는 아파트 단지의 풍경이다. 일찌감치 겨울잠에서 깨어난 영춘화, 풍년화, 납매가 오늘의 주인공인 히어리와 함께 기지개를 켠다. 히어리는 전형적인 선화후엽(先花後葉) 수종으로 지금 같은 3월 중순이면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하는 봄의 전령사로서 우리나라에만 자라는 작은 꽃나무다.

꽃

조록나뭇과(科)의 히어리(Korean Winter Hazel, 송광납판화(松廣蠟瓣花), 송광꽃나무)는 넓은잎 작은키나무로서 사람 키 정도까지 자라며 줄기는 여러 갈래로 갈라져 포기를 이룬다. 이른 봄 잎도 채 나오기 전에 노란 벌집처럼 생긴 꽃들이 피는데 늘어진 가지에 하나씩 달려 피는 개나리와는 달리 여러 개의 작은 꽃들이 가지마다 올망졸망 한 데 매달려 드리운다. 그 모습이 초롱 같기도, 고깔 같기도 하고 포도송이 같다고나 할까? 처음 마주하는 아낙네라면 그 화사하고 앙증맞은 꽃송이를 귀에 걸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

단풍
단풍
잎

히어리는 이른 봄에 잎보다 먼저 피는 노란 꽃이 화사할 뿐만 아니라 가을철 둥근 잎에 노랗게 물드는 단풍도 아름다워서 조경수, 정원수, 분재로도 인기가 높다. 그래서 요즘 짓는 아파트 단지에는 어김없이 이 수목이 등장해 겨우내 목말랐던 입주민의 갈증을 풀어주는 데 이름값을 톡톡히 한다. 다만 잘못된 조경업자들의 요란한 기계톱 소리와 함께 싹둑싹둑 잘려 나가는 통에 풍성한 꽃을 기대하기 어려운 곳도 있다. 꽃이 지고 난 뒤 맺기 시작하는 열매는 가을이면 긴 돌기에 여러 개 씨방이 여물어 벌어지면서 새까만 씨가 나온다.

햇열매
햇열매
수피
수피

10여 년 전 인천의 월미산자락에서 처음 마주했던 히어리를 잊지 못한다. 나지막한 키에 잎도 나지 않은 가지마다 주렁주렁 매달려 있던 노란 꽃송이! 신통방통하게 생긴 꽃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오늘따라 히어리라는 순우리말이 더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우리 모두 지나친 외국어는 자제해야겠다.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외국어는 오히려 자신의 격을 떨어뜨릴 뿐이다. 정신 차리자! 세종대왕님이 영릉에서 벌떡 일어나시기 전에···.

※ 관리 포인트
- 경기 포천시 백운산에서 자생지가 발견됨에 따라 추위에 강한 것으로 알려져 어디서나 심어 기를 수 있다.
- 배수가 잘되는 약산성인 토양을 선호하므로 습기가 많은 곳은 피하는 게 좋다. ​
- 특별한 병충해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바람이 잘 통하는 양지나 반그늘에서 잘 자란다.
- 뿌리가 깊게 자라므로 뿌리 주변에 물을 공급하는 것이 중요하다.
- 번식은 가을에 씨앗을 받아 한데 묻어뒀다가 이듬해 봄에 씨를 뿌리면 발아율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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