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지법 판결

공고문 제거행위 ‘손괴죄’
직무행위‧고의성 없다면 ‘정당행위’

대전지방법원

[아파트관리신문=이인영 기자] 최근 법원이 아파트 단지 내 게시된 공고문 제거 및 훼손 행위에 대해 상반된 판결을 내려 주목된다.

대전지방법원은 대전 동구 A아파트 입주자대표회장의 처 B씨에 대한 문서손괴 선고심에서 피고인 B씨에게 벌금 30만원의 형의 선고를 유예하는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피고인 B씨는 2019년 6월 29일 이 아파트 승강기에 부착된 ‘사과문’이라는 제목의 입주자대표회의 명의 공고문이 너무 오래 붙어 있다는 이유로 손으로 떼어내 효용을 해했다”고 밝혔다.

다만 재판부는 “피고인 B씨가 훼손한 사과문은 2019년 6월 24일 게시된 것으로 고소인의 진술에 의하더라도 그로부터 일주일이 되는 2017년 7월 1일에는 철거(제거)될 문서로서 그 무렵까지만 재물로서의 가치를 가지므로 게시한 날로부터 6일째 되는 2019년 6월 29일 이뤄진 피고인 B씨의 게시물 철거행위는 재물로서의 가치가 사실상 거의 소멸한 시점에서 이뤄진 행위로서 그에 대한 가벌성 또는 처벌 필요성도 매우 낮다”며 “피고인 B씨의 연령, 성행, 범행의 동기 등을 모두 종합해 선고유예를 주문한다”고 판시했다.

반면, 대전지방법원은 대전 서구 C아파트 선거관리위원장 D씨에 대한 문서손괴 선고심에서 무죄 판결을 내렸다.

D씨는 2019년 7월 8일 단지 내 승강기 게시판에 게시된 동대표 E씨, 대표회장 F씨, 대표회의 감사 G씨 명의의 ‘입주민에게 알립니다’라는 제목의 ‘D씨에 대한 검찰과 감독기관(대전 서구청)에 고소 및 제소가 접수돼 수사가 시작됐음을 알린다’는 내용 등이 기재된 공고문을 떼어낸 혐의로 기소됐다.

재판부는 “피고인 D씨가 E, F, G씨 명의로 작성된 공고문을 떼어내 가지고 간 행위는 형법 제20조에서 정한 사회상규에서 위배되지 않는 행위로서 정당행위에 해당한다”고 봤다.

형법 제20조에 정해진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행위’는 법질서 전체의 정신이나 배후에 놓여 있는 사회윤리 내지 사회통념에 비춰 용인될 수 있는 행위를 말한다. 법원은 어떤 행위가 그 행위의 동기나 목적의 저당성, 행위의 수단이나 방법의 상당성, 보호이익과 침해이익의 법익 균형성, 긴급성, 그 행위 이외의 다른 수단이나 방법이 없다는 보충성 등의 요건을 갖춘 경우에는 정당행위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이 아파트 관리규약 및 선거관리위원회 규정에서 ▲‘선거관리위원이 관리규약 및 선거관리위원회 규정을 위반했거나 동대표 및 임원선거 시 특정후보의 선거운동을 하는 등의 사유가 있는 경우 그 입증자료를 제시해 입주자 등 10분의 1 이상 서면동의 또는 선거관리위원회 구성원 과반수 찬성으로 입주자대표회의에 선거관리위원의 해촉을 요구할 수 있다’, ▲‘선거운동을 하면서 선거의 결과에 영향을 미칠 목적으로 허위사실을 유포하거나 후보자 또는 그 가족을 비방하는 등의 행위를 할 수 없다’, ▲‘선거관리위원회는 유효투표의 다수를 얻은 사람을 당선인으로 결정하되 후보자의 사퇴‧사망, 등록무효로 된 경우 입주자 등의 과반수 투표 등의 방법으로 당선인을 결정하고 당선인을 결정했을 때에는 이를 즉시 공고해야 한다’, ▲‘선거관리위원회는 선거규정 위반행위에 대해 조사할 수 있으며 선거관리규정을 위반한 사람에 대해 중지, 경고, 시정명령, 위반금 부과, 후보자등록무효 결정, 고발 또는 수사의뢰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선거와 관련해 이의가 있는 경우 선거관리위원회의 서면으로 이의신청을 할 수 있고 선거관리위원회는 그 소명을 들은 후 결정해 통지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는 점을 들어 D씨의 행위를 정당행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공고문의 내용은 단순히 검찰과 감독기관(서구청)에 고소, 제소가 접수돼 피고인 D씨에 대한 수사가 개시됐다는 내용이 아니라 선거관리위원장인 피고인 D씨의 불법선거개입과 선거관리규정 위반사항, 동대표임원후보 불법등록취소 처분에 대한 고소, 제소로 수사가 시작됐다는 내용과 함께 피고인 D씨가 감사후보에 대해 선거관리규정을 위반해 등록취소처분을 했으므로 감사선거를 중단하고 피고인 D씨의 불법을 인정하고 사퇴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 및 피고인 D씨가 대표회장, 감사 등에 대한 당선증 교부와 선서식을 지체해 관리업무를 마비시키는 등 직무를 유기해 업무를 방해하고 있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재판부는 “피고인 D씨가 특정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상대후보의 사퇴를 종용하는 등 위력으로 공정한 선거관리업무를 방해했다는 업무방해 협의 및 2019년 7월 1일경 G씨의 감사후보 등록취소 공고 및 같은 해 7월 11일경 G씨의 감사후보 등록무효 공고 등을 게시해 허위사실을 적시함으로써 G씨 등의 명예훼손 혐의에 대해 2019년 11월 18일 대전지방검찰청 검사가 위력‧위계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고 선거관리위원회의 업무는 피고인 D씨 등의 업무로서 타인의 업무가 방해됐다고 보기 어려우며 선거관리위원장으로서 고소인들이 규정을 위반했기에 선거관리규정에 근거한 의결 결과를 공고한 것일 뿐 해당 내용이 허위라거나 피고인에게 허위에 대한 인식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고 명예훼손의 고의도 없었다는 이유로 혐의없음(증거불충분) 처분을 했다”며 “피고인 D씨가 고소인들의 이 사건 공고문에 기재된 내용과 같이 선거관리규정 등을 위반했다고 볼 만한 증거는 없다”고 판단했다.

또한 “고소인들이 부착한 공고문은 공동주택관리법령, 이 아파트 관리규약 및 선거관리위원회 규정에서 정한 선거운동의 제한금지행위를 위반했거나 선거관리위원회가 주체가 된 공고가 아닌 고소인들이 개인 자격으로 부착한 내용에 불과하며 고소인들은 이 사건 공고문에 관리소장의 직인을 받지도 않았다”며 “G씨는 2019년 7월 1일경에도 피고인 D씨가 사퇴를 종용했다는 등 내용의 공고문을 부착한 적이 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고소인들은 공고문을 부착하지 않고서도 관리규약 및 선거관리규정에서 정한 요건을 갖춰 피고인 D씨에 대해 선거관리위원장 해촉을 요구하거나 선거와 관련한 이의신청을 하는 등의 방법을 취할 수 있었고 당선자지위의 보전(확인) 또는 감사 재선거절차의 중지 등을 구하는 임시 지위를 정하는 가처분을 제기하는 등의 법적인 조치를 강구할 수도 있었다고 보인다”며 “반면 이 같은 조치만으로 충분하지 않고 고소인들이 공고문을 부착할 불가피한 이유가 있었다고 볼 증거도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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