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선유지비는 고장난 시설물의 수리 등 거주하는 사람의 편의를 목적으로 하는 비용인 반면, 장기수선충당금(장충금)은 시설의 적정한 개보수를 통해 건물의 수명을 연장하고 가치를 올리기 위한 비용인데, 수선유지비에 비해 금액이 크기 때문에 평상시에 적립해 둘 필요가 있다.

최근 들어 아파트의 장충금이 턱없이 부족하여 공사를 제대로 못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 장충금의 과소 적립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장충금은 입주초기부터 적정수준으로 적립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최초 장기수선계획 시점에는 장기수선공사를 할 일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법적인 제재가 없기 때문에 건설회사가 책임감없이 작성한 장기수선계획에 대해 사업주체나 사용검사권자 누구도 관심을 쓰지 않고 있어, 장수명 관리의 초석이 되어야 할 장기수선계획이 처음부터 엉터리로 시작하고 있다.

근본적으로, 우리나라는 공동주택 소유자 대부분이 평생 소유를 생각하고 있지 않아 자신이 소유한 기간에 가급적 장충금을 적게 적립하려고 한다. 또한 주인이 명확한 일반 업무용 빌딩의 매매 시에는 건물의 노후도와 예상 보수공사비 등이 가격에 반영되지만, 공동주택은 소유주가 분산되어 있기 때문에 노후도에 따라 장충금이 적정하게 적립되어 있는지 확인해 보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규제중심의 제도도 장충금의 과소 적립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현재의 공동주택 장기수선제도는 장기수선계획에서 집행 시점을 최대한 미루다가 상태가 악화되어 민원성이 되었을 때 긴급으로 처리하는 것이 실질적으로 법적 리스크가 적다. 결국, 가능한 한 다음 장기수선계획 정기 검토 기한인 3년 이후로 장기수선공사가 미루어지도록 장기수선계획을 조정하게 되고, 이에 따라 장충금 적립 금액도 줄어들게 된다. 입주자대표회의 구성원들도 자신들의 임기 내에 장충금 적립 금액이 인상되는 것을 꺼리기 때문에 적립 금액은 갈수록 적정한 수준보다 낮아지게 된다.

이렇게 장충금 적립을 계속 뒤로 미루다 보니 결국 폭탄 돌리기가 되어 마지막에는 도저히 장기수선공사를 집행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지금까지는 노후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30년 정도가 경과되면, 전면 재건축을 통해 오히려 수익을 올릴 수 있었기 때문에 장충금 폭탄 돌리기에 의한 적립금 부족이 크게 이슈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앞으로는 아파트 노후화와 동시에 입주민 고령화, 인구 감소 등이 함께 맞물려 과거와 달리 갈수록 재건축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사실이 점점 분명해 지고 있어 장기수선공사를 활성화하지 않으면 발전의 상징이었던 대단지 공동주택이 슬럼화가 될 위험이 크다.

이웃 일본의 경우에는 지원 위주의 정책으로 장충금 적립 규모가 우리나라의 2배 이상이고, 장기수선공사의 범위도 배관교체나 옥상 방수 등 필수기능이나 외벽 도장 등 미관에 대한 단순 보수 차원을 넘어 로비 전면 개보수나 외벽 난간 개선 등 성능이나 디자인의 최신성을 유지하여 장수명화에 기여하고 있는데, 우리도 이제 과태료 등 규제 중심의 장기수선제도를 적기에, 창의적인 수선유지 공사가 집행될 수 있도록 지원에 초점을 맞춘 제도로 정책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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