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주택에서 ‘공동체 활성화’라는 말은 2000년 전후부터 사용되기 시작하여, 2010년 6월에는 국토해양부의 ‘공동주택 우수관리단지 선정 지침’에 선정 평가항목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또한 학계와 시민단체들이 공동주택의 층간소음, 간접흡연, 반려동물 관련 등의 문제가 공동체 파괴의 결과라고 진단하면서, ‘공동체 활성화’가 갈등관리의 방안으로 더욱 권장되었다.

그런데 ‘공동체 활성화’ 활동을 추진한 지 20년이 넘었지만, 간혹 홍보성 미담 사례만 발표될 뿐, 공동주택의 갈등을 줄여주었다는 구체적인 통계는 없고 오히려 갈수록 갈등의 빈도와 강도가 더 커지고 있다는 것을 부정하기 힘들다. 결국, 지금과 같은 ‘공동체 활성화’ 방식은 갈등관리의 대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해지고 있다.

2021년 통계에 의하면 전체 주택 1881만호 중 연립·다세대를 포함, 공동주택이 80%에 이른다. 공동주택의 갈등 심화는 곧 우리 사회 전체의 갈등문제를 나타낸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이를 반영하듯, 우리나라의 고소·고발은 연간 약 50만건으로 인구 수를 감안하면 일본에 비해 100배나 많다. 또한, 2021년 전경련의 발표에 의하면 OECD 30개국에서 우리나라의 사회적 갈등은 3위에 해당할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갈등 해결은 고소·고발 또는 소송의 방법 말고는 없는가?

공동주택관리법에 따른 공동주택 분쟁 조정제도가 있고, 집합건물법에 따른 집합건물 분쟁조정 제도가 있음에도 이러한 행정적인 조정제도는 거의 작동하지 않는다. 또한 공동주택관리법에 따른 하자심사 분쟁조정·분쟁재정 제도가 있지만, 아직은 하자소송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법무법인 양헌’의 김승열 대표변호사에 따르면, 우리 사회가 갈등의 해결책으로 소송에 집착하는 이유는 뿌리 깊은 ‘관존민비(官尊民卑)’ 사상 탓에 사사로운 다툼도 관에 의존해 해결하려는 성향 때문이라고 한다. 이에 더하여 정답이 있는 문제에 대해 맞고 틀리고를 기준으로 평가하는 O, X 식 ‘정답 찾기’ 교육이 그 원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지자체의 단순 참고 자료인 준칙에 집착하는 것도 이러한 ‘관존민비’, ‘정답 찾기’ 문화의 연장이라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실제 현실의 문제는 대부분 정답이 없고, 구성원들 간 대화와 상호 양보 등 소통 기반의 조율을 통해 최선책을 찾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수천년 동안 농업을 기반으로 하는 지역 중심의 강한 공동체 사회였으나, 최근 급격한 도시 중심의 산업화 진행으로 저출산, 1인 가구 등 극단적인 개인주의 사회로 변화하고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물리적으로는 세계 최고로 밀집된 집합 주거형태를 가지고 있어 어쩌면 지금 공동주택에서의 갈등은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이렇게 ‘극단적으로 개인화되어 있으면서, 고도로 밀집되어 있는’ 독특한 집합 주거 시대를 맞아, 외형적인 ‘공동체 활성화’ 운동 이전에, 새로운 공동체의 바람직한 모습, 구성원의 태도, 행동 원칙 등 이 시대에 걸맞는 ‘공동체 규범’에 대한 연구와 사회적 공감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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