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는 디테일에 있다(The devil is in the details).’
서양의 관용구다. 이 말은 ‘신은 디테일에 있다’는 말에서 파생된 말이다. 원래는 디테일에 숨어 있는 신비스런 요소를 언급할 때 쓰는 말이다. 독일의 유명 건축가가 성공 비결에 관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내놓던 대답이라고 한다. 아무리 거대한 규모의 아름다운 건축물이라도 사소한 부분까지 최고의 품격을 지니지 않으면 결코 명작이 될 수 없다는 뜻이다. 이렇게 쓰인 말이 변용됐다. 사소한 걸로도 일을 그르칠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뜻으로 말이다.

국민의당 아파트특별위원회가 지난달 26일 아파트 5개 관련 단체와의 간담회를 가진데 이어 21일에는 본격적인 토론회를 개최했다. 정당으로서 첫 아파트 특별위원회이기 때문에 관련 업계에서의 관심은 자못 크다.

첫 간담회 자리에서 국민의당은 국민의 다수가 거주하는 아파트 관리 법제도와 문화가 성숙하지 못해 비효율과 불신이 만연하다며, 아파트 단체들과 함께 효율적이고 투명한 아파트 관리, 믿음과 협동의 아파트 공동체 형성에 앞장서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관리주체로서의 주택관리협회와 주택관리사협회, 의결주체로서의 아파트입주자대표연합회 등 제 단체를 망라해 의견을 들었다. 특히 위 세 주체들은 아파트 관리의 핵심이다.

간담회가 토론이 아닌 의견을 듣는 자리였다면, 이번 토론회는 적극적인 내용을 피력하고 논의하는 자리였다. 그런 자리이기에 이들의 건설적인 논박, 토론은 중요하다. 그런데 첫 출발하는 토론회 자리에 주택관리업 관련 단체를 제외하는 등 외형적인 불균형을 보이며 이해단체간 갈등을 조장하는 양상을 보인 것이다. 한 주체의 의견을 빼고 토론을 한다는 것은 불균형 식단으로 식사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에 아파트가 건설돼 관리가 시작되고,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주택관리 협회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1990년에는 주택관리사(보) 합격자가 배출되기 시작했다. 공동주택관리법이 시행되고 있는 지금, 대한주택관리사협회는 물론 몇 해 전 만들어진 한국주택임대관리협회도 법정단체가 돼 있는 마당에 10만여명의 관리 종사자를 책임지고 있는 한국주택관리협회(한주협)는 법정단체 밖에 있는 상태다. 왜 이런 불균형한 상태를 방치하나. 한주협의 실체를 제도권 밖에 놓고 아파트 관리를 계속 논할 수는 없다. 공동주택 관리의 가장 주요한 주체 중 하나를 빼고 정책을 논의·입안·집행할 수는 없다.

선진적이고 합리적이며 투명한 아파트 관리 방안을 찾고자 시작한 아파트특위 토론회에서 빠진 이유를 그래서 이해할 수가 없다. 개별 학회나 단체에서 추진하는 일도 아니고 일국의 공당(公黨)이 ‘특별위원회’라는 간판을 걸고 하는 일에 이런 일이 반복돼서는 곤란하다. 혹자는 아파트특위가 처음부터 방향을 정해놓고 시작하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든다고 말하기까지 한다. 또다른 사람들은 실제로 일을 추진하는 입장에서는 별 생각 없었을지도 모르는데 예민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큰 그림을 그리고 일을 추진할 때는 사소해보이는 것까지 신경써야 한다. 성공적인 특위 활동을 위해서는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을 깊이 새겨야 한다. 때로 형식이 내용을 좌우한다.

아울러 한국주택관리협회의 법정단체화도 더 미뤄서는 안 된다. 정책 담당자와 입법 관계자들은 현재의 불완전한 구조를 방치하지 말고 개선하는데 앞장 서야 한다. 정국이 혼란스럽다고 아무 일도 안 하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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