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탁직 근로자 관련 법령·제도 보완해야…의식개선도 절실

▲ 서울 강남구 A아파트 굴뚝에서 계약해지 통보를 받은 경비원 B씨가 부당해고를 철회하라며 농성을 벌이고 있다.

서울의 최저 기온이 영하 14도까지 내려갔던 지난달 31일. 서울 강남구의 한 아파트에서 근무하던 한 경비원이 연말연시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마저 마다한 채 자신이 근무하는 단지 내 굴뚝에 올라 3일 동안 내려오지 않았다.
이 아파트 취업규칙에 의거 62세까지 촉탁직으로 근무를 할 수 있음에도 일방적으로 해고통보를 받았다는 것이 이 경비원이 굴뚝에 오른 이유였다.
이에 이번 사건을 통해 아파트 단지에서 근무하고 있는 촉탁직 근로자들의 현실을 살펴보고, 사용자와 근로자가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지 알아봤다.

촉탁직 경비원 부당해고 ‘논란’
지난달 31일부터 3일간 서울 강남구 A아파트에서 이 아파트 경비원 B씨가 계약해지의 부당함을 호소하며 단지 내 굴뚝에 올라 ‘우리는 일하고 싶다. 해고를 철회하라’는 현수막을 내걸고 농성을 벌였다.
경비원 B씨와 A아파트 관리업체 C사, 민주노총 서울본부 등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이 아파트 관리업체 C사는 계약 갱신기간이 도래한 경비원 14명에 대한 재계약을 거부하고 이들에게 계약해지를 통보했다.
현재 이 아파트의 취업규칙에는 정규직 정년 이후부터 62세까지는 촉탁직 형태로 근로계약을 체결할 수 있도록 돼 있으나 계약해지 통보를 받은 14명 중 62세가 넘은 4명을 제외한 10명의 경우 촉탁직 정년인 62세가 되기 전 계약해지를 당했다.
관리업체측이 주장하고 있는 이들 경비원 10명의 계약해지 사유는 근무태도 불량. 이 아파트에서는 정년인 60세를 초과한 경비원에 대해서는 근무평점이 우수한 자에 대해서만 62세까지 촉탁직으로 고용을 유지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는데 이번에 계약해지된 62세 미만 경비원들은 평소 근무태도가 좋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경비원 B씨의 농성을 지원하기 위해 현장에 방문한 민주노총 서울본부 관계자는 “이 아파트 관리업체는 기존 인력을 젊은 인력으로 대체하기 위해 비교적 고령에 속하는 경비원들의 근무평점을 깎을 목적으로 그동안 시말서 접수를 남발했다.”며 “사측은 이들 경비원들이 근무중 흡연하다 적발됐거나 초소에서 잠시 졸다가 적발됐을시는 물론 심지어 초소의 조명 밝기를 낮춘 것까지 지적하는 등 납득이 가지 않는 사유로 시말서 작성을 요구하면서 계약해지의 구실을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또 “그동안 사측은 계약갱신을 앞둔 경비원들에게 관례적으로 해고예고통지서를 발부하고, 사직서를 작성토록 해왔다.”며 “당연히 재계약이 될 것으로 믿었던 경비원들은 아무런 대처도 하지 못한 채 일방적으로 버림받은 꼴”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반해 이 아파트 관리업체 C사는 촉탁직 경비원의 계약해지는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음에도 업체만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어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C사 관계자는 “촉탁직 근로자를 굳이 두지 않고 취업규칙상 60세 정년을 준수하겠다는 입주자대표회의의 방침에 따라 촉탁직 경비원들에 대한 재계약을 거부하게 됐다.”며 “이번 계약해지는 업체에서 독단적으로 결정한 것이 아니고 대표회의가 의결한 사항을 업체에서 집행한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또한 이 관계자는 “이번 조치가 법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음에도 회사측에서 경비원들을 아무런 사유 없이 부당하게 해고했다는 식의 여론이 형성돼 회사측만 뭇매를 맞고 있다.”며 “이번 사태로 인한 회사의 이미지 타격이 매우 커 답답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한편 이 아파트 관리주체와 대표회의는 다수의 언론매체에서 이번 사건을 비중 있게 보도하고, 고용노동부 장관까지 사건 중재에 나서자 계약해지했던 경비원 14명 중 62세가 경과돼 계약갱신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 4명과 더 이상 근무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시한 3명을 제외하고 B씨 등 7명을 복직시킨 상태다.

촉탁직 근로자 재계약 거부…부당해고?
촉탁직 근로자의 계약해지에 따른 분쟁은 비단 A아파트에서만 발생한 것은 아니다.
지난해에는 인천시 D아파트에서 근무했던 전(前) 경비원 E씨가 근로계약이 만료돼 재계약을 거절당하자 이 아파트 경비용역업체를 상대로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제기했다.
이에 앞서 지난 2009년에도 부산시 모 아파트에서 촉탁직으로 근무했던 전(前) 경비원과 미화원이 용역업체를 상대로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제기한 바 있고, 제주지역 아파트에서 촉탁직으로 근무하던 경비원도 촉탁 근로계약이 수회 갱신됐는데도 기간만료로 부당하게 해고 당했다며 구제신청을 냈다.
하지만 이들 사건을 담당한 각 지방노동위원회는 일관된 판정을 내렸다. 촉탁직 근로자의 계약기간 만료에 따른 재계약 거부는 부당해고로 간주할 수 없다는 것이 판정의 요지였다.
이처럼 촉탁직 근로자가 계약해지에 대한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제기하더라도 계약기간 만료에 따른 정당한 계약해지라는 판정을 받을 뿐, 부당해고로 좀처럼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촉탁직 근로자의 경우 근로계약의 체결을 전적으로 사용자의 자율에 맡기고 있기 때문이다.
촉탁직 근로자의 계약해지와 관련된 논란이 불거지는 원인으로는 먼저 촉탁직 근로자가 계속 근로를 하고 싶더라도 계약해지 통보를 받았을 때 이들을 보호할 수 있는 마땅한 법적 근거가 없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에 대해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서울 강남구 A아파트 사례를 비롯한 촉탁직 근로자의 계약해지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법적 제도는 현재 마련돼 있지 않은 상황”이라며 “현행 법령에서는 사용자에게 계약의 자율을 보장해주고 있기 때문에 촉탁직 근로자가 계약기간 만료 후 재계약을 거부당했더라도 이를 구제할 방법이 없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아파트 입주민단체의 한 관계자도 “아파트 등에서 근무하고 있는 고령의 근로자들은 대부분 촉탁직 형태로 근무하고 있다.”며 “이들은 일종의 계약직 형태로 근무하고 있는 탓에 별다른 사유 없이 일방적으로 계약해지를 당해도 마땅히 하소연할 곳도 없는 실정으로 결국 고령자 고용촉진을 위한 촉탁제는 유명무실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일부 사용자들이 고령의 근로자보다는 비교적 젊은 근로자를 선호하고 있는 것도 원인이 될 수 있다. 촉탁직 근로자를 고용했을 경우 인건비 절감 등 긍정적 측면도 분명히 있지만 고령의 근로자의 경우 원활한 업무수행이 어렵다는 것이다.
한 위탁관리업체의 관계자는 “정규직으로 근무하다가 정년을 넘긴 근로자의 근무태도, 건강상태가 양호할 경우 촉탁직으로 일정기간 고용을 유지하는 경우가 있고, 이들의 경우 연차수당 등을 지급하지 않아도 돼 인건비가 절감되는 등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며 “하지만 사용자 입장에서는 현실적으로 근무 유연성을 추구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업무능력이 떨어진다고 판단될 경우 재계약을 거부하는 사례가 있을 수 있다.”고 언급했다.

촉탁직 근로자 고용안정을 위한 해결책은?
촉탁직 근로자의 고용안정을 위해서는 관련 법령·제도 보완은 물론 이들에 대한 의식 개선이 절실하다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먼저 아파트 경비원 등 고령자 종사 비율이 높은 직종을 특정, 체계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A아파트의 계약해지 통보는 법적 문제가 없다고 판단되지만 이번 사건에 대한 비난여론이 확산되자 도의적인 차원에서 경비원들을 복직시킨 것으로 보인다.”며 “직종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해야 할지 등에 대한 논란이 발생할 수도 있어 쉽지는 않겠지만 근로자들의 평균 연령을 고려해 고령자들의 근무비율이 높은 특정 직종을 지정, 안정적인 근로를 보장하기 위해 특별관리·지원을 실시하는 등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촉탁직을 비롯한 계약직·비정규직의 폐지가 이뤄져야 하고, 평균수명 연장 등에 따른 정규직 정년 상향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민주노총 서울본부 관계자는 “근로계약 종료에 따른 부당해고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비정상적 근무형태인 계약직·비정규직이 완전히 자취를 감춰야 할 것”이라며 “감시·단속직과 같이 과도한 노동력이 필요치 않은 직종의 경우 평균수명이 연장되고 있다는 것을 감안해 지금보다 정규직 정년을 상향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촉탁직을 유지하되 일정 연령까지는 근로를 보장해주고, 고령 근로자들의 업무수행 능력이 떨어진다는 편견을 버려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아파트 입주민단체의 한 관계자는 “촉탁직으로 근무하되 법에서 정한 일정 연령까지는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근로를 보장해주는 등 고령 근로자를 보호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돼야 할 것”이라며 “사용자측도 고령 근로자를 신체적 업무능력으로만 평가하지 말고 그들의 연륜을 활용한다는 측면으로 의식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저작권자 © 아파트관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