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판결: 서울고법 ‘집합건물법 강행규정 위반’ 판단

서울고등법원

“점유자 의결권 행사 제한한
관리인 선임결의 취소해야”

[아파트관리신문=고경희 기자] 아파트(집합건물) 관리규약에 점유자들의 의결권 행사를 제한하거나 요건을 가중하는 규정을 두는 것은 점유자의 의결권 행사를 보장한 집합건물법의 강행규정을 위반해 무효라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이에 따라 관리규약을 기반으로 점유자의 의결권 행사를 제한해 실시한 관리인 선임결의도 취소해야 한다는 판단을 내렸다.

서울고등법원 제35민사부(재판장 배형원 부장판사)는 서울 용산구 A아파트 점유자 B씨 등 7명이 이 아파트 관리단을 상대로 제기한 관리단집회결의 취소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한다”는 1심 판결을 뒤집고 “관리단집회에서 C씨를 관리인으로 선임한 결의를 취소한다”는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점유자 B씨 등은 “총회 소집 과정에서 점유자들에 대한 소집통지와 서면결의서 양식 제공을 생략했을 뿐 아니라 점유자들에게 구분소유자의 위임장과 인감증명서 제출을 요구함으로써 점유자의 의결권을 침해했고 점유자들의 총회 출석을 제한함으로써 점유자의 의견진술권도 침해했다”며 “서면결의 방식으로 진행된 관리규약 제정 결의는 의결정족수를 채우지 못하는 등 무효이므로 무효 관리규약에 따라 이뤄진 관리인 선임 결의에는 절차상 중대한 하자가 존재한다”면서 관리단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아울러 “구분소유자의 승낙을 받아 전유부분을 점유하는 자의 관리단집회 참석과 의결권행사를 보장하고 있는 집합건물법 제24조 제4항은 강행규정임에도 관리규약에서는 점유자의 의결권 행사 요건으로 ‘구분소유자의 위임’을 요구함으로써 집합건물법에서 예정하고 있지도 않은 요건을 추가했다”며 “이는 점유자들의 의결권 행사에 대한 중대한 제한이므로, 관리규약은 강행법규 위반으로 무효고 무효 관리규약 규정에 따라 이뤄진 결의도 위법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1심 재판부는 B씨 등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으나, 2심 재판부는 “점유자가 행사하는 구분소유자의 의결권은 구분소유자의 대리인으로서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구분소유자가 가진 의결권 비율만큼 점유자가 이를 직접 행사할 수 있는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면서 점유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2012년 12월 개정된 집합건물법은 관리단집회에서 공용부분의 관리, 관리인 선임, 관리위원회 위원 선출 등의 안건과 관련해 점유자의 의결권 행사를 인정하는 조항이 신설됐다. 다만, 구분소유자와 점유자가 달리 정해 관리단에 통지하거나 구분소유자가 집회 이전에 직접 의결권을 행사할 것을 관리단에 통지하면 점유자가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도록 단서를 달았다.

개정 전에는 집합건물법에 집회의 목적사항에 관해 이해관계가 있는 점유자에게 집회에 출석해 의견을 진술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은 있었지만 점유자의 의결권에 관한 조항은 없었다.

조항을 신설한 입법취지는 집합건물의 임차인이나 전세입자 등에게 관리에 필요한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지지 않았고 이것이 집합건물 관리 부실의 원인으로 지적됨에 따라, 점유자도 구분소유자를 대신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를 토대로 재판부는 “집합건물법 제24조 제4항은 점유자가 구분소유자의 위임을 받아야만 비로소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원칙적으로 점유자가 독단적으로 자신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지만 구분소유자가 직접 의결권을 행사할 경우 구분소유자의 의결권 행사가 우선한다는 취지”라며 “관리단집회에서 문제되는 여러 안건들 중 공용부분 관리, 관리인 또는 관리위원 선임과 관련해 특별히 점유자의 의결권을 인정하는 명문의 규정을 뒀다는 것은 적어도 이 안건들과 관련해서는 점유자의 의결권 행사를 특별히 보호하겠다는 입법자의 의사가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더해 재판부는 집합건물법 제24조 제4항을 관리인 선임에 관한 점유자의 의결권 행사를 보장하기 위한 강행법규라고 보고, 구분소유자의 위임을 받아야만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해 점유자에게 구분소유자의 대리인으로서의 지위만을 부여하는 A아파트 관리규약 조항은 강행법규에 반해 무효라고 봤다.

또한 관리단이 관리규약을 근거로 총회에서 의결권을 행사하고자 하는 점유자에게 구분소유자의 인감도장이 날인된 위임장과 인감증명서 제출을 요구한 것에 대해 “점유자의 지위를 사실상 구분소유자의 대리인 지위로 격하시키는 것일 뿐만 아니라 구분소유자가 해외 또는 지방에 거주하는 경우 전유부분에 거주하는 점유자의 의결권 행사를 현저히 어렵게 만드는 것”이라며 집합건물법의 취지에 반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이 사건 총회는 무효인 관리규약 조항에 근거했고 집합건물법에 반하는 방식으로 진행돼 관리인 선임 결의는 그 과정에서 법령을 위반한 하자가 존재하므로 취소돼야 한다”고 판시했다.

원고 측 변호를 맡은 법무법인 제이앤 김건호 변호사는 “집합건물에서 점유자들이 의결권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판결에 의하면 점유자들의 의결권 행사가 보다 철저히 준수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번 판결을 보고 현장에서도 점유자들의 의결권 부여를 위해 더욱 노력했으면 한다”고 의견을 전했다.

한편, A아파트 관리단은 이 같은 2심 판결에 불복해 상고를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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