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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란 칼럼] 위·수탁관리계약, 함부로 해지할 수 없다
승인 2021.07.12 10:31|(1348호)
법무법인 산하 김미란 변호사

아파트를 관리하는 방법은 위탁관리와 자치관리로 나뉜다. 위탁관리를 채택하면 입주자대표회의는 주택관리업자와 위·수탁관리계약을 맺게 된다. 이 위·수탁관리계약의 법적 성질은 위임(委任)이다. 위임이란 타인에게 사무의 처리를 위탁하는 것을 뜻한다. 일을 맡기는 사람을 위임인, 위임인의 사무를 맡아 처리하는 사람을 수임인이라 한다. 아파트 위·수탁관리계약의 경우 아파트 관리를 맡기는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가 위임인, 이를 맡아 관리주체로서 업무를 처리하는 주택관리업자가 수임인이 된다.

위임계약은 타인에게 자신의 일을 맡기는 것이 요체인 만큼 일을 맡아 처리할 수임인의 인격이나 기량, 지식 등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성립하게 됨은 물론이다. 그러다 보니 계약 성립의 근간인 신뢰가 무너지면 위임인이건 수임인이건, 계약 당사자 누구나 얼마든지 위임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신뢰가 깨진 이상 타인의 업무 처리를 성실하게 수행하기 어렵다는 관점에서 양 당사자 모두에게 해지의 자유를 주는 것이다. 이런 연유에서 위임은 여타의 다른 전형 계약과 달리 계약의 구속력에서 보다 쉽게 벗어날 수 있다.

이 같은 위임의 성질은 매매, 증여 등 전형 계약의 상세한 내용을 정하고 있는 민법의 채권각론 편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민법 제689조는 ‘위임의 상호 해지의 자유’라는 제하로 위임계약 해지의 자유를 선언하고 있다. 위임계약은 각 당사자가 언제든지 해지할 수 있고(동조 제1항), 당사자 일방이 부득이한 사유 없이 상대방의 불리한 시기에 계약을 해지한 때에는 그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동조 제2항). 대부분의 계약은 상대방이 계약상 채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을 때, 즉 채무불이행이 있을 때 해지할 수 있도록 하는 반면, 위임계약은 별다른 이유 없이도 얼마든지 해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위탁관리를 채택하고 있는 수많은 아파트 단지에서 위·수탁관리계약 해지를 둘러싼 분쟁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해지의 자유는 위임인, 수임인 모두에게 공평하게 있는 것 같지만 공교롭게도 늘 일방적으로 해지당하는 쪽은 주택관리업자들이다.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는 주택관리업자에게 채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면서 적법한 해지임을 주장하고, 설사 이런 이유들이 사실이 아님이 밝혀진다 해도 임의해지로서는 적법한 해지라고 주장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아파트는 주택관리업자와 체결한 위·수탁관리계약의 무게에 대해 한 없이 가볍게 여기게 된다. 어떤 이유건 마음에 들지 않게 된 주택관리업자와의 결별이 결코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계약을 해지할 만한 채무불이행이 있었다고 주장해 보고, 만일 이것이 먹히지 않더라도 임의해지의 자유를 주장하면 되니 말이다. 그러니 아파트 입장에서는 위·수탁관리계약을 해지하는 데 아무런 주저함이 없다. 참으로 일방적으로만 누리는 자유가 아닐 수 없다. 이렇게 된 데에는 위임계약 해지를 둘러싼 법적 분쟁에서 법원이 수 차례 아파트의 손을 들어 주며 위임계약의 해지 법리, 임의 해지의 자유가 마치 전가의 보도인 양 활약하게 둔 탓이 없지 않다.

그렇다면 과연 위임계약 해지의 자유가 언제나 통용되는 만고불변의 진리인 것일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사적자치의 원칙이 지배하는 사법(私法)체계에서는 계약의 내용이나 계약관계가 당사자의 의사에 따라 얼마든지 자유로운 변주가 가능하다. 법률에 규정돼 있다 해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것도 아니다. 당사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강제적으로 통용되고 적용돼야 하는 강행규정이 아닌 이상 당사자 의사에 따라 얼마든지 적용이 배제될 수 있는 것이다. 이렇듯 당사자의 의사에 따라 배제할 수 있고, 변경도 가능한 규정을 강행규정과 구별해 임의규정이라 한다. 위임계약 해지의 자유를 규정한 민법 제689조는 강행규정이 아니라 임의규정에 불과하다. 그런데 당사자의 의사에 따라 배제되거나 변경이 가능한 임의규정에 불과한 이 규정이 어느 순간에서부터인가 마치 강행법규처럼 여겨진 것이다.

최근 대법원은 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이 정비사업전문관리업자와 체결한 계약의 해지가 문제된 사안에서 위 계약이 민법상 위임에 관한 규정을 준용하도록 돼 있으나 당사자가 해지 사유 및 절차, 손해배상책임 등에 관해 민법 제689조와 달리 약정했다면 이를 단순히 주의적인 성격의 것이라고 쉽게 단정해서는 아니 된다고 판시한 바 있다(대법원 2019. 5. 30. 2017다53265 판결 참조). 대법원은 위 사안에서 채무불이행에 관련한 해지 사유를 열거하고 있고, 서면 통보 등 해지절차를 규정하고 있는 점, 계약을 일방적으로 종료시키는 경우 손해를 배상하도록 하고 있는 점에서도 민법 제689조와는 양립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보았다. 결국 대법원은 위 계약에 포함된 당사자의 명시적 또는 묵시적 약정에 의해 임의규정인 민법 제689조 제1항, 제2항의 적용이 배제됐는지 여부에 대해 아무런 심리도 하지 않은 채 위 민법 규정을 그대로 적용한 원심 판단은 임의규정 적용을 배제하기로 하는 당사자의 의사표시 해석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음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면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원심 법원으로 환송했다.

어쩌면 이 대법원 판결은 당연한 법리를 확인한 것에 불과하다. 위임계약은 본래 자유롭게 해지할 수 있으나 이는 임의규정에 불과하므로 양 당사자가 얼마든지 약정에 따라 달리 정할 수 있다. 이 당연한 법리가 아파트 위·수탁관리계약이라 해 달리 볼 이유가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판결 이후에도 위·수탁관리계약 해지를 둘러싼 법적 분쟁에서 하급심 판례들은 어지러이 엇갈리곤 했다. 그러나 최근 아파트 관리 현장에서도 위 대법원의 입장을 그대로 따른 판결이 선고됐다(대법원 2021. 4. 8. 선고 2017다286003 판결). 위 사안에서 주택관리업자와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가 체결한 위·수탁관리계약은 채무불이행 등 일정한 사유가 있을 때 계약을 해지할 수 있고, 민법상 위임 규정은 적용하지 않는다고 규정했다. 계약을 중도에 해지당한 주택관리업자는 해지의 위법함을 다퉜고, 아파트는 주택관리업자의 채무불이행 등 적법한 해지사유가 있다고 다투었다. 가사 그런 사유가 없더라도 위임계약 해지의 자유가 있으니 임의해지로서는 적법하다는 주장도 빠지지 않았다.

이에 대해 법원은 채무불이행 등 해지사유를 인정할 수 없어 채무불이행에 따른 적법한 해지로 보기 어렵고, 민법 제689조 제1항에 따른 임의해지 주장에 대해서도 위 규정은 임의규정에 불과한데 계약상 이를 배제하고 있다며 주택관리업자의 손을 들어줬다. 결국 아파트는 위법하게 계약을 해지한 탓에 잔여 계약 기간 동안의 위탁수수료와 임의로 부당 공제한 인사노무비 상당의 금액을 배상하게 됐다. 이 판결은 위·수탁관리계약의 법적 성질이 위임이라는 이유로 함부로 해지해서는 안 된다는 점, 계약의 내용을 상세히 살펴 임의해지가 가능한지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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