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촌’.

서로 이웃에 살면서 정이 들어 사촌 형제나 다를 바 없이 가까운 이웃을 말한다. 박완서는 자신의 소설 ‘살아 있는 날의 시작’에서 “…이웃사촌이라고 급할 때는 떨어져 사는 딸보다는 한지붕 밑에 사는 그 사람들이 더 의지가 되실 거 아녀요?…”라고 이웃사촌을 살뜰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런데 아파트의 벽이 사람의 마음에도 벽을 세웠나보다. 이제 옆집에 누가 사는지 아는 것조차 불편해할 정도다. 우리는 아파트에서 이웃을 잊어버렸고, 우리 사회의 미덕인 신뢰와 협동, 배려가 넘치는 마을공동체를 잃었다.

3일 경기도 한 아파트에서 아래층에 거주 중인 30대 남성이 60대부부에게 흉기를 휘둘러 부인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몇 년 전 서울 한 아파트에서도 거주 중인 남성이 이웃집 여성을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 살해방법도 아주 잔인했던 걸로 기억한다.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무색해지는 참극이었다. 살해 이유가 바로 ‘층간소음’이었다. 피해자의 아래층에 살고 있던 피의자는 자꾸만 들려오는 소음을 견디지 못하고 홧김에 살인까지 저질렀다.

지난해 서울YMCA 이웃분쟁조정센터가 실시한 ‘아파트 층간소음에 대한 인식조사’에 따르면, 층간소음을 접하는 주민 대부분이 참는다고 응답했다. 그러다 안 되면 관리사무소에 항의하거나 경찰을 동원하는데 그래도 시원치 않으면 격한 감정에 직접 올라가 대화를 하려다 서로 싸움이 시작돼 심할 경우 칼부림까지 일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대안 마련을 위해 모인 ‘이웃간 분쟁의 시민 자율조정 모색을 위한 열린 대화’에서 참석자들은 분쟁의 해결을 위해 이웃과 직접적인 대화를 시도했지만 새로운 갈등이 발생했던 사례를 거론하며 ‘중립적인 공적인 중재자(완충장치)’의 필요성에 대해 의견을 냈다.

그 결과물이 나왔다. 서울시는 지난달 22일 시청 서소문청사 1층에 ‘서울이웃분쟁조정센터’를 열었다. 층간소음 만이 아니라 흡연, 주차, 쓰레기문제 등 모든 이웃 사이 생활 분쟁 조정을 위한 일을 다룬다.

서울시는 이미 운영하고 있는 층간소음상담실, 전월세보증금지원센터 등과 같은 특정 분쟁을 대상으로 한 조정기구에서 다루지 않은 분쟁이나 개별 조정기구가 마련돼 있지 않은 일반적인 분쟁 사건을 포괄적으로 조정한다는 방침이다.

개별 조정기구가 마련한 분쟁의 경우에도 사건의 성격에 따라 효과적인 해결을 위해 이웃분쟁조정센터에서 조정하거나 해당 기구와 공동으로 조정을 진행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분쟁 당사자들이 분쟁의 해소 과정에 직접 참여해 대안제시와 실현방법까지 상호협의하게 돼 조정안에 대한 높은 이행이 기대된다고 서울시는 밝혔다.

그러나 이 방안이 궁극적 해결책은 아니다. 사실 분쟁해결의 가장 좋은 방법은 갈등이 커지기 전에 해소하거나, 애초에 갈등이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다.

그래서 공동체의 활성화가 중요하다. 잃어버린 ‘신뢰와 지혜’를 회복해야 한다. ‘주민자율조정기구’를 각 아파트에 둬 입주민들이 자주 만나는 자리를 만들어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친절하며, 배려하는 문화를 만드는 활동을 해야 한다. 그와 함께 갈등으로 심각한 상처를 입은 이웃들의 마음을 만져주는 심리적 돌봄과 상담도 병행해야 한다. 공동주택 건축 기준을 강화하며 관련 법령과 제도를 정비·개선해야 함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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