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지법 판결

[아파트관리신문=고경희 기자] 아파트 EPS실의 세대전원 공급용 버스 덕트가 파손돼 소방서의 점검 후 관리소장이 현장철수 지시를 내렸으나 관리직원이 이를 어기고 EPS실에 들어가 점검하던 중 화재가 발생했다. 심각한 화상을 입은 관리직원이 입주자대표회의에 실질적 사용자로서 손해를 배상하라고 주장했으나, 법원은 당시 직원이 지시를 어기고 EPS실에 들어갔고 대표회의가 실질적 사용자도 아니라며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인천지방법원 민사22단독(판사 배구민)은 최근 인천 연수구 A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근무하다가 산업재해를 입은 직원 B씨와 B씨에게 장애연금을 지급한 국민연금공단이 이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B씨와 원고승계참가인 국민연금공단의 청구를 모두 기각한다”는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B씨는 A아파트 위탁관리업체인 C사에 전기안전관리자로 채용돼 2015년 8월부터 A아파트에서 근무했다.

그런데 그해 9월 이 아파트 102동 EPS실 안에서 세대전원 공급용 버스 덕트가 파손돼 소화용 가스가 분출됐고 101동과 102동이 정전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출동한 소방차가 점검을 마치고 철수한 후 관리소장 D씨와 일부 직원들은 소방관계자와 면담을 하고 이 아파트 건설사 측에서 전문가가 오면 조치를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D씨는 건설사에 긴급보수요청을 하는 한편, 직원들에게 현장에서 철수할 것을 지시하면서 다른 직원들에게도 철수 지시를 전달할 것을 명했다.

그러나 B씨는 지시내용과 달리 EPS실 안으로 들어가 점검을 하던 중 그곳에서 발생한 화재로 화상 등 심각한 부상을 입게 됐다. 이에 국민연금공단은 B씨에게 장애연금으로 295만여원을 지급했다.

B씨는 “본인은 이 아파트의 설치·보존상 하자로 발생한 화재사고로 인해 심각한 피해를 입게 됐으므로 이 아파트의 간접점유자이자 관리업무의 궁극적 귀속주체, 본인의 실질적 사용자인 대표회의는 이에 따른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존재, 2억2401만여원을 지급하라”며 대표회의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국민연금공단도 “B씨에게 장애연금으로 295만여원을 지급했으므로 급여액의 범위에서 손해배상채권을 대위할 수 있어 대표회의는 국민연금공단에 지급금 상당액 및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공작물의 설치 또는 보존의 하자로 인해 타인에게 손해를 가했을 때 공작물의 점유가 간접점유인 경우에는 직접점유자가 1차적 책임을 지고 직접점유자에게 책임을 지울 수 없는 경우 간접점유자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대법원의 판례를 인용했다.

그러면서 판결문에서 “원고 B씨가 위탁관리업체 C사의 직원이고 관리계약에 의해 화재사고가 발생한 EPS실의 직접적인 관리책임은 C사에 있으며 C사가 직접점유자에 해당함은 원고 B씨 등도 자인하고 있어 이 사고로 인한 직접적인 손해배상 책임이 C사에 없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또한 “원고 B씨는 위·수탁 관리계약서에서 ‘갑 및 입주자 등의 귀책으로 발생하는 사고, 제3자에 의한 고의 또는 과실에 의한 사고 및 손해’는 을인 위탁사가 변상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고 주장하나, ‘갑 또는 입주자 등’의 의미에 C사의 직원이 당연히 포함된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이를 근거로 직접점유자에 해당하는 C사의 책임이 면제된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소방관서에서 이 아파트로 출동해 현장을 점검했으나 뚜렷한 원인을 발견하지 못했으며, 원고 B씨는 관리소장의 철수명령을 전달받았던 것으로 보이는데, 만약 전달받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원고 B씨는 당시 상황의 심각성을 알고 있었고 EPS실에 들어갈 무렵 다른 직원들을 현장을 떠나고 없던 상황이었다”며 “그럼에도 원고 B씨가 관리소장의 철수명령을 무시하거나 상황의 심각성을 알면서도 지시사항을 확인하지 않은 채 임의로 행동한 것에 비춰 C사에 관리업무를 포괄적으로 위임한 피고 대표회의가 직원들의 EPS실 출입을 막기 위한 방호조치까지 해야 할 의무를 부담한다고 보기 어렵고, 사고로 인한 원고 B씨의 피해는 본인의 이례적인 행동의 결과”라고 못 박았다.

이와 함께 대표회의가 관리직원들의 사용자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직원들이 관리업자와 체결한 근로계약이 형식적이고 명목적인 것에 지나지 않고, 직원들이 사실상 대표회의와 종속적인 관계에서 근로를 제공하는 등의 사정이 존재해 직원들과 대표회의 사이에 묵시적인 근로계약관계가 성립돼 있다고 평가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 아파트의 관리계약서에는 ‘갑이 주택법 시행령 규정에 위반해 을의 직원인사·노무관리 등의 업무수행에 부당하게 간섭한 경우 사용자 배상책임은 갑이 진다’라고 규정돼 있고, 원고 B씨가 C사와 근로계약을 체결하는 등 원고 B씨의 사용자는 C사이므로, 근무장소가 이 아파트라는 사정만으로 피고 대표회의가 원고 B씨의 사용자라거나 피고 대표회의가 관리소장을 고용해 실질적으로 지휘·감독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언급했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원고 B씨와 참가인 국민연금공단의 청구는 모두 이유 없어 이를 각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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