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집합건물진흥원 김영두 이사장(충남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사전적인 의미로 ‘목적’이란 이루고자 하는 일이나 방향을 의미한다. 모든 사물은 나름대로의 목적을 갖고 있지만, 목적이라는 것은 사람들이 부여한 의미이기 때문에 사람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운동복은 운동의 편의성을 위한 의복이다. 그러나 이소룡이 입었던 옆에 검은 줄이 들어간 노란색 운동복은 경매에서 1억원에 낙찰됐는데, 그 운동복은 운동을 위한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집의 목적은 무엇일까? 주택의 목적은 주거권이다. 주거권이란 쾌적하고 안정적인 주거환경에서 주거생활을 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내가 살고 있는 집을 중심으로 형성돼 있는 나의 주거권은 집이라는 눈에 보이는 것과 이웃관계, 추억, 지역정보 등과 같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로 이뤄져 있다. 점포의 목적은 활발한 영업활동이다. 상인들은 영업활동을 위해서 단골이나 거래처를 만들고, 영업노하우와 명성을 축적하며, 점포의 이름을 널리 알리는데, 이러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점포라는 물리적 실체와 함께 ‘영업(business)’을 형성한다. 이 ‘영업’은 주거권과 달리 권리의 대상으로 인정되며 거래할 수도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권리금계약이 이 영업을 사고 파는 계약이다. 오피스텔이나 지식산업센터도 업무활동이나 산업활동이라는 목적을 갖고 있다. 이와 같이 건물을 중심으로 형성된 주거권이나 영업권은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이며, 건물은 그 안에 이러한 가치를 담는 그릇이라고 할 수 있겠다.

건물이 주거권이나 영업권을 담는 그릇이라면 그 그릇을 마련하는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건물을 소유하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건물을 빌리는 방식이다. 건물을 빌리는 방식은 소유를 위한 목돈을 들이지 않더라도 주거권이나 영업권을 형성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반면에 임차권은 소유권과 달리 종료될 수 있기 때문에 그 안에 담겨 있던 주거권이나 영업권도 임차권의 종료와 함께 사라져버릴 수 있다는 단점도 있다. 이 단점으로 인해서 임대인과 임차인의 관계는 기본적으로 임대인이 주도권을 갖는 관계가 될 수밖에 없다. 임대차가 종료하더라도 임대인은 잃을 것이 없지만, 임차인은 주거권이나 영업권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임대인의 주도권은 부동산시장이 급격히 상승할 때 효과를 발휘한다. 임대인은 임차인에게 차임이나 보증금의 인상을 갱신의 조건으로 내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임차인은 이미 형성한 주거권이나 영업권을 상실하기 싫다면 임대인의 요구에 응해야 하고, 그럴 수 없다면 주거권이나 영업권을 포기해야 한다. 임대인은 임차인의 주거권이나 영업권을 신경 쓰지 않고 건물을 팔아버릴 수도 있다. 이러한 임대인의 주도권으로 인해서 항상 임차인 보호의 문제가 발생한다.

임차인 보호는 비단 우리나라에서만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고 전 세계적으로 공통된 문제이다. 단순하게 표현한다면 이 문제는 건물이 담고 있는 가치를 얼마큼 보호할 것인가의 문제이며, 임차권이라는 그릇을 보호한다는 것은 그 안에 담겨 있는 주거권이나 임차권과 같은 가치를 보호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사회가 발전할수록 소유권이나 임차권과 같은 그릇 자체보다는 그 그릇이 담고 있는 내용물, 즉 주거권이나 영업권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임차권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우리 사회가 나아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우리 사회가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다.

그러나 당연한 일도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 당연하다는 이유로 모든 것이 정당화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 사회와 같이 시세차익을 목적으로 건물을 사고 파는 일이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여지고 많은 국민들이 건물의 거래를 통해 이윤을 창출하는 상인처럼 행동하는 경우에는 임차권 보호가 엄청난 사회적 갈등을 야기할 수 있다. 따라서 임차권 보호라는 큰 흐름도 중요하지만 소유권과 임차권 보호의 경계선을 정확하게 설정할 필요가 있다. 일의 옳고 그름에 대한 다툼의 출발점은 옳고 그름을 구분하는 기준의 모호함인 경우가 많으며, 기준이 흔들리면 다툼이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임대차 3법에 대한 최근의 논의를 보며 떠올린 단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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