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가볼까?] 302. 전남 신안군

신안군에 접어들자 ‘1004섬’이란 표지가 눈에 띈다. 군내 1004개 섬이 있다는 의미다. 섬이 많아 불편하던 지역적 한계를 오히려 매력 요소로 부각한 지역 브랜드 성공 사례로 꼽힌다. 천사(天使)와 발음이 같아서 ‘천사의 섬’, ‘섬의 천국’이란 수식어도 붙었다. 이런 표현과 가장 잘 어울리는 섬이 탄생했다. 최근 순례자의길로 화제를 모은 기점·소악도다.

기점·소악도는 2017년 전라남도 ‘가고 싶은 섬’으로 선정됐다. 전남엔 무려 2200여개 섬이 흩어져 있는데, 각 섬의 독특한 해양자원을 발굴하는 이 사업에서 기점·소악도는 스페인의 산티아고를 본뜬 ‘섬티아고’로 다시 태어났다. 주민 대다수가 기독교인이고, 이웃한 증도에 한국 기독교 최초 여성 순교자 문준경 전도사의 순교지가 자리한 데서 착안했다.

우리나라와 프랑스, 스페인의 건축·미술가들이 기점·소악도에 머물며 열두제자를 모티프로 작은 예배당을 지었다. 대기점도와 소기점도, 소악도, 진섬, 딴섬까지 이어지는 순례자의길은 이렇게 완성된 예배당 12곳을 따라 총 12㎞를 걷는다.

대기점도선착장에 자리한 건강의집(베드로)을 시작으로 생각하는집(안드레아), 그리움의집(야고보), 생명평화의집(요한), 행복의집(필립)을 거쳐 소기점도로 넘어가면 감사의집(바르톨로메오)과 인연의집(토마스)이 반겨준다. 소기점도와 소악도 사이에 자리한 기쁨의집(마태오)을 지나 소악도 소원의집(작은야고보)을 보고, 진섬에서 칭찬의집(유다다대오)과 사랑의집(시몬)을 만난다. 마지막으로 딴섬에 홀로 자리한 지혜의집(가롯유다)까지 둘러보면 순례자의길을 완주한 셈이다. 어른 걸음으로 3시간 이상 걸리는 코스다.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 순례길에 비하면 짧은 거리지만, 각 예배당의 건축미를 감상하며 돌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안드레아의 집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을 해와 달로 형상화한 안드레아의집, 스테인드글라스로 예배당을 지어 해의 위치에 따라 다채로운 색감을 빚어내는 바르톨로메오의집, 프로방스풍 오두막에 오래된 목재를 이용해 동서양이 어우러진 작은야고보의집은 건축을 넘어 종교적 의미까지 돌아보게 한다.

베드로의 집

파란 지붕과 하얀 외벽이 그리스 산토리니를 떠오르게 하는 베드로의집, 붉은 벽돌과 삼나무 등을 활용해 프랑스 남부의 정취를 담은 필립의집, 러시아정교회의 황금빛 양파 모양 지붕이 인상적인 마태오의집처럼 이국의 정취가 느껴지는 예배당도 눈길을 끈다. 열두제자 중 한 명이지만 은화 30냥에 예수를 배반한 가롯유다의집은 사람이 살지 않는 외딴섬에 지어 순례길의 무게를 더한다.

순례자의길을 걸을 때 유의할 점은 노두다. 섬과 섬을 잇는 노두는 밀물이면 사라지는데, 이때 무리해서 건너면 위험하다. 적어도 3~4시간 뒤 썰물에 건너야 한다. 대기점도와 소기점도, 소기점도와 소악도, 소악도와 진섬이 노두로 연결된다. 섬을 방문하기 전에 국립해양조사원의 조석예보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하루 일정이라면 소악도선착장에서 내려 대기점도 방향으로 움직이는 게 효율적이다. 노두를 먼저 건너고 예배당이 가장 많은 대기점도를 여유롭게 둘러볼 수 있기 때문이다. 대기점도선착장에 내려 전기자전거를 빌려도 좋다. 예배당 12곳을 차례로 둘러본 뒤 소악도에서 반납하고 여객선에 바로 오를 수 있다. 섬 내 편의 시설은 마을에서 운영하는 식당과 게스트하우스, 카페가 전부다. 물 한 병을 사려고 해도 이곳에 가야 한다. 마실 물과 간식을 준비하고, 이왕이면 섬에서 하룻밤 묵어가는 여유로운 일정을 추천한다.

암태도의 동백파마벽화

지난해 개통한 천사대교는 신안군 압해읍과 암태면을 잇는다. 접근성이 좋아진 덕분에 암태도와 자은도, 반월·박지도가 새롭게 주목받는다. 암태도는 SNS에서 인기 있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벽화가 유명하다. 담벼락에 그린 할머니의 파마머리가 마당에 심은 애기동백나무와 묘하게 어우러진다. 앙증맞은 벽화가 인기를 끌자, 그 옆에 할아버지 얼굴도 그렸다. 이제 여행객이 줄 서서 사진 찍는 명소다.

자은도에는 무한의다리(Ponte Dell’ Infinito)가 있다. 둔장해변에 놓인 이 다리는 무인도인 구리도와 고도, 할미도를 차례로 연결한다. 천사의 섬 신안답게 총 길이도 1004m다. 세계적인 건축가 마리오 보타와 이탈리아에서 활동하는 조각가 박은선이 섬과 섬 사이를 연결함으로써 지속적인 발전을 꿈꾸는 마음을 담아 이름 지었다. 다리의 건축미도 뛰어나지만, 그 배경이 되는 푸른 하늘과 갯벌, 수많은 생명체가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반월박지도를 연결하는 퍼플교

반월·박지도는 보랏빛 섬으로 변신했다. 섬으로 들어가는 다리는 물론 마을 지붕과 도로, 심지어 마을식당에서 사용하는 그릇까지 온통 보라색이다. 보라색 옷을 입은 여행객은 입장료 무료 혜택을 준다. 여름에는 라벤더, 가을엔 숙근아스타가 만발해 보랏빛 낭만을 더한다. 걷거나 자전거 통행만 가능하고, 마을에서 운영하는 식당과 호텔이 있어 느긋하게 돌아보기 좋다.

글·사진: 권다현(여행작가)
출처: 한국관광공사 대한민국구석구석(korean.visitkore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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