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수원 신안한일아파트 권성균 관리소장

<지난호에 이어>

페인트통이 들어올 때 들리는 말이 있었다. 몇 년 전 경기도 오산의 모 아파트에서 재도장 공사를 하다 직원 한 명이 자살했다는 것이었다. 사연인 즉 페인트통이 들어왔는데 통안에 페인트가 아닌 물만 잔뜩 들어있어 밤에 몰래 물을 비우는 것을 입주민이 보고 민원을 제기했다는 것이다. 그게 사실로 밝혀져 페인트를 빼돌렸다는 의심을 받았고 그 과정에서 직접 가담했는지 아니면 그런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한 책임을 통감한 것인지 영선과장이 안타깝게도 유명를 달리했다고 했다. 이후 재도장공사는 업체에 일괄 책임을 넘기는 도급방식으로 진행됐다고 한다. 우리 아파트는 페인트통 입고에서부터 도장공사가 완료될 때까지 일지에 매일 색상별 페이트통이 얼마나 남아있는지 기록했다. 공정마다 팀이 따로 있었다. 도장팀은 아파트 외벽을 밧줄 타는 외부 도장팀과 아파트 동 내부 계단 벽등에 무늬코트 등을 칠하는 내부도장팀으로 나눠져 있다. 이 팀들은 한 회사에만 전속돼 있지 않는다. 도장공사에서 우수한 회사란 유능한 팀을 다수 거느리고 조율을 잘해 나가는 회사라는 측면이 있었다. 재도장을 하는 아파트는 보통 옥상방수도 같이 하는데 여기도 예외는 아니었다. 일반적으로 3년 정도의 효력 기간이 있는 우레탄 방수를 하는데 효력 기간이 길고 더 방수가 잘 된다고 해 우레탄보다 10~20% 더 비싼 PVC 시트방수를 했다. 시트제품 종류도 많아 공사 시작 전에 PVC시트 샘플을 여러개 비교해 보고 그중 신축성과 재질이 부드럽고 우수해 보이는 시트를 정하는 것이 좋겠다.

마지막으로 페인트 도장작업인데 다음 재도장 공사까지 7~8년은 지금의 색채디자인을 보게되기 때문에 특히 잘해야겠다고 생각하고 기발한 색채와 디자인을 구해봤으나 여의치 않았다. 업체와 계약하기 전에도 시에서 가장 잘 됐다고 알려진 단지를 찾아가 어떻게 결정했는지 설명을 들었다. 국내 페인트업게 1, 2위 회사 디자인팀에게 시안을 여러개 받고 미팅도 했으나 눈에 들어오는 디자인은 없었다. 나중에는 이들 회사에 전국에서 가장 디자인이 잘 됐고 인기가 높은 아파트 단지 5개씩을 알려달라고 했다. 결국 인터넷에 들어가 단지명을 치고 도색 사진을 출력해 보고했는데 특색은 있어 보였지만 이거다 싶은 작품은 아니었다.

디자인팀에게 제시해 준 시안에 그 시안이 나타내고자 한 강조사항이 무엇이며 어떤 조화에 의해 선택한 색채와 디자인인지 3줄 정도 요약해 달라고 했다. 3개의 시안은 부족한 것 같아 2개 회사에서 각 3개를 받아 6개 시안을 입주민 투표에 붙였다. 시에서 가장 인기가 있다는 시안을 1번으로 해 이 디자인 중 되겠지 하고 기대를 했으나 의외로 투표에서는 하위를 면치 못했고 검파랑색 단일 색으로 내리 직선으로 칠해지는 안이 최고득표를 했다.

디자인과 색상을 정하면서 페인트사에 또 하나 불만족스러운 점은 담당자가 색상 이름을 한글로 어떻게 표현하는지 모르고 있었다. 색상의 이름을 설명해야 하는데 담당자는 여러 색상이 조합으로 되기 때문에 회사 고유의 약호로만 얘기한다고 했다. 도장이 다되고 남은 몇 개의 페인트통 겉면을 보니 약호 밑에 한글 색상 이름이 적혀 있었다. 진한 남청색이니 감청색이니 부르던 것은 검파랑색이었고, 회색이라고 하던 것은 연한 남색이라고 적혀 있었다. 삼원색의 원리와 색상 이름도 모르면서 디자인팀의 구성안만 중간에 전달하는 담당자가 있으니 제대로 된 색채안이 나오기 힘들지 않을까 생각했다. 결국 단순히 4개 색으로만 칠하게 될 색채안이 정해졌다. 멋진 색채안으로 전국에서 견학하러 오게 하려 했는데 당초 의도에는 턱없이 못 미치지만 오래 보면 볼수록 싫증이 나지 않을 거라는 느낌에 만족하고 있다. 색채에 대한 입주민들의 불만이 없다는 게 그 반증이다. 다음에 또 도장공사를 한다면 이번보다 훨씬 더 많이 다녀보고 수집하고 비교하고 연구시간을 더 투입하는 방법 말고는 없을 것 같다. <6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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