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가볼까?] 378. 전남 영광군

한적한 섬 여행을 원한다면 답은 두 가지다. 조금 더 먼 곳이나 조금 덜 알려진 곳. 서울에서 오래 걸려 도착한 섬일수록, 이름이 낯설수록 한갓지게 쉴 확률이 높다. 대신 이동하는 시간과 수고, 얼마간 편의를 내주면 원하는 섬 여행이 가능하다. 낙월도는 전남 영광군 서쪽에 있다. 상낙월도와 하낙월도로 나뉘며 진월교가 두 섬을 잇는다. 관광객의 손이 타지 않은 섬으로, 피서지의 번잡함을 피하고 싶은 이라면 낙월도를 ‘낙원도’라 읽어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힌트가 되는 몇 가지 정보가 있다. 낙월도에는 마트나 매점이 없다. 상낙월도선착장 대기실에 자판기 한 대가 전부다. 식당도 없다. 민박을 예약하면 ‘집밥’을 맛볼 수 있다. 섬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성찬은 아니어도 정갈한 식사다. 민박도 한 손에 꼽을 만큼 적다. 그러니 어지간한 간식거리는 미리 챙기자. 이쯤 되면 흔한 관광의 섬이 아님을 짐작할 테다. 먼바다 풍경을 보며 섬 둘레를 따라 아슬랑대는 것뿐이지만, 그때 얻는 여행의 기쁨은 도시 생활을 벗어나야 누리는 희열이다.

낙월도둘레길은 상낙월도와 하낙월도를 잇는다. 면사무소와 보건소 등 공공시설이 모여 있는 상낙월도가 큰 마을이고, 민가가 옹기종기한 하낙월도는 작은 마을이다. 상낙월도와 하낙월도를 각각 2시간으로 셈해 4시간 정도면 한 바퀴 돈다. 둘레길에 제주올레 같은 특별한 표식은 없다. 대체로 외길이라 길 잃을 염려는 없다. 의자나 정자 등을 자주 만나 원하는 만큼 걷다가 쉬면 된다. 그러니 섬에 굳이 차를 가지고 들어갈 이유도 없다.

당너매언덕에서 본 하낙월도 마을 풍경
당너매언덕에서 본 하낙월도 마을 풍경

둘레길 가운데 한 곳만 택한다면 자연 풍광은 하낙월도가 조금 낫다. 보통 진월교 지나 오른쪽으로 돈다. 곧장 외양마지 입구 전망 쉼터가 나오고 서쪽 바다와 북쪽 상낙월도, 동쪽 영광군 내륙이 보인다. 조금 더 걸으면 하늘을 가린 그윽한 대숲이다. 곧 갈림길이 나오는데 왼쪽은 당너매언덕, 오른쪽은 해안으로 이어진다. 당너매언덕은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히지만, 팔각정전망대에 서면 장대한 풍경이 단숨에 땀을 씻어준다. 이때 남쪽은 수평선 끝까지 트인 바다가 아니라, 섬에 둘러싸인 바다로 낙월도의 절경을 만든다.

장벌해변은 낙월도둘레길의 백미다. 둘레길에서 절벽 아래로 내려다볼 때 마음은 어느새 해변을 향해 달린다. 지도 앱으로 지형만 확인해도 알 수 있다. 섬 안쪽으로 ‘ㄷ’자를 그리는 아담한 해변은 명사십리가 부럽지 않다. 정자 쉼터에 가만히 앉아 바다만 바라봐도 마음이 편안하다.

큰갈마골해변 쪽에서 진월교 가는 둘레길
큰갈마골해변 쪽에서 진월교 가는 둘레길

둘레길 완주보다 아슬랑거리는 게 목적이라면 상낙월도가 좋다. 색색 그물이 길을 가득 채우고 볕을 쬔다. 그물에선 새우 짠 내가 살살 코끝을 간질인다. 낙월도는 한때 젓새우로 명성이 자자해 ‘작은 목포’로 불렸다. 마을 앞길이 곧장 바다와 접하는데, 눈앞에 신안군 지도와 임자도 등이 바다 위 능선처럼 펼쳐진다. 맑은 날에는 그 사이로 난 임자대교까지 보인다. 물때에 따라서 앞바다 펄이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둘레길에서 만난 붉은발말똥게
둘레길에서 만난 붉은발말똥게

그렇다고 상낙월도둘레길이 밋밋하진 않다. 길가의 나무가 연출한 초록 터널, 둘레길까지 올라온 붉은발말똥게 등이 반긴다. 짧게 맛보길 원할 때는 땅재(고개) 너머 큰갈마골해변(상낙월해수욕장)까지 다녀온다. 주택가에서 떨어져 ‘프라이빗 비치’나 다름없다. 여름 해변이 이토록 차분할 수 있다는 게 놀랍다. 물에 발을 담그지 않고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충분할 정도다. 낙월도는 묵석(墨石)이 유명한데, 해변의 기암괴석 역시 못지않은 볼거리다.

낙월도 묵석의 계보를 잇는 길가의 수석들
낙월도 묵석의 계보를 잇는 길가의 수석들

묵어갈 수 있다면 진월교에서 하루의 끝을 마주할 일이다. 섬을 가로지르는 해는 낙월도 동쪽 영광군 내륙까지 길게 물들인다. 영광군 해안에서는 낙월도로 해가 지는 듯 보이기도 할 것이다. 시간이 맞으면 해가 진 방향으로 바통을 이어 달이 지는 그윽한 풍경을 마주할 수 있다. 낙월도(落月島)는 순우리말로 ‘진달이섬’이다. 영광 법성포에서 낙월도로 달이 지는데, 그때 낙월도가 바다에 걸친 달처럼 보인다. 나당 연합군에 쫓기던 백제 왕족이 달이 지자 낙월도로 피신해 정착했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쫓길 일 없는 한적한 섬의 시간, 일몰과 월몰은 낙월도의 정취를 간직한 또 다른 낙원 풍경이다.

진월교의 노을
진월교의 노을

낙월도 가는 여객선은 향화도선착장에서 하루 세 차례(07:30, 10:30, 15:00) 운항하며, 약 1시간 10분 걸린다. 출항 시각이 정해졌으나 물때에 따라 달라지니, 출발 전에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낙월도까지 송이도 역시 향화도선착장에서 하루 두 차례 여객선이 오가며 1시간 30분쯤 걸린다. 송이도는 소나무[松]가 많고 섬 모양이 귀[耳]처럼 생겨서 그리 부른다. 송이도해변은 다른 곳에서 보기 어려운 하얀 몽돌이 유명하다. 물때를 맞추면 송이도에서 대이각도까지 드러나는 모랫길을 볼 수 있다. 영광군에서는 송이도와 안마도, 낙월도를 ‘삼형제 섬’이라 부른다. 세 섬이 바다 가운데 점점이 이웃한다.

향화도에서 본 칠산대교 방면 전망
향화도에서 본 칠산대교 방면 전망

향화도선착장에는 한두 시간 일찍 도착하자. 선착장 앞에 영광군이 자랑하는 높이 111m 칠산타워가 있다. 굴비의 비늘과 파도, 바람, 태양을 형상화한 타워다. 1~2층에 여객대합실과 매점, 음식점 등이 있고, 3층이 전망대다. 칠산대교부터 무안군과 신안군의 섬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숨은 그림 찾듯 바다가 간직한 섬을 하나하나 헤아리는 재미가 쏠쏠하다. 바닥 일부가 강화유리라 발밑이 아득하다. 이 또한 더위를 쫓는 막간의 스릴이다. 카페 겸 매점에서 커피 한 잔 마시며 전망을 감상하기 적당하다. 입장료는 어른 2000원, 청소년 1500원, 어린이 1000원이다. 여름에는 오후 8시까지 개방해 일몰을 볼 수 있다.

백수해안도로는 백수읍 길용리에서 백암리까지 약 16.8km 구간이다. 영광9경 가운데 1경으로, 영광군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손꼽는 해안 드라이브 코스다. 도로에는 전망대와 카페, 공용 주차장이 많아 여유롭게 돌아볼 수 있다. 그 가운데 노을전시관과 칠산정, 괭이갈매기 날개 포토 존이 있는 노을전망대 등이 인기다. 노을전시관에서 칠산정 쪽으로 해안노을길을 조성했다. 바다를 보며 산책하는 덱 길이다. 여름에는 노을전시관에서 노을종 구간이 무난하다. 노을전시관 야외 덱은 백수해안도로의 노을을 감상하기에 적격이다. 햇살이 좋은 날에는 대신등대와 윤슬이 한 폭의 그림 같다. 일대는 열린 관광지로, 휠체어와 유모차 이용이 수월하다.

글·사진: 박상준(여행작가) 
출처: 한국관광공사 대한민국구석구석(korean.visitkore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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