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령 사실 드러나자 경리·소장 극단적 선택

법원 “관리·감독부실…유가족이 배상하라”

 

[아파트관리신문=고경희 기자] 2019년 12월 발생한 수억원 규모의 서울 노원구 A아파트 경리 횡령사건과 관련해 입주자대표회의가 대한주택관리사협회를 상대로 한 보험금 청구소송에 이어 숨진 관리소장의 유가족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소송도 승소했다.

A아파트 입대의는 횡령사실이 드러나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리직원의 유가족 B, C씨와 감독 책임 추궁에 극단적 선택을 한 관리소장의 유가족 D, E씨 그리고 서무주임 F씨, 전 입대의 회장 G씨와 H씨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구했다.

서울북부지방법원 제13민사부(재판장 이창열 부장판사)는 “숨진 소장 J씨로부터 상속받은 재산의 범위 내에서 원고에게 피고 D씨는 3억5195만여원, 피고 E씨는 2억3463만여원을 지급하고 원고의 피고 B, C, F, G, H씨에 대한 청구 및 피고 D, E씨에 대한 나머지 청구를 기각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자치관리였던 A아파트의 경리직원 I씨는 2011년 1월부터 2019년 11월까지 관리비 계좌에서 장기수선충당금 명목으로 돈을 출금해 장기수선충당금 계좌에 입금하지 않고 개인적으로 사용하거나 개인계좌에 이체하는 등 101회에 걸쳐 총 8억7741만여원을 횡령했다.

횡령 사실이 드러나려 하자 경리 I씨와 관리소장 J씨는 2019년 12월 26일과 30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경리와 소장이 사망한 후 해당 업무상횡령 등 사건을 수사하던 서울북부지방검찰청 검사는 피의자들 사망으로 공소권 없음의 불기소결정을 하면서도, 소장 J씨와 관련해 “매월 적립돼야 할 장기수선충당금이 피의자 근무 기간 동안 대부분 적립되지 않은 사실, 매월 결산보고서를 작성했던 사실 등을 볼 때 관리소장으로 근무한 피의자가 경리의 횡령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단정할 수 없어 보인다”고 밝혔다.

이후 입대의는 횡령을 원인으로 K주식회사로부터 신원보증보험계약의 보험금으로 2억3000만원을 수령했고 대한주택관리사협회로부터 공제보험금으로 5000만원을 지급받기로 했다.

이에 더해 입대의는 “J씨는 관리소장으로서 경리인 I씨가 불법행위를 저지르지 않도록 지휘, 감독해야 할 주의의무를 위반했고 F씨는 서무주임으로, G, H씨는 입대의 회장으로 주의의무를 게을리 했다”면서 횡령액에서 보험금을 뺀 5억9741만여원의 손해배상 책임을 주장했다.

재판부에 따르면 이 사건의 경리는 매월 월말결산서를 작성하고 위·변조한 예금잔액증명서를 첨부해 소장 및 입대의 회장의 결재를 받았는데 소장은 매월 예금잔액증명서를 발급받아 관계 장부와 대조해야 함에도 이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아 위조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

노원구가 이 아파트를 대상으로 감사를 실시한 결과 10년간 아파트 관리비 잔액이 장부 기록보다 약 10억원 부족한 것으로 조사됐다.

재판부는 “횡령은 경리의 재직기간 동안 지속됐고 횡령금액도 8억원이 넘는 고액인 점 등에 비춰 경리의 횡령행위 중 소장의 근무기간 내 발생한 횡령행위는 소장이 감독에 상당한 주의를 했더라면 충분히 방지할 수 있었다고 할 것이므로 소장의 주의의무위반은 경리의 횡령행위를 방조한 것”이라며 소장이 경리와 공동해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따라서 소장 유가족 D, E씨는 소장으로부터 상속받은 재산의 범위 내에서 원고에게 손해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다만 경리 I씨의 자녀들인 B, C씨의 경우 재산상속 포기 신고를 함에 따라 I씨의 상속인임을 전제로 한 입대의의 주장을 기각했다. 또한 서무주임 F씨는 행정적인 업무보조만 한 점에서, 전 회장 G, H씨는 ▲위·변조된 예금잔액증명서로 횡령사실을 알아채기 어려웠고 ▲외부회계감사 절차에서 횡령이 문제된 적이 없었다는 점에서 업무상 주의의무를 위반해 횡령을 방조했다고 보기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소장의 금전관리 감독 책임 강조

“원리·원칙 지켜 업무처리 확인”

 

아파트 관리업무를 관리업체에 위탁하고 있는 상황에서 경리직원의 횡령사고가 일어날 경우 해당 직원의 형사상 책임과 별도로 관리소장도 책임을 피할 수 없다.

공동주택관리법은 제64조 제2항, 공동주택 회계처리기준 제15조 제1항, 제29조에 의해 관리소장은 공동주택을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관리해 입주자 등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입대의에서 의결하는 공동주택의 운영·관리·유지·보수·교체·개량 업무 및 업무 집행을 위한 관리비·장기수선충당금이나 경비의 청구·수령·지출 및 그 금액을 관리하는 업무를 집행한다.

관리소장은 업무를 집행하면서 고의·과실로 입주자 등에게 재산상의 손해를 입힌 경우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손해배상 책임을 보장하기 위해 관리소장은 주택관리사보 공제증권, 주택관리사보 보증보험증권 또는 공탁증서 중 하나가 있어야 한다.

앞서 창원지방법원(재판장 박평균 부장판사)은 경남 고성군 아파트 경리직원이 일으킨 수천만원 상당의 횡령사건과 관련해 “경리의 횡령방법이 전문적이었더라도 소장이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음으로써 보다 쉽게 횡령할 수 있었다”고 꼬집었다.

노원구 아파트 사건 당시 이지집합건물회계컨설팅 백선애 대표이사는 관리소장이 지출결의서와 통장, 송금영수증을 바로 확인하고 재무제표와 통장을 함께 살펴 경리직원의 횡령을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또 모 관리업체 관계자는 반복되는 횡령사고에 대해 “관리소장이 업무 집행에 사용하는 직인을 업무 효율성 및 신뢰를 이유로 경리직원에게 맡기면서 업무처리 과정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는 관행이 더러 있다”며 “현 제도를 제대로 지키지 않는 것이 횡령사고의 원인”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관리업계는 업무처리에 있어 원리·원칙을 지키는 것이 횡령사고를 방지할 수 있는 확실한 방안이라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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