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Autonomy).
남의 지배나 구속을 받지 않고 자기 스스로의 원칙에 따라 어떤 일을 한다는 뜻으로, 이 말은 학교에서, 직장에서, 병원에서, 일상생활에서 다양하게 쓰인다. 독립된 단어 하나만으로도 사용되지만 복합어로 구성돼 쓰이기도 한다. 자율규제, 자율관리, 자율정책, 자율심의, 자율교섭, 자율시스템, 자율학습, 자율학교, 자율주행, 자율전공, 자율신경, 자율반등, 자율방범….

이 말은 원래 철학적 용어로, 그리스어 아우토스(Autos)와 노모스(Nomos)에서 유래했다. 아우토스는 ‘자기자신’, 노모스는 ‘규범’을 뜻한다. 자율은 ‘자기 자신에게 규범을 부여’ 또는 ‘스스로를 지배할 수 있는 능력’이다. 숱한 철학자들이 자기 방식으로 정의를 했지만, 이 말과 관련해 굳이 대표적인 한 사람을 꼽으라면 칸트다. 칸트는 이 자율적 의지를 자유 의지라 했다. 자율은 선택을 전제로 하고 있다.

공동주택 관리업계에서는 요즘 ‘자율’이라는 말을 너무나 소홀히 대접하고 있다. 잊혀진 용어인 양 괄시한다. 대신 ‘규제, 지침, 억제, 제한, 통제, 타율, 한정…’ 이런 말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공동주택관리법은 지방자치단체의 의무로서 관리규약준칙을 정하도록 하고 있고 입주자들은 이 준칙을 참조해 관리규약을 정하고 있다. 그렇지만 각 지자체에서는 비리를 방지한다는 명목으로 아파트 단지의 자율성과 다양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획일적인 내용을 공동주택 관리규약준칙에 담고 있다. 그리고 지자체는 관리규약준칙대로 무조건 관리규약을 개정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얼마 전 관리규약준칙을 따르지 않은 행위가 위법이 아님을 보여주는 법원 판결이 나온데 이어 최근 또다시 법원은 관리규약준칙은 참조용으로서 하나의 기준에 불과할 뿐이므로 관리규약이 이와 다르다는 이유로 하자가 있다고 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놨다.

법원은 판결문에서 “공동주택의 관리규약은 공동주택의 관리 또는 사용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입주자 등의 보호와 주거생활의 질서유지 등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므로 가급적 그 독자성과 자율성을 존중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또한 “시 관리규약준칙은 시장이 공동주택의 관리 또는 사용에 관해 준거가 되는 표준관리규약으로 제정된 것으로, 이는 공동주택의 입주자 등이 이를 참조해 자체적인 관리규약을 정하도록 하는 하나의 기준에 불과할 뿐”이라며 “강행규정 또는 일반적 구속력을 가지는 법규라고 볼 만한 아무런 근거가 없다”고 판시했다. 관리규약이 관리규약준칙과 다르다는 사정만으로 상위법령에 위배된다거나 어떠한 하자가 있다고 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공동주택 관리규약 안에는 공동주택 생활과 관련한 거의 모든 사항이 망라돼 있다. 관리현장의 특성을 잘 반영해 주민의 다양성과 자율성을 구현할 수 있는 것이 관리규약이다. 사유재산인 아파트의 관리는 개인과 단지의 독자성과 자율성이 존중돼야 한다. 입주민들이 스스로 규율을 약속하고 만든 규약을 ‘타율’에 맡기고 의존하게 해서는 안 된다.

공동주택에서 잊혀져가고 있는 ‘독립성과 자율성’을 되찾자. 그 시작은 ‘공동주택 관리규약’을 바로 세우는 것부터 출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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