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계약 반복 후 해임 소장
노동위 구제신청 기각됐으나
소송 2년 만에 부당해고 인정

[아파트관리신문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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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관리신문=김선형 기자] ‘20년 전처럼 또 그렇게 당할 수는 없다’
이 소장은 부당해고 구제신청이 기각되자 그렇게 생각했다. 제4회 주택관리사 시험에 합격해 업계 경력 22년에 이르는 이 소장은 지난 2020년 3월 31일 A회사로부터 일방적인 퇴직 통보를 받았다. 이 소장은 이틀 뒤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지방노동위원회에서 중앙노동위원회까지 이르는 5달의 기다림 뒤 이 소장의 손에 남은 것은 ‘신청을 기각한다’는 짧은 주문이 찍힌 판정서였다.

‘특별한 사유’의 해석이 쟁점

이 씨는 2018년 A사에 입사해 퇴직 통보를 받을 때까지 1년 6개월 동안 6차례 근로계약서를 작성했다. 계약서상의 근로기간은 모두 2~3달이었다. 그러나 A사의 취업규칙에는 ‘근로계약기간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계약체결일로부터 1년을 원칙으로 한다’고 명시돼 있었다.

노동위원회는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구성 시기, 아파트 위탁관리 여부, 아파트 수탁관리업체 선정 여부 등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단기간의 근로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보인다”며 “사용자와 근로자가 ‘협의’해 기간을 3개월로 정한 근로계약을 체결했으므로 ‘(취업 규칙에 명시된)특별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사용자는 이 사건 근로자의 근무행태와 다른 직원들과의 불화 및 입주자대표회의와의 문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근로계약 갱신 여부를 결정한 것으로 보이므로 이 사건 사용자가 근로계약 갱신을 거절한 것은 합리적 이유가 있다”고 판단했다.

판정서를 받은 이 씨는 20여년 전 주택관리사 시험에 합격하고 어느 자치관리 단지에서 근무하다 갑작스럽게 해고당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당시에는 업계에 처음 발을 들인 상태였고 뭐가 잘못됐는지도 잘 몰랐다. 그냥 으레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지금, 또 그렇게 어물쩡 넘어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 씨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에서 모든 것이 뒤집혔다

소송은 대법원까지 2년이 넘게 진행됐고 법원은 노동위원회의 판단을 모조리 배척했다. 1심과 2심 모두 이 씨가 승소했고 A사 측의 상고에 대해 대법원은 상고이유에 관한 주장이 대법원 판례 위반이나 중대한 법령 위반에 관한 사항 등이 없다며 더 이상 심리하지 않고 기각했다.

서울고등법원 제10행정부(재판장 성수제 판사)는 우선 이 씨와 A사 사이의 협약을 취업규칙상의 ‘특별한 사유’로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법원은 “만약 피고 측이 주장하는 것처럼 특별한 사유에 개별 근로자의 동의가 포함된다고 해석할 경우 …(중략)… 취약한 지위에 있는 근로자의 동의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사용자의 필요에만 맞춰 손쉽게 근로조건에 관한 취업규칙의 내용을 근로자마다 기준 이하로 낮춰 적용함으로써 실질적으로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내용을 변경하는 것이 가능해지는 상황이 생길 위험도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입대의 구성시기, 아파트 수탁관리업체 선정 여부에 따라 사업이 유지되는 특수성이 있어 계약기간을 짧게 잡을 수밖에 없다는 A사의 주장도 “이 씨가 재직 중이던 2019년 10월 10일경 이 사건 아파트 입대의와 3년 용약계약을 체결했다”며 일축했다.

이 씨가 직원들과 불화가 있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경위에 관한 설명이 없이 이 씨의 잘못만을 일방적으로 주장하고 있다”며 “이 씨의 근무태도에 관한 사실확인서들이 모두 부당해고인지 여부에 관해 다툼이 생긴 이후에 A회사가 재직 중인 동료 직원들에게 받은 것들이어서 그 작성 과정에 A회사의 영향력이 미쳤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바, 그 기재된 바를 그대로 믿기 어렵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근로자를 돈이 아니라
한 명의 인격체로 보길

이 씨는 현재 다른 위탁관리업체와 계약을 맺고 관리사무소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A사로부터 9개월분 급여와 퇴직금을 받았고 12월 중앙노동위원회로부터 소송비용 900만원도 받았다.

해고부터 최종 판결까지 2년 6개월간 정말 열심히 기도를 했다는 이 씨는 “대부분의 위탁관리업체들은 법과 원칙에 따라 근로자들에게 제대로 된 처우를 하면서 잘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그러나 몇몇 용역업체들은 근로자들을 인격체가 아니라 수입으로만 보고 교묘하게 법망을 피해 착취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서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위탁관리업체들이 그런 용역업체들을 보고 타산지석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따라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런 세태에 경종을 울리고 싶었다”고 힘줘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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