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주택 장기수선제도의 취지는 공용부분 주요 시설의 적정한 개보수를 통한 공동주택의 장수명화이다. 하지만 지금의 제도는 오히려 노후화를 촉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장기수선계획의 조정과 집행은 공동주택관리법 제29조 제2항에 따라 입주자대표회의와 관리주체가 3년마다 검토하고 필요한 경우 이를 국토교통부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항목별로 조정하여야 하는데 3년 후에 계획되어 있는 항목을 앞당겨서 집행하는 것도 과태료 대상이고, 3년 내에 계획되어 있는 항목을 해당 수선연도에 집행하지 않아도 과태료 대상이다.

문제는 누가 생각해도 둘 중 더 큰 문제일 것 같은 전자의 경우는 긴급한 경우라는 조건부이긴 하지만 의사결정이 비교적 수월한 입대의 의결만으로 집행가능한데 반해 3년 내 계획에는 있었으나 집행을 하지 않음으로써 비용절감이 되는 후자의 경우는 오히려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시피 한 입주자 즉 소유자 과반수의 동의가 필요한 수시조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얼핏 생각하면, 이는 장기수선공사를 권장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3년 내 계획에 없는 공사도 긴급한 경우 비교적 쉽게 추진할 수 있고, 3년 내 계획에 있는 공사는 아주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라면 계획대로 집행하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면 정반대이다. 가급적 계획대로 집행하라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계획대로 집행하라는 것이 문제인데, 실제 집행하려고 보니 계획 시 예상했던 것보다 상태가 좋아 장기수선공사의 필요가 없어질 수도 있고, 부분수리 등 수선비로 대체할 수도 있는 것이다. 더욱 문제는 항목별로 계획보다 집행예상비용이 초과해도 수시조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요약하면 3년 내 장기수선을 하려면 각 항목별로 시점과 금액을 정확히 예측하라는 말인데, 차라리 장기수선계획에서 집행시점을 최대한 미루다가 악화되어 민원성이 되었을 때 긴급으로 처리하는 것이 실질적으로 법적리스크가 훨씬 적다. 결국 지금의 장기수선제도는 가급적 장기수선을 미루는 것을 장려함으로서 시설물의 노후화를 촉진하고 있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제도가 이슈가 되지 않았던 것은 지금까지 공동주택의 장수명화보다는 재건축이 관심의 초점이었고, 장기수선공사에 따른 비리가 오히려 부각되었기 때문일 것이라 짐작된다. 하지만 앞으로는 신도시, 주상복합 등 용적율의 상승으로 재건축이 어려워지고 주택수요가 줄어들면서 시설물의 본질적 과제인 장수명화가 갈수록 중요해질 것인데 지금의 제도하에서는 불가결한 일부 필수 기능의 보수만 할 뿐 자산가치의 보전이나 쾌적한 삶은 기대할 수 없다.

공동주택에서 우리보다 약 20년 앞서간 이웃 일본을 보면, 일본 최초의 신도시 다마뉴타운 맨션의 경우 주요 시설의 교체 등 필수 기능의 수리는 기본이고 로비, 외관 등에 대해서도 단순 보수공사를 넘어 디자인까지도 최신 트렌드에 맞추는 대규모 개보수를 함으로써 현재 60년이 넘었지만 거주에 불편이 없고 100년까지도 내다본다고 하는데, 우리와 관계없는 다른 나라, 먼 미래의 일로 치부하고 실질적인 장수명화 대책을 미뤄서는 안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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