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이슈 : 동대표 단체 채팅방의 업무시간 외 메시지

시간 관계 없이 질문·업무지시
사생활 방해·갑질 논란도
‘퇴근 후 카톡 금지’ 법제화 논의

[아파트관리신문DB]
[아파트관리신문DB]

 

#퇴근 후 집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TV를 보며 잠깐 쉬고 있던 관리소장 A씨는 갑자기 울리는 핸드폰 메신저 알림 소리에 궁금함을 느끼며 메시지를 확인했다. 메시지를 보낸 이는 다름 아닌 자신이 일하는 아파트의 입주자대표회의 감사. 감사는 아파트 시설 관리와 관련해 질문을 하며 내일 당장 시정해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A씨는 감사의 밤낮을 가리지 않는 연락 때문에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었지만 사실상 갑과 을 관계이기 때문에 연락을 거부할 수는 없었다. 감사는 답변이 올 때까지 메시지를 보내왔다. 

스마트폰 및 모바일 메신저 사용량이 늘어난 최근 아파트에서 입주자대표회의 구성원들과 관리소장이 함께 있는 단체 채팅방을 만들어 업무 내용 등을 공유하는 경우가 많다. 모바일 메신저는 시간과 장소에 관계 없이 의견을 주고 받는 등 소통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때로는 퇴근 후나 휴일 등 업무 외 시간에 업무지시를 하는 등 사생활 방해 요소가 될 수 있다.  

최근 부산의 한 아파트에서 A씨와 같은 피해사례가 발생해 논란이 됐다. 이 아파트 입대의 감사 B씨는 입대의 회의 출석은 절반에 그치면서 관리직원들 동의 없이 만든 모바일 단체 채팅방에서는 이른 시간이며 늦은 시간이며 관계 없이 업무지시와 질문 등을 해 직원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입주민들은 이로 인해 직원들의 근로의욕이 떨어져 업무처리 미진에 따른 입주민 피해가 발생한다고 지적했으며 관리직원들은 사생활보호권 위반과 갑질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경기 오산시의 한 아파트 관리소장은 “동대표들과의 단체 채팅방은 소통 측면에서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지만 밤이나 휴일에도 업무 관련 질문 등이 나올 수 있다는 단점도 있다”며 “또 이전처럼 입주자대표회장이 동대표들의 의견을 취합한 후 관리소장에 전달하는 방식이 아니라 많은 동대표들의 의견을 모두 듣고 조율하는 것이 힘들다”고 말했다. 

경기 안양시 소재 아파트에서 일하는 다른 관리소장은 “시간약속을 정해야 하는 대면보고 대신 필요할 때마다 수시로 업무보고와 긴급처리를 할 수 있고 활발한 소통 가운데 동대표들의 생각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등 긍정적인 면이 더 많은 것 같다”면서도 “급하지 않은 사항인데 업무 외 시간에 질문이나 요청을 할 때는 다소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므로 이러한 예의만 지켜주면 좋을 것 같다”고 의견을 전했다.  
  

"사실상 연장 근무로도 볼 수 있어"
퇴근 후 업무지시는 아파트 관리사무소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직장에서도 문제가 되는 사안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직장인의 83.5%가 ‘퇴근 후 업무 연락을 받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연락 사유로는 ‘갑작스런 업무 처리 요청’이 가장 많았고, ‘생각난 김에 지시하려고’, ‘시간을 민감하게 생각하지 않아서’라는 답변이 뒤를 이었다. 

최근 근로자의 퇴근 후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디지털 기기의 사용을 통한 연락을 금지하는 이른바 ‘퇴근 후 카톡 금지법’이 해외 사례에 이어 국내에서도 본격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외국에서는 프랑스 등 유럽 일부 국가가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법에 담고 있는데 프랑스의 경우 회사가 의무적으로 노동조합과 연결차단권 관련 단체교섭을 하도록 규정했다. 국내에서는 삼성전자, LG전자 등 대기업들이 선도적으로 퇴근 후 카톡 금지 캠페인에 나서고 있으며 정부도 올해 3월 ‘근로시간 제도 개편방안’을 통해 ‘연결되지 않을 권리 논의 TF’ 운영 등 계획을 밝힌 바 있다. 

국회에서도 관련법 개정을 위한 움직임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9월 더불어민주당 노웅래 의원은 사용자가 근로시간 이외의 시간에 SNS 등을 이용해 반복적, 지속적으로 근로 지시를 내리는 등 근로자의 사생활의 자유를 침해하지 못하도록 하면서 이를 어길 경우 과태료 500만원에 처해지도록 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노 의원은 개정안 제안이유에서 “각종 통신수단을 이용한 근무시간 외 반복적, 지속적인 업무지시는 공적 공간과 사적 공간의 경계선을 허물어 사실상 근무시간 연장이나 다름없는 상황”이라며 “휴식의 리듬을 깰 정도로 반복적, 지속적으로 연락을 하거나 시간을 따로 들여 답해야 할 연락이 왔다면 초과근무로 볼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일각에서 아파트 동대표나 입주민 등도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적용 대상에 포함함으로써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 적정 범위를 넘어선 업무지시 등을 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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