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버넌스(Governance)’라는 말을 종종 접한다. 원래는 어원에서도 보듯 ‘국가경영’ 혹은 ‘공공경영’의 의미가 강했으나 요즘은 ‘기업 거버넌스’, ‘IT거버넌스’와 같이 다양한 분야에서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거버넌스를 국어사전에서는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주어진 자원 제약하에서 모든 이해 당사자들이 책임감을 가지고 투명하게 의사 결정을 수행할 수 있게 하는 제반 장치’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바람직한 ‘공동주택관리 거버넌스’는 무엇일까?

공동주택관리에 거버넌스라는 용어가 사용된 것을 찾아보면 대한주택관리사협회 산하 한국주택관리연구원에서 ‘공동주택관리의 민관협력과 거버넌스’라는 제목으로 모 언론에 기고한 것이 눈에 띈다. 내용을 보면 관리서비스를 제공하는 주체를 국가(중앙행정기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민간단체의 4가지 유형으로 분류해 공공기관과 민간단체가 함께 공동주택관리 거버넌스를 형성하는 것을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제시하는 듯하다. 실제 공동주택에 거주하는 주민들이나 관리업무 종사자들도 공동주택관리 거버넌스로 국가나 지자체 등 행정기관을 먼저 떠올리거나 분쟁이 있는 경우 행정기관의 판단에 의존해서 문제해결을 하려는 경우들이 많은 실정이다. 그러한 분위기의 연장선에서 심심찮게 나오는 것이 ‘공동주택관리의 공영제’ 혹은 ‘공동주택관리청’을 만들자는 주장인데 우려를 금할 수 없다.

기본으로 돌아가 단독주택관리를 생각해보자. 단독주택관리는 거버넌스라고 거창하게 말할 것도 없이 한마디로 ‘내 집 내 맘대로’일 것이다. 그렇다면 복수의 세대가 사는 다세대주택(이 때부터가 공동주택이다) 의 경우는 어떤가. 더 나아가 100세대, 1000세대의 아파트는 어떤가. 본질적으로 사유재산인 주택이 공동 소유자나 점유자들이 많아진다고 해서 공공(公共)자산으로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소유자나 점유자들의 수만큼 더 큰 규모의 ‘공동(共同)성’이 존재할 뿐일 것이다. 그래서 만들어 지는 것이 이해당사자 간의 약속인 ‘관리규약’이다.

유의해야 할 것은 우리나라는 300세대 이상(혹은 조건에 따라 150세대 이상)의 아파트에 대해 적용되는 ‘공동주택관리법’이 있다는 점이다. 공동주택관리법에서는 관리문제에 있어 세입자의 참여도 허용하고 있으며, 입주자대표회의 구성과 운영은 물론, 관리규약, 관리비, 장기수선계획, 관리업자선정, 주택관리사 등 폭넓은 문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공동주택관리법은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제도로 공동주택관리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많은 것을 규정함으로써 공동주택관리 거버넌스에 이미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국회에서 만들어진 법률은 사적인 약속인 관리규약에 우선된다.

따라서 관리규약만큼은 그 아파트의 특성과 이해당사자들의 자율성이 충분히 반영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 줘야 한다. 국토교통부의 ‘사업자 선정지침’이나 지자체의 ‘관리규약준칙’을 무리하게 관리규약에 반영시키려는 행정기관의 잘못된 행태는 그런 의미에서 이제 사라져야 한다. 그 영향으로, 이젠 많이 바로잡아졌지만, 아직도 관리규약을 개정하면 지자체의 승인(수리)을 받아야 유효한 것으로 알고 있는 관리소장들이 있다. 정리하면, 공동주택관리법이 의무적으로 적용되는 아파트는 그러한 법과 관리규약을 바탕으로 입주민들이 중심이 되어 관리를 하면 된다. 행정기관이나 주변의 민관(民官)단체들은 서포터로서 역할을 해주면 된다. 그것이 바람직한 ‘공동주택관리 거버넌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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