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산하 김미란 변호사

아파트는 많은 사람이 모여 사는 공동주택이다. 그러니 함께 쓰는 공간의 공동 관리, 환경을 정돈하는 미화, 경비 등에 이르기까지 여러 영역에서 타인의 도움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아파트에 위·수탁 관리계약이나 미화용역계약, 경비용역계약 등 각종 계약이 빈발하는 이유다.

계약은 잘 체결하고, 잘 이행하고, 잘 마무리한다면 아무런 문제도 없다. 모든 계약이 그렇게 무탈하게 종료되면 얼마나 좋을까. 내용이 명확하고, 양 당사자 사이에 의견 대립이 없다면 계약을 둘러싼 법적 분쟁은 생기지 않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당사자들이 서로 사이좋을 때는 명확하기 그지없던 문구들이 분쟁의 당사자로 돌아선 뒤에는 토씨 하나 가지고도 해석이 분분해 다툼의 씨앗이 되곤 한다. 계약이 체결되는 순간부터 종료되는 마지막까지 어느 단계건 이런 분쟁이 발생할 여지가 늘 있다. 아파트에는 미화나 경비용역계약이 많다 보니 이를 둘러싼 법적 분쟁도 상당하다.

최근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와 미화용역업체 간에 발생한 용역비 미지급 사태를 둘러싼 송사가 있어 이를 소개하면서 관련 법리를 알려주고자 한다(인천지방법원 2020. 11. 19. 선고 2020나 421 판결 참조). 미력하나마 법적 분쟁을 예방하는 팁을 주기 위함이다. A사가 본건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와 체결한 미화용역계약(이하 ‘본건 용역계약’이라 약칭)에 따르면 청소 근무 인원은 9명이고, 첨부된 용역비 산출내역서(이하 ‘본건 산출내역서’라 약칭)에는 직·간접노무비, 제 경비 등을 합산한 미화원 1명의 용역비가 계산돼 있었다. 이에 따라 본건 용역비가 산출된 것인데, 간접노무비는 1인당 산재보험료와 건강보험료, 장기요양보험료, 국민연금, 고용보험료로 구성돼 있었다. 그런데 국민연금은 만 60세 이상 미화원에게는 해당되지 않고, 고용보험료는 만 65세 이상 미화원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A사가 제공한 미화원 중에는 국민연금이나 고용보험료를 납부할 필요가 없는 인력이 포함돼 있었다. 본건 입주자대표회의는 용역비 가운데 실제로는 지출되지 않은 국민연금, 고용보험료는 공제해야 한다면서 이를 뺀 나머지 용역비만 지급했다. 그러자 A사는 본건 용역계약에 따라 전체 용역비를 지급해 달라며 본건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쟁점은 A사가 본건 용역계약에서 정한 용역비 전액을 청구할 수 있을지, 아니면 실제로는 납부하지 않은 국민연금, 고용보험료를 공제한 금액만 청구할 수 있을지 여부였다.

소송의 결과는 1, 2심 모두 A사의 승소였다. 법원이 A사의 손을 들어준 이유는 본건 용역계약에 용역비 정산 약정이 없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본건 용역계약에 의하면 본건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가 매월 용역비를 지급하도록 하면서 최저임금 인상 시 양측이 상의해 조정한다고 돼 있을 뿐이었다. 그 이외의 사유로 용역비를 조정하는 경우는 따로 규정하고 있지 않았다.

또한 A사가 고용한 미화원의 변동으로 실제 납부하는 간접노무비가 변동될 수 있는데도 이와 관련한 정산 규정 역시 없었다. 비록 본건 용역계약서에 본건 산출내역서가 첨부돼 있기는 하나 본계약 규정에서는 본건 산출내역서에 대한 언급이 없고, 산출내역서에 기재된 금액이 실제 지출됐는지 확인하기 위해 증빙자료를 제출해야 한다는 등의 규정도 없었다. 법원은 본건 산출내역서는 본건 용역계약의 용역비를 산정하기 위한 기준으로 제시된 것에 불과한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따라서 A사는 국민연금, 고용보험료를 실제로는 납부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용역비 전액의 지급을 청구할 수 있다. 계약상 별도의 용역비 정산 근거가 될 만한 규정을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본건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는 용역계약에서 정한 용역대금 전액을 A사에 지급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보통 계약을 체결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해당 계약을 통해 받고자 하는 급부와 그에 따른 대가다. 계약의 당사자들이 용역계약을 체결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 역시 제공하는 용역의 내용이 무엇인지, 용역의 대가가 얼마인지일 것이다. 보통 용역비를 계산할 때에는 1인당 용역비를 산출하고, 해당 용역에 필요한 인원을 곱해 전체 용역비를 산출하게 된다. 그런데 1인당 용역비를 산출할 때 그 근거가 됐던 비용들이 실제로는 납부되지 않았다면 어떠한가. 용역비를 지급하는 측은 전체 용역비를 주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용역비 산출의 근거가 된 비용이 실제 납부되지 않았으니 이를 공제한 나머지 용역비만 지급하면 된다고 말이다. 반대로 용역을 제공한 쪽에서는 약속한 용역을 제공한 이상 그에 대한 대가 역시 약속한 대로 전부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길 것이다. 용역비를 산출할 때 근거가 된 여러 비용들을 실제로 납부했는지 여부에 따라 이를 정산하기로 특별히 약정하지 않았다면 말이다. 그런 약정이 없었다면 이는 말 그대로 용역비를 산출하기 위한 참고자료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양측의 주장이 모두 어느 정도 일리 있어 보이니 분쟁이 생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한때 퇴직금을 실제로 지급하지 않았음에도 용역비 계산에는 꾸준히 퇴직금을 적립해 용역비를 받은 업체가 문제된 적이 있었다. 용역비에서 이를 공제해야 한다는 소송이 빈발했고, 관련된 상담 문의도 쇄도했다. 법률가로서 해줄 수 있는 조언은 해당 용역 계약의 구체적 내용과 법적 성질에 따라 달리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법원 역시 일관되게 이런 원칙에 따라 판결하고 있다. 용역비 산출 근거로 여러 비용이 거론됐더라도 이를 정산하기로 하는 특약이 없다면 실제로 지출됐는지 여부와 무관하게 전체 용역비를 지급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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