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공동주택정보통신전문가협회 남우기 부회장(정보통신기술사)

필자가 아는 어느 아파트는 전체 세대 중 3분의 1 정도가 월패드를 통해 현관문을 제대로 열지 못해 손님이 오면 1층으로 달려가서 열어주곤 한다. 때로는 현관문이 열린 상태로 방치되기도 한다. 또 다른 아파트는 고급 아파트임에도 불구하고 월패드가 고장 나서 집안의 조명, 환기 등 제어기기를 사용하지 못해 입주민들의 원성과 민원이 끊이질 않는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도 입주자들은 월패드를 제대로 수리조차 할 수 없다. 일반적으로는 소유자가 자신의 비용으로 수리하거나 교체해서 사용할 수 있어야 할 터인데 오래된 설비라 부품을 구하기 어렵다거나 최초 설치한 업체가 도산해 시스템 내용을 파악해서 고장 수리를 해 줄 업체가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입주자는 수리가 안 되는 월패드를 다른 제품으로 교체할 엄두조차 낼 수 없다. 모든 세대가 한꺼번에 교체해야만 가능한데 입주민 3분의 2의 동의가 있어야만 한다. 월패드가 고장이 나도 불편함을 참으며 지내야 한다. 왜 이런 문제가 있는 것일까.

홈네트워크는 도입 당시 공용부 시스템과 전유부 설비가 서로 독립적으로 동작하면서도 상호연동해 작동하도록 설계됐다. 그래서 서로 다른 제조사의 제품들 간에 상호 연동할 수 있도록 KS표준을 만들고 표준참조모델이라는 것을 제공해 그것을 따르도록 했다. 이는 공용부의 시스템과 전유부의 기기들은 서로 다른 제품이라 하더라도 상호 간에 구애받지 않아야 하고 전유부의 기기들은 세대 입주자가 필요에 따라 다른 제품으로 교체할 수 있도록 소비자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대부분의 아파트에서는 전유부와 공용부의 시스템이 상호 독립적으로 작동할 수 없는 일체화된 하나의 시스템으로 구축돼 왔다. 그래서 공용부와 전유부의 설비가 동일한 업체의 제품이 아니면 서로 통신할 수 없고 전유부 설비도 입주자가 마음대로 교체할 수 없는 폐쇄적 시스템이 돼버렸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설비를 교체하려는 아파트에서는 입주민 간에 갈등이 발생하기도 한다. 모든 세대가 월패드를 한꺼번에 교체할 수 없기 때문에 기존의 설비와의 호환성과 기능제공의 연속성을 유지해야만 한다. 비용적으로 보면 공용부는 장기수선충당금으로 공사를 하지만 세대 전유부는 소유자가 비용을 지급해야 한다. 임차인이 사용하는 경우는 비용부담도 쉽지 않다. 이러한 복잡한 상황에서 전체 공용부 시스템을 교체하려면 어떤 제품으로 교체할 것인지를 두고 입주민들 간의 이해 상충이 발생한다. 이제 곧 많은 아파트에서 지능형 홈네트워크를 교체해야 하는 상황을 맞게 될 것이고 입주민들이 원하는 방식으로의 교체조차 쉽지 않은 상황인데 월패드 해킹 등 보안취약점까지 드러나고 있어 주거안전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시스템을 교체해야 하는 경우 제조업체 또는 공사업체의 견적에만 의존해 교체한다면 또 다른 문제를 낳을 수 있다. 아파트에서는 이런 상황을 충분히 인식하고 정보통신분야 기술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시스템 및 기능 호환성, 보안성 확보, 비용 등을 충분히 검토해 안전한 시스템을 설계해야 한다. 제조업체에는 입주민 선택권과 유지·관리 및 보수의 계속성 보장을 요구해야 하고 표준화 및 기술기준을 다루는 주무부처에는 입주민 안전과 선택권을 위한 신속한 대책을 요구해야 한다. 시공과정의 불합리한 또는 기준에 맞지 않는 공사에 대해서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하자평가를 통해 보상을 요구해야 한다. 스마트홈 시대의 기술을 안전하게 활용하기 위해서는 입주민들 스스로 지혜를 모아 아파트 실정에 적합하면서도 세대간 망분리 보안이 강화되고 표준화된 홈네트워크 시스템을 재구축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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