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전기 설치하려 변압기 교체 시
국토부 재건축 판정 기준상 감점

서울 노원구의 모 아파트 모습. [아파트관리신문]
서울 노원구의 모 아파트 모습. [아파트관리신문]

[아파트관리신문=양현재 기자] 지난 2022년 1월 산업통상자원부는 환경친화적 자동차의 개발 및 보급 촉진에 관한 법률’(약칭 친환경자동차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을 시행했다. 이 개정안에 따르면 내년 1월까지 기축된 100세대 이상 아파트는 단지 주차장 총 주차대수의 2% 이상 전기차 충전시설을 의무설치해야 한다.

그러나 정작 현장에서는 전기차 충전기 설치와 관련해 비용 부담과 재건축 과정에서의 불리함 등 여러 불만과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고 입주민 간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지난해 부동산R114가 K-apt에 등록된 아파트 단지를 분석한 결과 분양아파트의 세대당 주차대수는 약 1.1대 다. 하지만 연식이 30년을 초과한 아파트는 0.68대, 21~30년 이하 0.99대로 세대당 주차대수가 1대가 되지 않는다. 이런 노후 아파트 입주민들에게 이중, 삼중 주차는 일상이다.

입주민이 소유한 전기차보다 충전기가 설치된 주차 공간이 많은 경우 그 수만큼의 공간에는 일반 차량을 주차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하지만 주차공간이 부족해 테트리스 블록처럼 차량을 주차장 모든 공간을 활용해 끼워 맞추듯 주차하는 노후 아파트에 전기차 충전공간까지 설치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최근 인천시의회는 전기차 화재 관련 조례를 의결하면서 “친환경 자동차는 증가하고 있지만, 전용 주차구역 및 충전시설은 이를 모두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며 “관내 일부 공동주택은 협소한 공간에도 전기차 전용 주차구역과 충전시설을 무리하게 설치해 지적을 받고 있다”고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아파트 변압기를 교체하는 모습 [아파트관리신문]
아파트 변압기를 교체하는 모습 [아파트관리신문]

부담스러운 설비 설치 비용

노후 아파트 전기차 충전시설 설치에 대한 문제는 금전적 이유에서도 발생한다. 한국전력공사의 자료에 따르면 아파트 세대당 연평균 전기 사용량은 1999년 191kW에서 2020년 3381kW로 약 18배 늘었다. 하지만 노후 아파트들 가운데 1991년 제정된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정’에서 정한 세대별 3kW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곳도 있다.

이런 노후 아파트들은 전기차 충전기를 설치해도 변압기 등 전력설비를 교체하지 않으면 사용조차 할 수 없다. 이 때문에 노후 아파트 단지에서 전기차 충전시설을 원활하게 사용하려면 변압기 등의 전력설비를 교체해야 한다. 변압기 한 대의 교체 비용은 수천만원을 호가한다. 비용의 일부는 정부와 한전이 지원해 준다. 그러나 한 아파트 단지에 1대의 변압기만 교체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1대당 단지 부담금이 적지 않은 변압기 교체는 대형 단지라고 해도 선뜻 결정하기 부담스러운 금액이다. 심지어 이 금액은 전기차를 소유한 입주민이 지불하는 것이 아닌 장기수선충당금으로 해결해야 한다. 이 부분에서 전기차를 가진 입주민과 일반 입주민 간 의견 차이가 발생한다. 타지도 않는 전기차 때문에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 변압기를 교체하고 싶지 않은 일반 입주민과 소유한 차량의 편리한 충전을 위해 변압기 교체를 원하는 전기차 보유 입주민 사이에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변압기 교체의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재건축을 추진 중인 개포주공6단지아파트 [아파트관리신문]
재건축을 추진 중인 개포주공6단지아파트 [아파트관리신문]

충전기 설치 위한 변압기 교체, 재건축에 불리?

재건축을 실시하려면 낮은 등급의 안전진단 결과가 나올수록 유리하다. 전기차 충전기 설치를 위해 아파트의 변압기를 교체한다면 주택 재건축 판정을 위한 안전진단 기준 중 건축 마감 및 설비노후도 평가에서 높은 등급을 받게 된다. 결국 변압기를 교체한 단지는 재건축 진행에 불리해지는 것이다.

재건축 안전평가를 담당하는 국토안전관리원 건축시설안전실 관계자는 “원론적으로 안전진단은 건축물의 안전도에 대해 평가하는 것이기 때문에 변압기 등 전기 설비를 교체할 경우 재건축에 불리한 안전진단 결과를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 재건축 관련 업무 담당자는 “고덕주공9단지가 전기차 충전시설과 관련해 전기 설비를 교체했음에도 재건축 승인을 받았고 지금까지 관내 전기차 충전시설 설치와 관련한 전기 설비 교체로 재건축 절차에 지장이 생긴 단지는 없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전기설비 분야에 손해를 보는 대신 전기차 충전시설 설치로 인해 주차장 이용부분에서 주거편의성 점수가 낮아지기 때문에 크게 걱정할 사안은 아니라고 판단된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재건축 안전진단이 완화되는 추세고, 차후 안전진단이 재건축 종합진단으로 변경될 것으로 보고 있는데 이때 판정기준에 전기차 설비 관련 부분 등이 현실에 맞게 반영될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이상배 전국아파트입주자대표회의연합회 서울시지부장은 “2000세대가 넘는 우리 아파트 단지에 전기차를 보유한 입주민이 5명뿐 이다. 전기차가 충분히 보급되려면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이는데 정부가 너무 빠르게 충전설비 도입에 서두르는 것 같다”며 “재건축 안전진단 부분에서 손해를 볼 수 있다는 점은 분명히 입주민 간의 갈등을 부추기는 큰 문제인데 안전진단 통과 시 전기차 충전설비 설치 규제를 면제해 주겠다는 부분 외에 정부의 제도적 지원이 미흡해 현장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전기차 충전기를 대기업 등과 연계해 무상으로 설치하고 6년 계약을 맺어 운영권을 제공하고 있으나 6년 계약이 만료되면 이 설비를 아파트에서 인수해야 하는 것인지 등 전기차 충전설비 확대 정책과 관련된 모호한 부분이 많다”며 “국회와 정부가 나서 현실에 맞는 제도적 보완책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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