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관리소장들, 부당 간섭 보호제도에도 ‘무력감’

업체 소속돼도 고용불안 여전

살해 피해 소장이 근무하던 아파트에 추모 현수막이 걸려 있다. <고경희 기자>

[아파트관리신문=고경희 기자] 최근 인천 서구 모 아파트 관리소장이 관리 불신을 이유로 입주자대표회장으로부터 살해된 가운데, 피해 소장이 소속 위탁관리업체나 주택관리사협회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혼자 갈등을 해결하려고 애쓴 정황이 드러나 안타까움을 더했다.

공동주택관리법은 입주자대표회의 구성원이 관리소장의 업무에 부당 간섭을 하는 경우 지자체장에게 이를 보고하고 사실조사를 의뢰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고, 지자체장은 즉시 이를 조사해 부당 간섭 사실이 인정되는 경우 입주자대표회의에 필요한 명령 등의 조치를 해야 한다. 또한 대표회의는 부당 간섭 보고나 사실 조사 의뢰, 조치를 이유로 관리소장을 해임하거나 해임을 주택관리업자에게 요구하지 못하도록 정했다.

하지만 부당간섭 방지제도 실효성에 대해서는 의문이 이어지고 있다. 관리소장이 위탁관리업체에 고용돼 있지만 입주자대표회의가 실질적으로 인사권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인의 동료소장은 “대표회의가 관리업체에 전화해 소장을 바꿔달라고 하면 일자리를 잃게 된다”면서 피해 호소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토로했다.

이처럼 관리소장을 비롯한 관리직원의 선발, 급여나 근무조건, 업무에 대한 지휘감독권을 모두 입주자대표회의가 행사하고 있는 ‘무늬만 위탁관리’인 현 관리시스템이 관리소장의 고용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

지난달 열린 한국집합건물법학회 학술대회에서 법무법인 위민 김남근 변호사도 주제발제를 통해 “대부분의 주택관리업자는 주택관리사(보)를 비정규직으로 고용해 위탁관리계약이 종료되면 자동해고 되도록 취업규칙을 작성하고 있는 구조”라며 “입주자대표회의가 위탁관리업체와의 위탁계약을 해지하면 관리소장도 자동해고 되는 고용구조이다 보니, 관리소장이 대표회의의 부당 간섭에서 벗어나 전문성을 발휘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사용자, 피용자 보호의무 있어
“업체·협회에 피해 적극 알려야”

그럼에도 관리업계는 관리소장이 피해를 입는 경우 주변에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사용자는 피용자가 생명, 신체, 건강을 해치는 일이 없도록 물적 환경을 정비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마련해야 할 보호의무 또는 안전배려의무를 부담하고, 의무 위반으로 피용자가 손해를 입는 경우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책임도 부담하게 된다. 근로자 보호 의무를 부담하는 관리업체는 소장의 피해 회복을 위해 더욱 나서야 한다.

관리업체 관계자는 “소장이 피해를 입고 있음에도 오히려 대표회장이 회사에 소장을 교체하라고 요구할 때가 있다”며 “소장이 고충을 토로하기 힘들겠지만, 주변 증언만으로는 회사에서 도움을 주기 어려워 직접 회사에 피해 사실을 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소장이 피해를 보고할 경우 회사 차원에서 입주자대표회의 등에 면담을 요청하거나 다른 단지에 배치시키는 등 해결방안을 모색할 수 있음을 설명했다. 또 소장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다른 동대표들의 협조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대한주택관리사협회(이하 ‘주관협’)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주관협은 고문변호사 자문 및 고충처리팀과 회원권익위원회 구성으로 주택관리사 회원들의 고충을 해소하고 있다. 우선 시·도회, 권역별 회원권익위원회 또는 중앙회원권익위원회에서 고충을 접수 받은 후 현장에 방문해 필요 시 입주자대표회장 등에 면담을 요청하고, 관련 법 위반사실이 있을 경우 고소·고발을 하거나 소송지원을 하고 있다. 특히, 차기 협회장 후보들이 ‘갑질 신고센터’ 운영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만큼 주관협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고충 처리 역할을 강화해 사건 재발 방지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주관협 임한수 권익법제국장은 “협회에 고충민원을 신청했다면 도움을 줄 수 있었을 텐데 소장 혼자서 모든 걸 감당한 것이 마음이 아프다”며 “혹시 지금 현장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장이 있다면 혼자 참지 말고 협회와 주변 소장들에게 도움을 요청해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저작권자 © 아파트관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