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주택 관리와 관련한 오래된 문제가 다시 불거지고 있다. 현재 위탁관리를 하고 있는 공동주택에서 미발생 퇴직급여충당금에 대한 귀속을 위탁관리업체에 둬야 하느냐 당해 단지에 두느냐 하는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최근 서울고등법원에서 이에 대한 흥미로운 판결이 나와 관심을 끌고 있다. 서울고등법원 제8민사부는 위탁관리업체 A사가 부산의 B아파트를 상대로 제기한 용역비 청구소송에서 해당 단지에서 지급받은 퇴직급여충당금 중 미발생 금액에 대한 부분을 대표회의에 반환할 의무가 없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위·수탁 관리계약서에 대표회의로부터 받은 인건비에 포함된 퇴직급여충당금 중 실제로 직원들에게 퇴직금으로 지급하지 않게 된 금원을 대표회의에 정산해 반환해야 한다는 규정이 없으므로 이를 반환할 의무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는 넓은 의미로 봤을때 위탁관리를 도급으로 판단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관리에 대한 것은 위탁관리업체가 계약에 따라 총괄 관리하는 것이므로 특별한 약정이 없을 경우 퇴직급여충당금의 지급 사유가 사라진다고 해도 해당 단지에 반환할 의무가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법원의 판단은 공동주택 위탁관리를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용역에 대해 통용되는 도급계약으로 규정하고 있기에 이렇게 판결한 것이다. 하지만 이는 현실과 많은 차이가 나고 있다. 지금까지 아파트에서 위탁관리업체를 선정할 때 많은 아파트에서 위탁관리수수료만 가지고 업체를 선정해온 탓에 입주민들이 위탁관리를 도급의 개념으로 바라보지 않고 있다는 현실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는 입주민들이 판단을 잘못해서가 아니라 제도상의 문제가 더 크다. 이번에 행정예고된 ‘주택관리업자 및 사업자 선정지침’을 보더라도 적격심사 표준평가표에 입찰가격에 대한 배점을 40점으로 상향해 업체선정에 가장 큰 변수가 될 수 있는 것을 가격으로 정해놨다. 그러나 표준평가표에서 제시하고 있는 입찰가격이 기존에 많은 아파트에서 해왔던 것과 같이 수수료인지 아니면 위탁관리용역에 대한 총액인지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내리고 있지 않아 입주민들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는 것이다.

공동주택 관리의 전문화와 선진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책임있는 관리를 할 수 있도록 제도가 뒷받침돼야 한다. 그러나 현행 주택관리와 관련한 법령 및 제도에는 공동주택 관리의 전문화, 선진화를 이끌 제도적 장치가 부족하다. 현재의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주택관리업자 및 사업자 선정지침’에서 말하고 있는 입찰가격에 대해 명확히 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판단한다.

만약 입찰가격을 수수료로 하지 않고 용역 총액을 가지고 입찰을 했었다면 위와 같은 분쟁은 일어나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입주민들이 업체와의 계약에 대해 명확히 인식했다면 소송을 하지 않았을 것이며 미지급 퇴직급여충당금에 대해 입주민들이 업체에 귀속되는 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했다면 계약을 하면서 특약을 정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판단을 입주민들이 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지 않아 이와 같은 분쟁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서울고등법원의 판결에 불복해 B아파트는 상고를 했다. 이 문제를 대법원에서 어떻게 판단할지 아직 모르지만 정부는 이번 판결을 기화로 문제되는 제도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하기 바란다. 쉽게 현실의 문제가 고쳐지기는 어렵겠지만 그렇다고 이를 방관해서는 안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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