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의해지 전제하에 손해배상 규정 정한 것”

[서지영 기자]

부산고법

아파트 관리업체가 관리사무소장 교체 요구에 응하지 않자 입주자대표회의가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이에 대해 관리업체 측은 계약해지통보 효력정지 가처분을 신청했으나 법원은 위임계약에 따른 임의해지권을 인정,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기각을 결정했다.

부산고등법원 제6민사부(재판장 박준용 부장판사)는 부산 북구 A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와 위·수탁계약을 맺은 관리업체 B사가 대표회의를 상대로 제기한 계약 해지 통보 효력정지 가처분 소송 항고심에서 “원고의 항고를 기각한다”고 결정했다.

B사는 A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와 2020년 3월 8일부터 2023년 3월 7일까지 관리업무를 수행하는 공동주택 위·수탁계약을 체결했다.

한편 A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는 2021년 7월 6일 B사에 관리소장 교체를 요구했으나 B사로부터 교체 요청에 대한 답변이 없자 2021년 8월 17일 B사에 위·수탁관리계약을 해지한다고 통보했다.

B사 측은 “위임계약인 이 사건 계약에서는 제13조에 해지 사유를 별도로 규정해 제한함으로써 민법에서 정한 임의해지권(민법 제689조 제1항)을 배제했으므로 이 계약에서 정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만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며 항고했다.

A아파트 대표회의와 B사가 체결한 계약서 제13조 제1항 ‘계약의 해지’ 조항에는 ‘갑과 을은 다음 각 호의 사유가 있는 경우에 한해 계약을 해지할 수 있으며, 계약 해지와 함께 그에 따른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계약 당사자 일방이 다음 각 호의 사유가 아닌 경우로 계약을 임의해지하는 경우, 잔여 계약기간에 대한 위탁관리수수료 등 상대방에게 발생한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1심 결정 당시 재판부는 이 사건 계약 제13조 제1항 뒷부분 ‘계약 당사자 일방이 다음 각 호의 사유가 아닌 경우로 계약을 임의해지하는 경우, 잔여 계약기간에 대한 위탁관리수수료 등 상대방에게 발생한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를 언급, “A아파트 대표회의와 B사가 제13조 제1항 각 호의 사유 이외에도 임의해지가 가능하다는 전제에서 손해배상의 책임을 구체적으로 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면서 “만약 제13조 제1항 각 호의 사유 외에 해지가 불가능하다고 약정했다면, 임의해지의 경우를 대비해 잔여 계약기간에 대한 위탁관리수수료를 지급하는 내용의 손해배상 규정을 별도로 둘 이유는 없다”고 판단한 바 있다.

2심 재판부 역시 이 부분을 지적하며 “제13조 제1항 뒷 부분은 각 호의 사유 이외에도 임의해지가 가능하다는 것을 전제로 하지 않고서는 이해되기 어려운 것”이라면서 “민법이 정하는 임의해지권(민법 제689조 제1항)을 배제하기로 약정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일축했다.

한편 B사는 항고를 통해 대법원 판결(대법원 2019. 5. 30. 선고 2017다53265)을 근거로 A아파트 대표회의의 임의해지는 부적합하다고 주장했다.

이 대법원 판결은 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이 정비사업전문관리업자와 체결한 계약의 해지에 관한 것으로, 당시 대법원은 “위 계약이 민법상 위임에 관한 규정을 준용하도록 돼 있으나 당사자가 해지사유 및 절차, 손해배상책임 등에 관해 민법 제689조와 달리 약정했다면 이를 단순히 주의적인 성격의 것이라고 쉽게 단정해서는 안 된다”고 판시했다.

2심 재판부는 “B사가 들고 있는 대법원 판결은 이 사건과는 사안을 달리해 그대로 원용하기에 적절하지 않다”면서 “채권자가 언급하는 공동주택관리법 제13조(관리업무의 인계), 제102조(과태료), 같은 법 시행령 제10조(관리업무의 인계) 등은 공익적 견지에서 B사와 같은 아파트 관리회사에게 무거운 이행의무를 지운 규정일 뿐이므로 이를 A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와 같은 대표회의의 위·수탁관리계약 해지의 자유를 제한하는 근거로 삼기는 부족하다”고 일축했다.

한편 B사는 이 사건 계약 제13조 제1항은 ▲부산시 관리규약 준칙 ‘공동주택 위수탁관리계약서’ ▲A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가 이전 관리업체와 체결한 공동주택 위·수탁관리계약서 등의 제13조 제1항과 그 문언이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며 “A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가 지난 3년간 타 관리회사들과 위·수탁관리계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하는 행태를 반복해온 데에 대한 대비책으로 A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가 B사를 상대로 임의해지권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규정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B사가 항고 이유서를 통해 밝힌 “이 사건 계약 제13조 제1항 후단에 ‘…계약을 임의해지하는 경우, 잔여 계약기간에 대한 위탁관리수수료 등 상대방에게 발생한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규정을 도입한 것은 A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가 과거 관리회사들을 상대로 위·수탁계약관리계약을 임의해지하고서도 손해배상책임을 회피한 전력을 고려해 손해배상책임을 반드시 지우기 위한 의도였다”는 내용을 근거로 “이는 A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의 임의해지권을 인정하지 않고서는 성립하기 어려운 주장이어서 임의해지권을 부정하는 B사의 주장은 명백하게 모순된다”고 반박했다.

이어 B사는 A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의 이 사건 계약 해지 통보로 인해 ▲다른 아파트의 주택관리업자 선정 입찰에 참가할 자격이 제한되거나 영업활동에 입게 될 타격 ▲B사를 매개로 이 사건 아파트 단지에 용역이나 재화를 공급하는 제3의 업체와 이 사건 아파트의 입주자들이 입게 될 무형의 불이익을 언급하며 계약 해지 통보의 효력 정지를 구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B사가 주장하는 직·간접적인 손해는 본안소송을 통해 금전적인 손해배상을 전보받을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B사가 구하는 가처분을 인정하지 않으면 회복할 수 없는 손해가 발생하는 등의 사정이 있다고 보기 어려고, 아파트 단지에 용역이나 재화를 공급하는 제3의 업체라든지 입주자들이 입게 될 손해 유무는 B사가 제기한 가처분신청에서 그 신청의 당부를 판단하기 위한 사유로 삼기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이에 재판부는 “1심결정은 정당하므로 이 항고는 이유 없어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이 판결은 관리업체와 대표회의 모두 항소를 제기하지 않으면서 그대로 확정됐다.

민법 제689조, “강행규정 아닌 임의규정”

한편 법무법인 산하 김미란 변호사는 본지 칼럼 ‘위·수탁관리계약, 함부로 해지할 수 없다’<본지 1348호 참고>를 통해 빈번히 발생하는 위임계약 해지를 지적한 바 있다.

칼럼에서 김미란 변호사는 “아파트 입장에서는 위·수탁관리계약을 해지하는 데 아무런 주저함이 없다”면서 “위임계약 해지를 둘러싼 법적 분쟁에서 법원이 수차례 아파트의 손을 들어 주며 위임계약의 해지 법리, 임의 해지의 자유가 마치 전가의 보도인 양 활약하게 둔” 사법 체계의 현실을 꼬집었다.

김 변호사는 “위임계약 해지의 자유는 당사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강제적으로 통용되고 적용돼야 하는 강행규정이 아닌 당사자 의사에 따라 얼마든지 적용이 배제될 수 있는 것”이라며 “위임계약 해지의 자유를 규정한 민법 제689조는 강행규정이 아니라 임의규정에 불과한데 언젠가부터 마치 강행법규인 것처럼 여겨졌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앞서 B사가 인용한 대법원 판결(대법원 2019. 5. 30. 선고 2017다53265)을 따른 또다른 판결(대법원 2021. 4. 8. 선고 2017다286003 판결)을 소개했다.

김미란 변호사는 “법원은 채무불이행 등 해지사유를 인정할 수 없어 채무불이행에 따른 적법한 해지로 보기 어렵고, 민법 제689조 제1항에 따른 임의해지 주장에 대해서도 위 규정은 임의규정에 불과한데 계약상 이를 배제하고 있다며 주택관리업자의 손을 들어줬다”면서 “위·수탁관리계약의 법적 성질이 위임이라는 이유로 함부로 해지해서는 안 된다는 점 등을 분명히 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고 봤다.

저작권자 © 아파트관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