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섭의 온고지신의 조경문화〈2〉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창덕궁(昌德宮)은 조선시대 다른 궁궐과 다른 모습을 지녔는데 이를 통해 도심 속 자연친화적인 전통 조경 조성 노력을 살펴볼 수 있다.

창덕궁은 입지 선정은 전통적인 풍수지리사상을 택했으나 건축물은 유교적인 이념에 따른 상징적 기능을 하는 모습이 보인다. 정국인 경복궁(景福宮)은 평탄 지형 위 남북 일직선 중심축을 기준으로 한 배치한 것에 반해 창덕궁은 궁궐 서남쪽 모퉁이의 정문(돈화문) 진입로에서 직각으로 두 차례 방향을 틀어야 정전에 도달할 수 있는 구조다.

돈화문
돈화문

특히 정원적 특징은 다른 궁궐들과 다르게 언덕 지형에 위치해 풍수지리 사상에 따라 불규칙한 지형과 지세를 그대로 순응해 만들어졌다. 이러한 창덕궁은 자연지형과 기존의 나무를 존중하면서 궁궐 건축의 배치와 구성을 창조적으로 변형한 사례 중 탁월한 것으로 꼽힌다.

경내 남쪽에 궁궐 건축물들을 배치했고, 북쪽 넓은 구릉 지역에 후원을 조성해 자연지형을 이용한 건축물을 세웠기 때문에 기존 궁궐 건축의 전형적인 격식에서 벗어나 주변 환경과 뛰어난 조화미를 이루고 있다. 이 가을의 정취를 한껏 느끼고 싶으면 조경 및 정원적인 요소가 조화로운 창덕궁 후원을 추천한다.

성정각(誠正閣) 일원에서 창경궁과 경계를 이루는 담을 따라 오르면 왕실 정원의 초입인 부용지에 이르며 부용지는 휴식뿐 아니라 학문과 교육을 하던 비교적 공개된 장소다. 약 1000㎡ 넓이의 사각형 연못인 부용지를 중심으로 여러 건물을 지었으며 연못에는 부용정(연못에 피어 있는 한송이 꽃의 형상)이 있다. 어수문을 중심으로 취병(생울타리)을 재현해 지역을 구분하고 있다.

불로문
불로문

다시 절대 늙지 않는다는 불로문(不老門)을 통해 이동하면 나타나는 애련지(愛蓮池)는 연꽃을 애호한 숙종이 18년에 연못 가운데 섬을 쌓고 정자를 지었다고 하는데 현재 그 섬은 없고 정자는 연못 북쪽 끝에 걸쳐 있다. 애련지 서쪽 연경당 사이에 또 하나 연못이 있는데, 원래 이곳에 어수당이라는 건물이 있었다 하나 지금은 없어졌다.

애련정
애련정
연경당
연경당

연경당(演慶堂)과 선향재(善香齋)는 사대부 살림집을 본뜬 조선 후기 접견실로 연경당은 규모가 120여칸이며 서재인 선향재는 청나라풍 벽돌과 동판을 씌운 지붕에 도르래식 차양을 설치해 이국적인 느낌이 든다.

폄우사
폄우사
존덕정
존덕정

(尊德亭)과 폄우사(砭愚榭)는 후원 가운데 가장 늦게 조성됐다. 원래 네모나거나 둥근 3개의 작은 연못들이 있었는데 1900년대 이후 하나의 곡선형으로 바뀌었고 지금은 관람지라고 부른다. 연못을 중심으로 겹지붕의 육각형 정자인 존덕정, 부채꼴 형태의 관람정(觀纜亭), 서쪽 언덕 위에 위치한 길쭉한 맞배지붕의 폄우사, 관람정 맞은편의 승재정(勝在亭) 등 다양한 형태의 정자들을 세웠다.

옥류천
옥류천

마지막으로 옥류천(玉流川)은 후원 북쪽 가장 깊은 골짜기에 옥같이 맑게 흐르는 시냇물이 흐른다. 다양한 각도에서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곳으로 인조 14년(1636)에 거대한 바위인 소요암을 깎아 내고 그 위에 홈을 파서 휘도는 물길을 끌어들여 작은 폭포를 만들었으며 곡선형의 수로를 따라서 흐르는 물위에 술잔을 띄우고 시를 짓는 유상곡수연(流觴曲水宴)을 벌이기도 했다.

바위에 새겨진 ‘玉流川’ 세 글자는 인조의 친필이고 오언절구 시는 이 일대의 경치를 읊은 숙종의 작품이다.

소요정(逍遙亭), 태극정(太極亭), 농산정(籠山亭), 취한정(翠寒亭), 청의정(淸漪亭) 등 작은 규모의 정자를 곳곳에 세워, 어느 한 곳에 집중하지 않고 여러 방향으로 분산되는 정원을 이뤘다. 작은 논을 끼고 있는 청의정은 볏짚으로 지붕을 덮은 유일한 초가의 형태이니 주의 깊게 관찰해 보는 것도 추천한다.

이와 같이 창덕궁은 서로 밀어내지 않고 한데 어우러져 은은하게 발하는 아름다움, 그 고고한 조화미를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어 요즘과 같이 극단적 갈등과 스트레스로 얼룩진 현대인의 오늘을 역사 속 임금으로 빙의하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창덕궁은 전통미의 풍모와 기품, 자연의 사색과 여유를 만끽하며 근심과 걱정을 내려놓을 수 있는 최고의 장소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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