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법 제65조 부당간섭 금지 조항
막상 현장 적용까진 아직 어려움 많아

“내가 죽어야지 이게 해결이 될까요?” A관리사무소장의 목소리에서 체념이 짙게 묻어 나왔다. 지난 반년간 한 입주민의 민원 폭탄과 폭언·욕설에 시달린 A소장은 많이 지쳐 있었다. 

지난해 2월 11일부터 시행된 개정 공동주택관리법 제65조, 이른바 ‘관리사무소장에 대한 갑질방지법’에 따라 지자체에 사실조사 의뢰를 하고 도움을 구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직원 5명 그만둘 정도로
지속적 괴롭힘에도 무력

경기 용인시 한 아파트에서의 악몽은 지난해 11월부터 시작됐다. 경비원 인사이동이 자신의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은 것에 대해 한 입주민이 앙심을 품었다. 그 이후로 이 입주민은 “내가 입대의 회장을 할 사람이다, 나에게 잘 보이면 근무할 수 있다”며 관리사무소 직원, 경비원 등에게 으름장을 놓는가 하면, “A소장이 관리비를 횡령했다, 공사비를 3배로 부풀렸다”는 소문을 퍼트리고 지자체에 민원을 넣었다. 

해당 민원은 지자체 조사 결과 근거도 없고, 사실이 아니라고 결론이 났다. 

그뿐만 아니라 관리사무소를 지속적으로 방문해 ‘서류 복사’ 등 자신이 요청한 민원의 처리가 늦다며 고성을 지르고 직원들에게 반말로 폭언을 퍼부었다. 결국 이를 못 견디고 몇 달 사이에 직원들이 5명이나 퇴사했다. 

근무 1달 만에 사직서를 제출한 한 관리과장은 사직 사유서에 “본 아파트 단지에서 1개월간 근무하면서 본인이 목격한 모습은 관리사무소 본연의 업무를 크게 방해받을 정도의 부당한 요구와 현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고 있는 입주민 갑질이었다”며 이 입주민을 사직의 원인으로 지목하기도 했다. 

보다 못한 입대의가 나서 조사위원회를 꾸렸다. A소장과 관리사무소 직원, 경비원은 물론 사건의 발단이 된 입주민의 진술도 받았다. 조사위원회가 수집한 다양한 근거 자료와 당사자들의 자필 진술서 등을 묶어 공동주택관리법 제65조에 따라 사실조사를 의뢰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해당 법령 처음 접하거나
구체적 지침 없어 복지부동

공동주택관리법 제65조(관리사무소장의 업무에 대한 부당 간섭 배제 등)에 따르면 관리사무소장은 부당한 간섭을 받거나 폭행, 협박 등으로 업무를 방해받았을 경우 지자체에 이를 보고하고 사실조사를 의뢰할 수 있다. 시장, 군수, 구청장은 사실조사 의뢰를 받으면 바로 조사를 마치고 입대의 및 입주자등에게 필요한 명령 등의 조치를 하거나 범죄 혐의가 있다고 인정될 상당한 이유가 있으면 수사 기관에 고발할 수 있다. 

그러나 사실조사 의뢰를 받았던 지자체 관계자는 “사실조사 의뢰를 받았을 때의 지침이나 그다음 절차에 관해 규정된 것이 없었다”며 “공주법에 따라 행정 절차가 이뤄지는데 입주민에 대해 처벌할 수 있는 벌칙 조항도 정해진 것이 없었다”고 개입할 수 없었던 이유를 밝혔다. 이후 해당 업무를 인수 받았던 또 다른 관계자는 “사실조사 의뢰가 실제로 활용된 경우는 처음 봤다. 이번 사안 때문에 법령에 대해 검토하게 됐다”며 “의뢰서에 나와 있는 상황을 봤을 때 입주민을 대상으로 그 행동을 멈춰달라고 공문을 보내는 것이 어떤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자체 공무원에게 수사권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사실조사에 나서는 것 자체도 현실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다. 또 해당 사안의 경우 형사 소송 등의 절차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A소장을 지원하고 있는 위탁관리업체 관계자는 “실효성이 있건 없건 지자체가 나서서 조사에 나서고 공식적인 의사 표현을 해 준다면 A소장에게 큰 힘이 될 텐데, 사적인 소송을 통한 해결을 권하는 등 지자체의 소극적 행정이 아쉽다”고 말했다.

부당간섭 행위에 대한
제재 규정 없어 실효성 의문

공주법 제65조가 실제로 활용된 사례도 있기는 하다. 지난해 6월 충남 천안시 모 아파트 관리소장은 근거 없는 주장을 반복하며 옥상방수공사 진행을 방해하는 동대표의 행위가 공주법 제65조의 부당간섭에 해당한다며 지자체에 사실조사 의뢰서를 제출하고 천안시청은 시정명령 통지서를 발송했다. 

이에 불만을 품은 동대표가 공청회 과정에서 관리사무소장의 팔을 끌어당기고 몸싸움을 해 찰과상을 입히는 등 폭력을 행사하자 이에 대해 다시 사실조사를 의뢰해 또다시 지자체의 시정명령을 받아냈다. <본지 2023년 2월 13일 제1424호 1면 참조>

그러나 사례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공주법 제65조는 위반에 대한 제재 규정이 없어 실효성이 없고 선언적 규정에 그친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에 더불어민주당 박상혁 의원은 올 2월 제65조를 위반한 자에 대해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하는 조항을 추가한 공주법 개정안을 대표발의 하기도 했다. 해당 의안은 현재 국회 계류 중이다. 

취재가 시작되고 해당 지자체에서는 “사실조사 의뢰에 대해 다시 검토해 보겠다는”는 연락이 왔다. 그러나 A소장은 이미 사의를 표하고 관리사무소장직에서 물러난 상태다. 

입대의 회장은 “A소장을 5년 동안 지켜봤다. 아파트 단지를 본인의 집처럼 여기고 애착을 두고 꼼꼼하게 일 처리를 하던 사람”이라며 “이런 사람이 어떤 법적인 보호도 받지 못하고 결국 이렇게 자리를 옮기게 되는 것은 정의롭지 않다”고 소회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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