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주민 부당간섭‧폭언 등 여전
과태료 조항 등 법 강화 목소리
고용불안 문제도 해소돼야

[아파트관리신문=서지영 기자] 10월 28일이 되면 인천의 모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장에 의해 살해된 고 이경숙 관리소장이 사망한 지 3주기를 맞는다. 입대의 회장의 부당한 간섭과 갑질에 시달리다 끝내 살해당한 이경숙 소장과 같은 피해를 막기 위해 마련된 ‘관리소장 갑질방지법’이 지난해 2월 11일부터 시행됐지만 아파트 관리소장들은 여전히 입주민 등의 괴롭힘에 시달리며 불안과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지난 2020년 10월 29일 고 이경숙 소장 추모식에서 동료 소장들이 촛불을 들고 있는 모습. [아파트관리신문DB]
지난 2020년 10월 29일 고 이경숙 소장 추모식에서 동료 소장들이 촛불을 들고 있는 모습. [아파트관리신문DB]

이경숙 소장을 살해한 입대의 회장 A씨는 이 소장을 살해하기 한 달 전부터 입대의 운영비 인상 요구, 수차례의 관리비 통장 재발급 지시 및 단독 인감 변경, 관리비 통장 비밀번호 요구 등으로 이 소장을 괴롭혀왔다. “소장의 집에 가봐야 소장을 믿을 수 있겠다”며 본인을 이 소장의 집에 초대하라는 황당한 요구도 했다. 이 소장은 다리를 다쳐 깁스를 한 상황에서도 관리비 통장 인감 재변경을 요청하는 A씨의 말에 아픈 다리를 끌고 은행에 다녀와야 했다.

A씨의 끊임없는 의심과 간섭에 이 소장이 직접 요청한 외부회계감사가 실시되던 중 2020년 10월 28일 오전 10시경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관리사무소에 혼자 있던 이경숙 소장은 A씨가 미리 준비해간 칼에 목을 수차례 찔려 사망했다. 오랫동안 일해온 자신의 근무지에서 다른 사람도 아닌 함께 아파트 발전을 위해 애써야 할 입대의 회장에 의해 살해된 것이다.

A씨는 최초 경찰 조사에서 “아파트 관리 운영 방식이 맞지 않았으며 소장이 무시해 화가 났다”고 범행 동기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동료 소장들은 “입주민들을 위해 노력해온 결과가 이것이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A씨의 독단적인 운영과 입주민 피해를 막고자 홀로 애쓰다 소중한 생명을 잃은 소장의 죽음에 추모의 행렬이 이어졌다.

이후 관리소장에 대한 입주자 등의 괴롭힘이나 부당한 간섭 등을 방지하기 위한 공동주택관리법 개정 노력으로 관련 규정이 강화됐지만 관리소장들을 보호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 개정 법은 부당간섭 등 금지대상을 입대의에서 입주자등까지 확대하고 금지행위 구체화, 피해사실 조사 의뢰를 받은 지자체의 수사기관 고발 근거 마련 등 구제 가능성도 넓혔지만 여전히 관리소장들은 을이 될 수밖에 없는 고용관계 안에서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대한주택관리사협회는 2020년 11월 10일 국회 앞에서 고 이경숙 관리소장을 살해한 가해자에 대한 엄벌과 재발 방지를 위한 법 제정 등을 요구하며 삭발식을 거행했다. 이후 관리소장에 대한 괴롭힘 방지 규정을 강화한 공동주택관리법이 시행됐지만 여전히 관리소장들은 부당간섭 등에 시달리고 있다. [아파트관리신문DB]
대한주택관리사협회는 2020년 11월 10일 국회 앞에서 고 이경숙 관리소장을 살해한 가해자에 대한 엄벌과 재발 방지를 위한 법 제정 등을 요구하며 삭발식을 거행했다. 이후 관리소장에 대한 괴롭힘 방지 규정을 강화한 공동주택관리법이 시행됐지만 여전히 관리소장들은 부당간섭 등에 시달리고 있다. [아파트관리신문DB]

“소장 교체 요구할까봐 대응 못해”

관리소장들은 “관리업체에 소속돼 있어도 동대표 등이 회사에 관리소장 교체를 요구하면 회사는 위수탁관리 재계약을 위해 입주민들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고, 관리소장도 회사의 재계약과 고용 유지를 위해 입주민들의 갑질 등에 쉽게 대응할 수 없다”고 입 모아 말한다. 입주민 등의 요구로 근무지에서 나오게 된 소장은 업체에서 다른 사업장으로 바로 보내주지 않으면 한동안 실업자 신세가 되고 만다.

개정 법은 입대의 및 입주자등으로 하여금 부당간섭 등을 위해 주택관리업자에게 관리소장 및 소속 근로자에 대한 해고, 징계 등 불이익 조치를 요구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기도 했지만 관리업체에 소장의 교체 등을 요구하는 경우가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 관리업체가 이를 고발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에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고 있을 뿐이다.

또 지자체 또한 관내 아파트 입주민의 갑질에 대한 제대로 된 조사와 수사기관 고발을 하기가 쉽지 않아 갑질금지법은 선언적인 측면에만 머물고 있다.

일부 입주민들은 “요즘 같은 세상에 누가 그렇게 갑질을 하나. 우리 아파트는 그런 갑질이 없다”고도 말한다. 하지만 많은 입주민들 중 누군가는 여전히 관리소장 등 종사자들을 아파트 관리를 위해 애쓰는 전문가로 존중하지 않고 자신이 월급을 주기 때문에 마음대로 일을 시켜도 되는 피고용인으로만 인식하고 크고 작은 괴롭힘을 이어가고 있다.


관리소장 86%가 피해 경험

주생활연구소가 지난해 11월 23일부터 12월 7일까지 공동주택 및 집합건물 관리 근로자 총 375명을 상대로 실시한 ‘입주민 부당행위 유형 및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81%가 입주민으로부터 폭언 등 부당행위 피해를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직무별로 살펴봤을 때 관리소장 중에서는 86%가 피해경험이 있었다.

입주민 부당행위 유형(중복응답)은 폭언 68.3%, 모욕·비하 53.6%로 언어적인 부당행위가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부당업무 지시 41.9%, 사적이익 요구 28.8%, 업무상 불이익 12.8%, 폭행(9.1%) 순이었다.

또 최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허영 의원이 주택관리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8년부터 2023년 6월까지 최근 6년간 임대아파트 관리직원이 입주민에게 폭언·폭행을 당한 경우가 1112건에 달했다. 피해사례는 줄어들지 않고 증가했다. 2020년 대비 2021년에는 22건, 2021년 대비 지난해에는 14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부당해고 방지 규정 필요”

관리업계 관계자들은 관리종사자들에 대한 입주자등의 부당간섭 등이 이어지는 근본적인 원인으로 ▲비용 절감을 위한 인력 축소 ▲단기고용 ▲불분명한 사용자 지위와 위탁관계 등을 꼽는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는 ▲지자체의 지원 확대 ▲용역회사 변경 시 고용승계 의무화 ▲입대의의 노동자 보호 책임 강화 ▲입주민 갑질에 대한 입대의·관리사무소의 보호 체계 마련 ▲관리소장 지위의 독립화 등이 제시된다.

또 공동주택관리법의 부당간섭 금지 조항이 실효성이 떨어지므로 과태료 등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와 함께 각종 규제 강화로 공동주택 관리현장에 갈수록 늘어나는 의무에 따라 관리소장에 주어지는 과중한 업무 부담과 지자체의 과태료 남발을 막기 위한 제도 개선 등 필요성도 강조되고 있다.

대한주택관리사협회 임한수 정책국장은 “입주자등의 갑질에 대한 과태료 조항을 신설한다면 경고성 의미로 어느 정도 방지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본다”며 “주택관리사들은 징역 등 형사적인 처벌 조항까지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에서는 ‘과하다’는 이유로 거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임 국장은 “고용불안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법령이나 지자체 관리규약 준칙에 일정기간 동안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관리종사자를 해고하지 못하도록 하는 규정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전했다.

한편 대한주택관리사협회 인천시회 등은 10월 28일 고 이경숙 소장 3주기를 맞아 고인이 안치돼 있는 인천가족공원 별빛당 등에서 추모식을 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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