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법 판결

배상책임보험사,
구상금 지급 의무 있으나

화재보험사의 청구는
보험 약관 따라 ‘기각’

[아파트관리신문=고경희 기자] 아파트 재활용품분류작업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공용부분과 일부 세대가 피해를 입은 가운데 입주자대표회의가 방호조치의무를 다하지 않았으므로 배상책임보험을 체결한 보험사는 화재보험사에 구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다만, 법원은 화재보험약관의 ‘타인을 위한 계약인 경우 대위권을 포기하겠다’는 약정에 따라 화재보험사는 배상책임보험사에 구상금을 행사할 수 없다고 봤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36단독(판사 김병룡)은 최근 서울 서초구 A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와 화재보험계약을 체결한 보험사 B사가 대표회의와 재난배상책임보험계약을 체결한 C사를 상대로 제기한 구상금 청구소송에서 “원고 B사의 청구를 기각한다”는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보험사 B사는 A아파트 대표회의와 아파트 12개 동, 부속설비 및 단지 내 가재도구에 대해 주택화재보험계약을 체결했다. 계약에서 피보험자는 별도로 특정하지 않았고 보험증권의 보험목적 소유자란에 ‘입주자대표회의’로 기재돼 있다. 화재보험 약관상 보상하는 손해 범위는 ‘사고(화재, 폭발 또는 파열)에 따른 직접손해, 소방손해, 피난손해’로 돼 있다.

보험사 C사는 대표회의와 아파트 12개 동, 부속건물에 대해 재난배상책임보험계약을 체결했고 계약에서 피보험자는 대표회의로 기재돼 있다. 책임보험 약관상 보상하는 손해 범위는 ‘피보험자가 소유, 관리 또는 점유하는 시설에서 화재 등으로 발생한 타인의 생명·신체나 재산상의 손해에 대해 피보험자가 피해자에게 지급할 책임을 지는 법률상의 손해배상금’ 등으로 돼 있다.

지난해 1월 A아파트 동 지하 1층에 있는 재활용품분류작업장에서 원인미상의 발화가 있어 주변 물질을 태운 후 확대돼 동 계단, 복도, 엘리베이터실 등 공용부분을 포함해 20세대의 건물 및 가재도구를 훼손했다.

B사는 화재보험계약에 따라 손해액 1억6877만여원의 보험금을 지급하면서 공용부분 보험금 7980만여원은 대표회의에, 전유부분 보험금 6548만여원은 구분소유자들에게, 가재도구 보험금 2348만여원은 각 세대 소유자에게 지급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C사가 책임보험계약 보험자로서 구상금지급의무가 발생한다고 보면서도 화재보험약관에서 타인을 위한 계약인 경우 대위권을 포기하겠다는 약정에 따라 책임보험사에 구상금을 행사할 수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재활용품분류작업장에는 가연성 물질이 쌓여있었고 그 주변에서 발화된 불이 가연성 물질에 옮겨 붙어 건물 등으로 빠르게 확산된 점으로 보이는 점 등 비록 화재 원인이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대표회의는 점유, 관리자로서 재활용품분류작업장의 위험성에 비례해 방호조치의무를 다하지 않았고 그러한 보존상 하자는 화재 확산의 원인이 됐다”며 “피고 C사는 대표회의의 책임보험계약 보험자로서 원고 B사가 지급한 보험금을 구상금으로 지급할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또한 C사는 대표회의가 화재보험계약자로서 상법 제682조에서 정한 제3자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원고 B사의 구상청구에 응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상법 제682조는 손해가 제3자의 행위로 인해 발생한 경우 보험금을 지급한 보험자는 제3자에 대한 보험계약자 또는 피보험자의 권리를 취득한다고 정하고 있다.

하지만 재판부는 “화재보험은 대표회의가 구분소유자 등을 위해 아파트 전체 및 아파트 내 가재도구를 하나의 보험목적물로 해 체결한 보험으로서, 피보험자는 각 구분소유자 및 세대에 속한 사람 중 가재도구의 소유자고 피보험이익은 이들이 각자 자신 소유의 아파트 각 전유부분, 공용부분 및 가재도구에 대해 갖는 재산상 이익으로 봄이 상당하다”며 “손해를 야기한 제3자가 타인을 위한 손해보험계약의 보험계약자인 경우에도 보험자대위에 관한 상법 규정이 적용된다”면서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만, 재판부는 ‘화재보험계약 약관에서 타인을 위한 계약인 경우 계약자에 대한 대위권을 포기하기로 약정했으므로 C사에 대해 구상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C사의 주장은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약관 조항에 따라 원고 B사로서는 비록 대표회의와 각 구분소유자들 및 가재도구 소유자들에게 화재에 따른 보험금을 지급했다 하더라도 대표회의의 보험자인 피고 C사에 대해 구상권을 행사할 수 없다 할 것이므로 원고 B사의 구상금청구는 이유 없다”고 못 박았다.

B사는 약관 조항은 계약자에 대해 대위권을 포기한다고 규정하고 있을 뿐이므로 조항은 보험계약자의 책임보험자에 대해 효력이 없다고 주장했으나, “상법 제724조 제2항에 의하면 보험자는 피보험자가 사고에 관해 가지는 항변으로써 제3자에게 대항할 수 있어 피고 C사는 피보험자인 대표회의에 대한 구상권 포기 약정을 들어 B씨의 구상금청구를 거절할 수 있다”며 인용하지 않았다.

한편, B사는 이 같은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를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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