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지법 동부지원 판결

[아파트관리신문=서지영 기자] 아파트 경비원이 본인 업무가 아닌 승강기 조작 업무를 수행하려다 추락사고로 사망한 것과 관련해, 법원이 업무를 지시한 관리소장과 시설경비 총괄팀장의 소속 회사들에 손해배상 책임을 물었다. 공동주택에서 경비원들에게 관행적으로 경비업무 외 업무를 많이 시키고 있는 가운데, 사고 발생 시 회사가 책임을 질 수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부산지방법원 동부지원(판사 남세진)은 A아파트에서 일하다 추락사고로 사망한 경비원 B씨의 유가족 C씨(모)와 D씨(형)가 이 아파트 관리업체 E사와 경비업체 F사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피고 E사와 F사는 공동해 원고 C씨에게 2억682만원, 원고 D씨에게 500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들의 피고들에 대한 각 나머지 청구를 기각한다”는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C씨와 D씨는 E사와 F사가 공동해 C씨에게 3억1227만여원, D씨에게 1000만원을 지급할 것을 제기했었다.

재판부에 따르면 A아파트 관리소장 G씨는 경비업체 F사 소속 직원이자 시설경비 총괄팀장인 H씨에게 아파트 입주민이 이사 시 사용하는 이사용 승강기의 운행을 정지시켰다가 재개하는 업무를 지시했고, H씨는 2018년 8월 18일경 부하직원인 B씨에게 이사를 위해 자동운행을 정지시켜 둔 I동 이사용 승강기의 정상운행이 재개되도록 승강기 내부에 위치한 자동/수동 운행 버튼을 조작하라고 지시했다.

B씨는 이날 오전 11시 20분경 I동 이사용 승강기가 17층에 수동 정지돼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승강기 내부에 위치한 운행 버튼을 조작하기 위해 1층에서 비상열쇠로 승강기 문을 열고 들어가다가 그대로 승강기 홀 지하 3층 바닥으로 추락했고, 같은 날 오후 1시 4분경 몸통부위 다발성 손상으로 사망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A아파트에 승강기 안전관리자가 따로 있음에도 관리소장 G씨와 경비팀장 H씨가 담당자가 아닌 B씨에게 승강기 운행 조작 업무를 지시한 것이 잘못이라고 보고, 이들의 사용자인 E사와 F사가 민법 제756조에 의해 이 사건 사고로 인한 B씨와 유족들이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 있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관리업체 E사의 손해배상책임과 관련해 “피고 E사와 A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사이에 체결된 관리계약(서)에 의하면 E사는 책임자(관리소장)와 직원으로 하여금 ‘단지 내의 승강기유지용역의 계약과 관리감독, 입주자 등의 전출입 관리 등의 업무를 성실히 수행토록 해야 한다고 돼 있고, E사의 서면요청에 의해 입주자대표회의가 인정하는 경우 이외에는 E사가 맡은 용역 업무를 재하도급할 수 없도록 규정돼 있다”고 밝힌 뒤, “그러나 피고 E사가 피고 F사에 승강기 운행관리 등에 관한 업무를 재하도급하겠다고 입주자대표회의에 서면요청한 적은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재판부는 아파트 승강기운행관리규정에 E사 또는 관리소장 G씨는 관리주체로서 승강기 관리에 대한 총괄적인 책임을 지고, 승강기 안전관리자의 선임 등 업무를 수행하며, 승강기 안전관리자인 시설과장 I씨가 승강기 유지·관리에 관한 사항 및 승강기 비상열쇠의 관리에 관한 사항 등의 업무를 수행하도록 규정돼 있고, 엘리베이터 승강장도어 비상해제열쇠나 엘리베이터 운전조작반 열쇠 및 기타 엘리베이터 운전관련 열쇠는 담당자 이외의 사람이 사용해서는 안 되며, 어떠한 경우라도 승강기 전문가가 아닌 자가 수동조작을 해서는 안 되고, 전문가가 아닌 자가 수동조작을 해 사고 또는 이상상태가 된 경우에는 열쇠담당자가 그 책임을 진다고 규정돼 있는 점을 강조했다.

이에 재판부는 “이 사건 아파트의 이삿짐 승강기 조작과 관련된 업무는 관련 법령상 및 계약상 관리소장 G씨와 시설과장 I씨의 업무에 해당하고, G씨는 그 지위상 이를 잘 알고 있었다고 봄이 상당하다”며 “그럼에도 G씨는 만연히 피고 경비업체 F사 소속 근로자들로 하여금 이삿짐 승강기 조작을 하도록 위임함으로써 이 사건 사고를 예견하고 이를 방지할 주의의무를 게을리 한 잘못이 있고, 그로 인해 이 사건 사고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경비업체 F사의 손해배상책임과 관련해 재판부는 “앞서 본 바와 같이 이삿짐 승강기 조작업무는 경비업체인 피고 F사의 업무가 아니라 피고 E사나 그 소속 직원인 G씨, I씨의 업무이고, 더욱이 승강기 조작업무는 추락 위험성 등이 상존하는 업무”라고 밝힌 뒤, “H씨는 아파트 시설경비 총괄팀장으로서 B씨를 포함한 팀원들의 안전 등에 필요한 사항을 미리 확인한 후 위험방지를 위한 필요한 안전 조치를 취해야 할 주의의무가 있다 할 것이고, 따라서 G씨의 이삿짐 승강기 조작업무 지시를 거절했어야 함에도 이를 거절하지 않은 채 만연히 B씨에게 이를 그대로 재지시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설령 이 사건 아파트 경비에 있어서 그 이전부터의 관행이었다거나 시설경비 계약을 체결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관리업체와의 계약관계 등을 고려해 이를 즉석에서 거절하기 어려웠더라도, 최소한 상부에 보고를 하고 상부로부터 적절한 지시를 받아 업무처리를 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승강기 조작 방법만 전수받았을 뿐 승강기 관리교육도 제대로 받지 않은 B씨에게 승강기 조작업무를 지시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다만 ▲B씨가 이 사건 사고 발생 전에 2차례 정도 이삿짐 전용 승강기를 수동으로 조작해 본 경험이 있는 점 ▲이삿짐 전용 승강기 표시판에 17층이라고 표기돼 있었고, 비록 승강로의 조도가 낮기는 했으나 승강문이 열렸을 때 승강기를 지지하는 와이어가 어느 정도 보여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더라면 승강기가 1층에 있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 점을 고려할 때 B씨도 스스로의 안전을 도모할 주의를 다 하지 못한 잘못이 있고, 이러한 잘못 또한 이 사건 사고의 한 원인이 됐다고 판단해 E사와 F사의 배상 책임 비율을 70%로 제한했다.

또한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지급받을 유족급여를 공제하고 일실수입 등을 따져 손해배상액을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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