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공동체와 사회 공동체의 충돌
현실 속 모습이 영화 속에 고스란히 

8월 9일 개봉한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대지진으로 하루 아침에 서울의 모든 건물이 무너진 가운데 ‘황궁아파트’만이 그대로 남아 벌어지는 일들을 담았다. 외부 생존자들이 몰려들자 입주민들은 위협을 느끼기 시작하고 생존을 위해 새로운 주민 대표 ‘영탁’을 중심으로 새로운 규칙을 만들고 살아간다. 삭막한 느낌의 ‘콘크리트’ 속에 만들어진 유토피아. 유토피아는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상태를 갖춘 완전한 사회’를 말한다. 영화 속 황궁아파트나 우리가 사는 현실 속 아파트는 삭막함을 뚫고 진정한 유토피아가 될 수 있을까. 아파트관리신문 기자들이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보며 떠올린 우리네 아파트의 모습을 감상으로 담아봤다. 

[서지영, 김선형, 고현우 기자]

1. 대지진 속 유일하게 남은 아파트

- 대재앙에서 유일하게 남은 아파트라는 설정이 독특하다. 하지만 국민의 3분의 2에 달하는 인원이 아파트에 살고 있는 현실에서 아파트라는 무대가 낯설지는 않다. 초반 도입부에서는 과거 뉴스 영상 등을 통해 한국 아파트의 역사를 훑는다. 관련자들의 인터뷰와 점점 발전해가는 아파트의 모습이 교차 편집돼서 나오는데, 한국에서 ‘아파트’가 가지의 의미와 위상이 감각적으로 다가온다.

대재앙 속에서 유일하게 남은 아파트인 황궁아파트가 영화의 주무대가 된다. 
대재앙 속에서 유일하게 남은 아파트인 황궁아파트가 영화의 주무대가 된다. 

2. 극한 상황 속 주민자치회의

- 재해 속 긴급상황. 살아남은 사람들은 새로운 규칙을 정한다. 기존의 관리규약을 정하듯이 모인 사람들이 다수결로 결정한다. 민감한 사항은 비밀투표로도 진행한다. 하지만 다수결 상황에서 소수 의견은 역시나 무시 당하고 배척 당한다. 그리고 의견제시 상황에서 입주민들은 소유자와 사용자(임차인)를 구분 짓고자 한다. 아파트에 살고는 있지만 임차인은 권리를 주장하거나 의견을 피력할 수 없는 현실이 재앙 상황 속에서도 여전하다. 

- 새로운 입주민 대표 선출 당일, 황궁아파트 부녀회장 ‘금애’는 “입주민 대표는 입주민들을 위해 불길에라도 뛰어들 정도로 헌신적인 사람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입주자대표회의를 구성하는 동별 대표자는 봉사직의 성격이 강하다. 출석수당 정도를 제외하고는 금전적 이익은 없음에도 그 지위에 따른 책임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꽤 많은 공동주택에서는 동대표 선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영화에서도 이러한 현실이 반영된 듯 하다. 

재난이 발생한 긴급 상황 속에서 입주민들이 회의를 열고 다수결로 의결한다.
재난이 발생한 긴급 상황 속에서 입주민들이 회의를 열고 다수결로 의결한다.

3. 입주자명부 

- 대지진이 일어나고 아파트의 새로운 입주자 대표를 뽑고 규칙을 정하기 위해 모인 자리. 부녀회장은 관리사무소로부터 입수한 입주자명부를 통해 입주민 여부를 파악한다. 입주자명부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깨닫게 되는 장면이다. 

- 입주자명부도 그러나 입주민을 사칭한 외부인을 검증하기엔 부족했다. 지진 발생 이전부터 이웃 간 교류가 활발했다면 검증을 거칠 것도 없이 외부인 여부를 인지했을 것이다. 최근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아파트라는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면서도 서로의 얼굴조차 모르는 시대상을 꼬집는 듯하다.

4. ‘아파트는 주민의 것’

- 이 영화의 주제가 되는 ‘아파트는 주민의 것’이라는 구호. 그와 함께 기억에 겹쳐지는 ‘외부인 출입금지’ 표지판이 계속해서 기억에 남는다. 아파트 어린이 외 단지 내 놀이터 이용을 금지했던 아파트, 입구나 후문에 잠금장치가 달린 문을 설치해 외부인들의 출입과 통행을 차단시킨 아파트 등이 떠오른다. ‘공동체 활성화’를 외치지만 그것은 아파트 내부의 공동체를 위함일뿐. 아파트 주변의 공동체와는 척을 지려는 세태가 떠오른다. 하지만 영화 속 황궁아파트 입주민들은 사실 재앙이 일어나기 전에는 바로 옆 고급아파트로부터 무시 당하고 배척 당했던 상황. 지진 후 입장이 뒤바뀐 상황을 보면서 이전에 두 아파트 입주민들이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다면?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 옆 아파트인 드림팰리스 입주민들이 재난이 닥치자 도움을 청하며 황궁 아파트를 찾는다. 그러나 황궁 아파트는 ‘아파트는 주민의 것’이라는 일종의 관리규약을 제정하고 외부인들을 모두 몰아낸다. 경비원도 예외는 아니다. “내가 여기서 20년을 일했는데 이럴수 있냐”며 호소해 보지만, 입주민이 아니기에 사지로 쫓겨난다. 공동주택이 가지는 사유재산으로서의 성격과 공공성의 충돌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이 들게 하는 장면이었다. 

- 지진 초기 황궁아파트 입주민들은 외부인들에게 호의를 베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외부인 중 한 명이 자신의 생존을 위해 입주민을 대상으로 살인을 시도한다. 이런 점에서 ‘외부인 출입 금지’ 조항은 당연하게 보이기도 한다. 그 이면에는 고급 신축아파트였던 드림팰리스 입주민들이 구축아파트인 황궁아파트 입주민들을 하대하고 멸시해왔다는 이유도 포함됐다. 해당 장면은 최근 임대아파트 입주민 어린이들과 본인의 자녀가 학군이 같다는 이유로 불만을 표출하던 세종시 소재 신축아파트 내 게시글을 떠오르게 했다. 

드림팰리스 입주민들이 만약 황궁아파트 입주민들에게 차별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황궁아파트 입주민들도 드림팰리스 입주민들과의 상생을 위해 노력하지 않았을까.

아파트는 주민의 것, 주민만이 살 수 있다’는 자치 규약을 정하고 발표하는 장면. 
아파트는 주민의 것, 주민만이 살 수 있다’는 자치 규약을 정하고 발표하는 장면. 

총평 - 콘크리트냐, 유토피아냐

- 입주자명부 확인이나 부녀회장 지위의 성격, 복도식 아파트의 경량식 칸막이를 이용해 옆집으로 들어가는 장면 등 공동주택에 대한 공부 없이 만들어지기 힘든 장면이 많아 공동주택 관리 종사자들이 공감하며 보기 좋은 영화다. ‘사정상’ 외부인에 적대적인 공동주택의 현 세태를 꼬집으면서 공동주택이 진정한 사회 공동체로서 나아갈 방향에 대해 제시하고 있다. 

- 극한 상황 속 인간의 모습을 한국의 대표적인 주거 문화인 아파트 속에 잘 녹여냈다. 정말로 우리가 살고 있는, 그리고 근무하고 있는 단지에서 평범하게 볼 수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영상에 담았다. 유토피아가 ‘아무도 없는 쓸쓸한 너의 아파트’(윤수일 노래 ‘아파트’ 가사 中)로 되는 이야기.

- 영화를 감상하고 난 후 제목의 ‘콘크리트’는 더욱 삭막한 느낌이 들게 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콘크리트의 어원은 ‘concretus’라는 라틴어로 ‘함께 자라는’이라는 뜻을 가졌다.

영화의 극후반부에는 황궁아파트를 떠나 정처 없이 떠도는 ‘명화’에게 새로운 보금자리가 생긴다. 이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아무런 조건 없이 ‘명화’에게 호의를 베푼다. 황궁아파트와는 완벽하게 대비되는 모습이다.

만약 드림팰리스 입주민들이 황궁아파트 입주민들을 하대하고 멸시하지 않았다면, 드림팰리스 입주민들의 하대와 멸시에도 황궁아파트 입주민들이 그들에게 마지막까지 호의를 베풀었다면 등 가정은 끝이 없지만 한 공동체가 삭막한 아파트가 될지 함께 자라는(상생하는) 아파트가 될지를 좌우한 것은 결국 사람들의 공동체 의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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