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우리나라도 여느 개발도상국처럼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로 주거상태가 악화되었다. 이에, 1963년 12월 31일 공영주택법의 시행을 시작으로 주택건설촉진법, 주택법을 거치면서 지난 60년간 공동주택을 중심으로 대량으로 건설하고, 빨리 공급하는 것이 국가의 최우선 과제인 건설의 시기를 보냈다. 또, 재건축과 재개발이란 이름으로 건설-철거-재건설의 자원낭비형 순환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2000년대부터 ‘장수명화’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더니, 마침내 2019년에는 세종시에 장수명화 실증단지도 선보였다. 장수명주택은 오래 가고, 쉽게 고쳐 쓸 수 있는 아파트로 주택수명 100년을 목표로 한다.

이런 장수명주택 논의를 촉발 시킨 배경은 지금까지는 재건축이나 재개발 사업이 시장성을 확보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주택건설과 투자의 관점에서 수익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전망에 기인한 측면이 크다.

현재 장수명주택 관련 국가R&D과제를 수행하는 곳은 장수명주택연구단(한국건설기술연구원)인데, 그 소관부처는 국토교통부 주택건설공급과다. 아파트의 주택건설공급을 최우선 과제로 삼던 정책부서인 국토교통부 주택건설공급과에서 장수명주택의 건설공급 정책을 담당하는 것은 그리 이상하지 않게 보일 수 있지만, 문제는 여전히 주택의 건설·공급이라는 구태의연한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장수명화실증단지건, 장수명주택연구단이건 그간 정부가 추진해 온 장수명화 대책을 살펴보면 관리적인 측면의 고려는 전혀 없고 건설 즉 신규주택의 공급에만 중점을 두고 있는데, 주택보급율이 이미 100%를 넘어섰고 주택의 80%인 1400만호가 공동주택인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장수명화의 시급하고도 중요한 과제는 신축 장수명주택의 공급이 아니라 일상 유지관리의 개선과 대규모 수선 활성화를 통해 노후화 되어가는 기축 공동주택의 품질을 유지하고 수명을 연장하는 것이라는 점은 누가 보아도 자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관리적인 측면에서 공동주택의 장수명화 관련 제도는 너무나 빈약하고 부실하다. 공동주택관리법에서 행위허가와 장기수선계획 제도가 전부인데, 그나마 장수명화를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과태료를 양산하는 경직된 제도로 전락한 지 오래다.

지금까지 비리에 초점을 맞추어 사실상 장기수선을 저해해 온 과태료 중심, 규제 위주의 정책은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장수명화 촉진을 위한 인센티브 제공 등 역발상적 혁신으로 과감하게 바뀌어야 한다. 공동주택의 장수명화를 위해 우리 사회 전반에 건설 중심, 공급중심에서 진정한 장수명화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한 때이다.

아울러, 이와 같이 장수명주택의 핵심이 건설공급이 아닌 유지·관리이므로 산업화와 건설 시대를 대변하는 정책 부서 이름인 ‘주택건설공급과’ 보다는 ‘장수명 주택유지·관리과’와 같은 새로운 부서명을 고민할 필요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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