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고법

[아파트관리신문=서지영 기자] 아파트 경비원들에게 택배 관리 등 경비업무 외 업무를 수행하게 했다는 이유로 경비업허가를 취소한 경찰청의 처분이 위법하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경찰청의 처분 기준이 된 경비업법 규정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지난 3월 23일 헌법불합치결정을 함에 따라 법원도 이전과 판단을 달리 하게 된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 이전에 같은 이유로 경비업허가 취소처분을 받아 법원에서 이를 다투고 있는 업체가 있다면 희소식이 될 것으로 보인다.

수원고등법원 제3행정부(재판장 정재오 판사)는 시설경비업무 허가를 받아 경비업을 영위해온 A사가 경기남부경찰청장을 상대로 제기한 경비업허가 취소처분 취소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A사의 청구를 기각한 1심 판결을 취소하고 A사의 청구를 받아들이는 판결을 내렸다.

택배관리 등 이유로 경비업허가 취소

A사는 2017년 5월부터 경기 이천시 모 아파트에 배치한 경비원 4명에게 택배관리, 제초 및 전지작업 보조, 쓰레기 분리수거 등 업무를 하게 했다는 이유로 2018년 7월 18일 경기남부경찰청으로부터 경비업허가 취소 처분을 받았다. 경비업법 제19조 제1항 제2호는 같은 법 제7조 제5항의 규정에 위반해 허가받은 경비업무 외의 업무에 경비원을 종사하게 한 때 경비업 허가를 취소토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1심 재판부는 A사의 청구에 “경비업법 제2조 제1항 가목은 시설경비업무를 ‘경비를 필요로 하는 시설 및 장소에서의 도난·화재 그 밖의 혼잡 등으로 인한 위험발생을 방지하는 업무’로 정의하고 있는데 문제가 된 택배관리 등은 위험발생 방지와는 아무 관련이 없어 A사 소속 경비원들은 경비업무 외 업무를 수행했음이 분명하다”며 경기남부경찰청의 처분이 적법했다고 판단했다. 1심 재판부는 또 경비업법 제19조 제1항이 문언상 필요적으로 각 호에 해당하는 때 문언상 필요적으로 허가를 취소토록 하고 있는 점도 제시하며 허가관청의 허가 취소는 재량행위가 아닌 기속행위임을 강조했다.

그런데 이후 헌법재판소에서 해당 규정에 대해 헌법불합치결정을 내리면서 항소심에서 판결이 뒤집히게 됐다.

한 아파트 경비원이 분리수거 업무를 하고 있다. 공동주택 경비원의 분리수거 업무는 2021년 10월 공동주택관리법령 개정을 통해 수행이 법적으로 가능해졌다. [서지영 기자]
한 아파트 경비원이 분리수거 업무를 하고 있다. 공동주택 경비원의 분리수거 업무는 2021년 10월 공동주택관리법령 개정을 통해 수행이 법적으로 가능해졌다. [서지영 기자]

헌재, “과잉금지 원칙에 반해”

헌법재판소는 올해 3월 23일 “경비업법 제7조 제5항과 제19조 제1항 제2호 중 ‘시설경비업무’에 관한 부분은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며 “법원 기타 국가기관 및 지방자치단체는 입법자가 개정할 때까지 위 법률조항의 적용을 중지한다. 입법자는 2024년 1월 31일까지 위 법률조항들을 개정해야 한다”고 헌법불합치결정을 선고했다.

헌재는 결정 이유에 대해 “위 법률조항들은 과잉금지 원칙에 반해 시설경비업을 수행하는 경비업자의 직업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설명했다.

A사의 항소심 재판부는 “헌법불합치결정을 하게 된 해당 사건 및 결정 당시에 비록 위헌제청신청은 하지 않았더라도 법원에 계속 중인 사건에 대해서는 헌법불합치결정의 소급효가 미친다”며 “헌재 결정 선고 전인 2020년 8월 21일 A사가 이미 이 법원에 경비업법 제19조 제1항 제2호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을 했으므로, 헌법불합치결정에 따라 해당 경비업법 규정은 이 사건에 대해서도 그 적용이 중지됐고 향후 개선입법이 이뤄진다면 이후의 규정은 이 사건에도 소급해 적용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항소심 재판부는 개선입법이 어떠한 방식으로 이뤄질 지에 따라 시설경비허가 취소처분의 적법 가능성 여부를 따졌다.

개선입법 어떻게 되든 해당 처분 ‘위법’

먼저 개선입법이 경비업무의 전념성을 해치는 비경비업무 수행을 일률적·전면적으로 금지하고 이를 위반한 경우에 한해 경비허가 전체를 필요적으로 취소하도록 하는 규정을 포함해 정하는 제한적 기속행위로 이뤄질 경우 경비업허가 취소처분의 적법 가능성 여부에 대해 살폈다.

재판부는 “A사 소속 경비원 4인이 택배관리 업무 등을 수행함으로써 경비업무의 전념성을 직접적으로 훼손하는 업무에 종사했는지를 살펴보면 각 증거들만으로는 이를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봤다.

또한 “경찰청의 A사에 대한 시설경비허가 취소처분의 사유와 기본적 사실관계의 동일성을 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당초의 처분사유를 구체적으로 표시하는 것에 불과한 정도의 처분사유 추가·변경으로써 시설경비허가 취소처분의 사유를 헌법불합치결정 취지와 일치하게 할 수 있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에 재판부는 “경비업법 제19조 제1항 제2호의 규정이 제한적 기속행위로 개선입법이 이뤄지더라도 경기남부경찰청의 시설경비허가 취소처분은 그 처분사유가 적법하게 인정된다고 볼 수 없어 위법하다”고 밝혔다.

이어서 재판부는 행정청이 경비허가 전체를 재량으로 취소할 수 있도록 단지 재량행위로 정하거나 비경비업무의 개별적 성격, 구체적 태양 등을 고려해 경비업무의 전념성을 해치지 않는 비경비업무의 범위를 구체적으로 정하고 이를 위반한 경우 행정청이 경비업의 전체 또는 일부의 정지 등 제재처분을 할 수 있도록 재량행위로 정하는 개선입법이 이뤄질 경우에 대해 살폈다.

재판부는 위와 같이 개선입법이 이뤄지게 된다면 경기남부경찰청의 경비업허가 취소처분은 “처분의 근거 법령이 행정청에 처분의 요건과 효과 판단에 일정한 재량을 부여했는데도 행정청이 그 처분으로써 달성하려는 공익과 그 처분으로 말미암아 처분상대방이 입게 되는 불이익의 내용과 정도 등을 전혀 비교형량 하지 않은 채 처분한 것이 된다”며 “따라서 위 취소처분은 재량권 불행사에 의한 재량권 일탈‧남용의 위법이 있게 된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경기남부경찰청의 A사에 대한 시설경비허가 취소처분은 경비업법 제19조 제1항 제2호의 개선입법 내용 여하에 불구하고 위법할 수밖에 없다”며 “원고의 주장은 이유 있어 이를 받아들여 경기남부경찰청의 처분을 취소한다”고 판시했다.

한편 공동주택관리법령은 공동주택 관리현장에 대한 경비업법 적용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이어지자 2020년 10월 공동주택 경비원들에게는 경비업법에도 불구하고 경비업무 외 관리업무에 필요한 업무 몇 가지를 할 수 있도록 개정된 바 있으며 일각에서는 경비업법에서도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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