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국회의원의 성실도를 입법 건수로 파악하는 관행이 생겼다. 그러다 보니 이익 단체나 유권자의 민원에 의해서 법률이 너무 쉽게 만들어지는 경향이 있다.

어떤 문제가 사회에 있으면 현실에 기반을 둔 해결책을 구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법률이라는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면, 먼저 수단이 꼭 법률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숙고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 필요하다. 현장을 배제하고 형식적인 의견수렴절차를 거쳐 후다닥 해치우는 식의 건수 채우기에 치우친 입법은 다양한 해결 수단의 모색 기회를 차단하고 아울러 과도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하게 된다.

특히 공동주택관리와 관련된 법률들을 보면 안전을 명분으로 무분별하다고 할 정도로 많은데, 지난 2년 동안 공동주택 관리업계에 부과된 의무화 사항은 세대내 전기시설의 점검, 정보통신설비유지보수 관리자 선임, 세대내 소방시설 점검 및 겸직금지, 기계설비유지관리자 선임 및 성능점검, 고압변압기 감시시스템 설치 및 상시 확인 등이 있다.

이로 인한 관리비 상승으로 현장의 관리사무소 종사자들은 마치 죄인인 양 입주민에게 설명하기 바쁘다. 공동주택 종사자의 본연의 업무는 공용부분의 관리에 있었지만, 이제는 전유부분까지 관리하게 하는 것인데 그 비용은 누가 부담하는가?

더욱 큰 문제는 이런 의무화 입법 과정에서 공동주택 관리업계나 종사자의 의견 그리고 실제로 비용을 부담하는 입주민의 의견이 철저히 배제되었다는 것이다. 국회의원과 정부가 전기소방기계정보통신업자들이나 관련 이익 단체들의 로비에 휘둘린 결과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공동주택관리와 관련하여 선을 넘는 각종 의무화 법률, 그리고 겸직을 금지하는 각종 안전관리자의 현장 상주화는 지식정보사회로의 큰 흐름에도 역행하는 것이다. 자연재난이 많은 이웃 나라 일본의 사례를 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일본은 디지털과 정보화에 뒤졌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그런 일본조차도 전국에 산재해 있는 단지를 인터넷망을 통해 관리회사 본사에서 시스템으로 통합관리하고 본사의 시설전문팀이 정기적인 점검과 문제가 생긴 곳을 수시점검하는 순회관리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개별 공동주택에는 청소경비를 담당하는 인력과 관리서비스를 총괄하는 현장 책임자가 있을 뿐이다.

각종 자격증을 가진 안전관리자의 선임의무도 없으며, 상주의무는 더구나 없다. 그럼에도 지진 등의 재난 상황에서 큰 문제 없이 공동주택이 안전하게 유지·관리되고 있다. 이런 일본의 사례는 각종 의무화 법률만이 해결책이 아니라는 명백한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초고령화 사회를 눈앞에 두고 있는 지금은 개인 한 사람의 다기능 보유가 당연한 시대라고 할 수 있다. 다기능 보유를 방해하는 겸직금지라는 허무한 의무화는 없어야 한다. 전세계를 실시간으로 잇는 첨단 정보통신기술을 이용한 초연결시대에 안전관리를 명분으로 구태의연한 상주화를 통한 복지성 일자리 창출은 지양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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