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인 경비원 더 힘들게 하는 용역비 정산제

경비원 단지 이동 시 이전 단지서 퇴직금 지급 거부 등
정산제 도입 시 우려한 문제 지속 발생돼

원칙상 도급은 정산의무 없어...소송 등 제기 시 주의해야

[아파트관리신문DB]

[아파트관리신문=서지영 기자] 공동주택 경비·미화원의 퇴직적립금과 연차수당 등 용역비 정산제가 시장에 자리 잡은 지 몇 년이 지났지만 도입 당시 업계의 우려가 여전히 문제로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원칙적으로 도급계약은 정산의무가 없는 것으로 부당이득금 반환 청구 등 소송으로 갈 경우 법원에서는 계약의 내용이나 성질이 도급이냐 위임이냐를 면밀히 따져 정산 의무를 판단하고 있다. 이에 경비원 등 용역계약에 무조건 정산의무가 있다고 판단하는 것에 주의가 필요해 보인다. 

경기도 준칙에서 확대돼
당시 경비협회 등 격하게 항의

경비원 용역비 정산제는 2016년~2017년 경기도가 공동주택 관리규약준칙 개정을 통해 용역비 정산 관련 내용을 신설하면서 전국적으로 확대됐다. 준칙은 참조용에 불과하지만 지자체에서 표준으로 제시하는 것인 만큼 많은 아파트가 이를 관리규약에 반영해 현재 전국의 많은 아파트가 용역비를 정산하고 있다. 

경기도 준칙의 용역비 정산 관련 내용을 살펴보면 ‘공동주택 관리주체가 경비·청소 등 용역업체와 계약 시 용역계약서에 용역비 산출내역서를 첨부하고 용역내용이 산출내역서와 다르게 제공됐을 경우에는 용역비를 정산한 후 지급해야 한다’면서 ‘이 경우 퇴직적립금, 연차수당, 4대보험 등은 기성대가 및 준공대가 지급 시 용역업체가 지급사유를 입증한 경우에만 지급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경기도가 2016년 준칙 개정 당시 이 같은 규정을 신설하면서 관리규약 반영을 강제화하려는 기조를 보이자 업계는 퇴직금 정산으로 예상되는 어려움을 호소하며 항의에 나섰다. 

당시 한국경비협회 경기지회가 경기도 공동주택과를 방문해 제시한 문제점은 ▲동일한 용역회사 소속으로 여러 단지에서 근무하는 경우 각 아파트에 퇴직금을 요구하기 어려움 ▲최종 3개월분의 평균임금을 기준으로 계산하는 퇴직금 산정 방법상 근로자가 장기근속 시 아파트의 퇴직적립금과 실제 퇴직금에서 차액 발생 ▲퇴직금 중간정산 조건이 강화돼 퇴직적립금·퇴직금 차액 발생에 따른 손실은 업체에서 부담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에 따라 퇴직연금을 의무 가입해야 하나 각 단지에서 별도 적립해 업체에서 퇴직연금 가입 불가 등이었다. 

특히 한 업체 소속의 경비원이 한 단지에서 1년 미만으로 근무하고 바로 다른 단지로 이동했는데 단지별 합산 근속기간이 1년 이상이 돼 퇴직할 경우 이전 단지에 퇴직금을 요청해 받기가 힘든 문제가 있었다. 또 단지마다 급여조건 등이 다르고 해마다 최저임금이 상승하는데 근로자가 몇 년이 지나 퇴직할 경우 아파트의 퇴직적립금과 실제 퇴직금에 차액이 발생하는 경우에 대한 우려도 있었다. 

퇴직금 이유로 업체 변경하기도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당시의 우려는 정산제 도입 이후 실제 문제로 발생해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현재 현장에서 퇴직금 정산은 1년 이상 근무한 자가 발생할 경우 아파트에서 적립된 퇴직충당금을 경비업체로 지급해 경비업체가 이를 퇴직연금으로 적립, 경비원 퇴직 시 지급하는 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협의에 따라 경비원의 실제 퇴직 시기에 아파트에서 퇴직금을 지급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일부 아파트는 해당 단지에서 근로한 기간이 1년 미만이거나 몇 년이 지나 퇴직금을 요청할 경우 이를 거부해 업체들이 고충을 호소하고 있다. 여러 사업장의 많은 인원을 관리하다 보면 누락이 생기는 등 퇴직금 관리의 어려움도 있다는 전언이다. 

퇴직금 정산제는 경비원 등 근로자의 고용불안 문제로도 이어진다. 많은 아파트가 근로자 상생에 대한 인식 확대로 고용안정에 힘쓰고 있지만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기 위해 단기계약을 원하거나 업체를 변경하는 사례도 존재한다. 업체들은 이전 단지에서 퇴직금을 지급받기 힘든 점 등에 따라 경비원의 근무지 이동 시 일정 기간 공백을 둬 근로계약을 새로 맺기도 한다. 여기서 근로기간이 이어지지 않는 문제가 발생한다. “용역비 정산이 사회적 약자인 경비원들을 더 약자로 만들고 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경기도 공동주택과 관계자는 퇴직금 정산제 도입 당시 “정산제는 퇴직금을 경비원 등에게 지급하지 않거나 지급하지 않기 위해 1년 이내에 용역을 교체하는 등 부당이득을 취득하는 일부 업체가 있어 경비원 고용안정을 위한 안전장치로 마련한 것”이라고 밝혔지만 고용안정을 위해 마련한 용역비 정산이 오히려 고용을 위협하는 장치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한 관리업계 관계자는 “아파트에서 경비용역계약을 단기로 맺고 자주 교체하는 행태가 용역비 정산에 따른 문제로 이어진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한편 경비원 등 용역비 정산은 어느 계약에나 반드시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에서 계약의 명칭과 관계 없이 실질적인 계약 내용 등을 따져 “해당 계약은 정해진 월 용역대금 총액의 한도 내에서 업체가 자신의 책임하에 각종 경비를 부담해 용역업무를 수행하기로 하는 도급계약”이라며 업체에 퇴직충당금 등 정산의무가 없다고 보는 판결도 계속해서 나오고 있기 때문에 각 아파트에서 정산에 대한 문제 제기 시 정확한 판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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