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종사자들은 업무 증가
입주민들은 관리비 추가 지출

경기 안양시 소재 아파트 내 게시판에 게시된 세대 내 소방시설 점검 안내문.
경기 안양시 소재 아파트 내 게시판에 게시된 세대 내 소방시설 점검 안내문.

[아파트관리신문=고현우 기자] 소방시설 설치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이 개정된 지난 2022년 12월 1일부터 아파트 관리자(관리사무소장, 입주자대표회의, 소방안전관리자) 및 입주민은 2년마다 1회 이상 세대 내에 설치된 소방시설을 점검해야 한다. 이에 앞서 2022년 1월 1일 전기안전관리자의 직무에 관한 고시가 개정되면서 연 1회 이상의 공동주택 세대 내 전기설비에 대한 안전점검도 의무화됐다. 기간 내에 소방시설에 대한 점검을 완료하지 않은 경우 관리자 또는 입주민에게 300만원의 과태료가, 전기설비에 대한 점검을 완료하지 않은 경우 전기안전관리자에게 3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이 때문에 공동주택 관리현장에서는 볼멘소리가 계속 나오고 있다. 관리직원들의 업무 부담이 과도해졌다는 것이 그 이유다.

광주광역시 소재 A아파트 관리소장은 “공동주택관리법에 따르면 관리주체의 의무는 공용부분의 유지·보수 및 안전관리로 규정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대 내 점검 의무화로 인해 전유부분까지 확장됐다. 이 때문에 입주민들의 무리한 요구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부산시 소재 B아파트 관리과장은 “하루 동안 다른 업무를 하지 않고 세대 내 점검만 실시해 본 결과 7개 세대에 대한 점검을 실시할 수 있었다. 세대수에 비해 인력이 부족한 단지에서 이를 기한 내에 완료할 수 있을지가 의문”이라고 밝혔다.

주택관리업체 C사 관계자는 “세대 내 점검으로 인해 공동주택 안전관리자의 최우선 업무인 공용부분 관리에 소홀하게 돼 이로 인한 사고가 발생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다. 특히 관리현장에서 전기안전관리자를 고용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입주민들은 전기설비의 세대 내 점검에 대해서는 외부용역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관리현장에서는 업무 과다를 차치하고도 세대 내 점검 자체가 애로사항이라고 말한다. 가장 큰 이유로는 ‘세대 내 소방·전기설비 안전점검은 입주민 동의 후 진행해야 하는데, 입주민들이 사적 공간인 세대 내 출입을 거부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는 점을 꼽았다.

경기 성남시 D아파트 관리과장은 “현재 근무하고 있는 아파트에서는 지난해 안내문을 통해 전기설비 점검에 대한 신청을 받았다. 그런데 신청 세대가 상당히 적었고, 신청하지 않은 대부분의 세대는 관리종사자의 출입이 꺼려진다는 이유로 세대 내 점검을 거부했다”며 “세대 외부에서 점검할 수 있는 사항은 점검하고 입주민들에게 점검에 대한 공고를 했으니 과태료 처분에서는 자유롭겠지만 혹시라도 사고가 발생한다면 그 책임소재가 관리종사자들에게 전가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고 전했다.

소방시설의 세대 내 점검의 경우 반드시 관리종사자가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입주민들이 점검표를 작성해 관리사무소에 제출해도 된다. 몇몇 아파트의 경우 안내문을 통해 세대 내 점검표를 작성하도록 입주민들에게 안내하고 있다. 그러나 입주민들의 직접 점검은 현실적으로 관리종사자들의 업무 경감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높다.

경기 안양시 소재 E아파트의 경우 관리소장은 게시판 내 공고문을 통해 세대 내 점검표를 작성하도록 입주민들에게 안내하면서 한국소방시설관리협회에서 제작한 동영상을 시청해 참고하도록 했다.

그럼에도 E아파트의 한 입주민은 아파트관리앱 소통게시판을 통해 “동영상을 시청해도 세대 내 소방시설 점검 방법이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수많은 질문을 쏟아냈다.

경기 부천시 소재 F아파트 관리소장은 “약 1주일간 안내문을 통해 세대 내 점검표를 작성해줄 것을 입주민들에게 요구했으나 참여율이 매우 저조했다. 참여한 입주민들마저도 세대 내 소방시설 점검 방법에 대해 어려움을 느껴 관리사무소 측으로 전화를 하는 등 결국 관리직원이 전화로 점검 업무를 돕거나 직접 세대를 방문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만약 입주민들의 참여율이 높았다고 하더라도 세대 내 점검에 대한 안내와 실시 여부 확인은 결국 관리사무소의 몫이므로 업무 경감에 큰 영향을 끼치지는 못할 것 같다”고 밝히기도 했다.

세대 내 점검은 입주민들에게도 달가운 일은 아니다. 세대 내 소방·전기설비를 모두 점검하려면 그에 따른 비용이 수반되며 이는 관리비 상승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주택관리업체 G사 관계자는 “위탁관리회사들은 거의 모든 관리현장을 최소 인력으로 운영하고 있지만 각종 의무화에 따라 입주민 비용 부담은 증가하는 추세”라며 “입법 과정에서 의견수렴 대상에 왜 이해당사자인 입주민들이 배제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안전을 빌미로 모든 책임을 민간에 전가하는 것이 아니냐”고 비판하기도 한다.

한편 이달 11일 소방청이 전국아파트입주자대표회의연합회, 한국주택관리협회와 진행한 ‘아파트 화재예방 및 피난안전홍보 캠페인 업무협약식’ 당일 공식 행사 종료 후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에 세대 내 소방시설 점검이 대화 주제로 부상했다.

이날 소방청 소방제도분석과 관계자는 “공동주택은 구조적 특성 때문에 작은 화재도 대형 화재로 번지기 쉽다. 그런 만큼 화재 발생 시 초동대처가 중요한데, 적절한 초동대처는 소화설비를 갖추는 것부터 시작한다. 또한 소화설비가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유지·관리 하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하다”며 “공동주택 관리종사자들의 고충이 이해하지만 그 무엇도 안전보다 우선시 될 수는 없다. 따라서 세대 내 소방시설 점검에 대해 관리종사자들의 적극적인 동참을 부탁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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