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두 칼럼] 공동주택 및 집합건물의 신탁과 신탁회사의 역할

2025-11-06     김영두
김영두             한국집합건물진흥원 이사장 (충남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공동주택 및 집합건물의 구분소유자는 건물 관리에 관한 권리와 의무를 갖는다. 공동주택의 입주자 또는 집합건물의 구분소유자들로 구성된 관리단체의 구성원이 돼 총회나 관리단집회에서 의결권을 행사하며 공용부분의 유지관리에 필요한 관리비를 납부해야 한다. 이는 공동주택관리법 또는 집합건물법에 따른 당연한 법리다. 따라서 신탁된 건물의 구분소유자인 신탁회사 역시 이러한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신탁회사가 구분소유자로서의 역할을 다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신탁회사는 신탁계약의 당사자로서 실질적인 소유 및 관리 권한은 위탁자인 시행사에게 있다는 이유로 관리비 납부 의무를 시행사에게 미루거나, 입주민총회나 관리단집회에서의 의결권 행사를 시행사에게 포괄적으로 위임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신탁회사가 법적인 소유자임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관리 운영에는 관여하지 않으려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특히 관리비 부담 문제와 관련해 지난해 중요한 대법원 판결(대판 2022다233164)이 있었다. 이전에는 신탁원부에 관리비 등 부동산 보유에 따른 제반 비용은 위탁자(시행사)가 부담한다는 특약이 있는 경우 신탁회사는 관리단체(입주자대표회의 또는 관리단)에 대해 관리비 납부 의무를 부담하지 않는다는 하급심 판결들이 있었다. 그러나 대법원은 신탁원부의 이러한 특약은 신탁회사와 시행사 간의 내부적인 책임 분담 약정에 불과하며 대외적으로 구분소유자인 신탁회사가 관리단체에 대한 관리비 납부 의무를 부담한다고 판시했다. 이는 신탁계약의 내용을 이유로 관련 법률상 구분소유자의 의무를 면할 수 없음을 명확히 한 것이다.

판결에 따르면 신탁회사는 이제 신탁계약의 내용과 관계없이 입대의나 관리단에 관리비를 납부해야 한다. 이는 신탁회사가 단순히 관리비 납부 주체가 됨을 넘어 관리비가 적정하게 부과되고 집행되는지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감독해야 할 책임까지 부담하게 됨을 의미한다. 부당하게 관리비가 부과된다면 구분소유자로서 이의를 제기하고 시정을 요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의결권 행사 문제 역시 간과할 수 없다. 신탁회사가 구분소유자로서 의결권 행사를 시행사에 위임하는 것 자체는 가능할 수 있다. 그러나 시행사가 파산하거나 시행사의 의결권 행사가 전체 구분소유자의 이익에 반하는 부적절한 상황이 발생할 경우 문제가 된다. 이 경우 신탁회사는 위임을 철회하고 직접 의결권을 행사해 관리단체의 의사결정에 참여해야 한다. 하지만 많은 신탁회사가 이러한 상황에서도 의결권 행사에 소극적이어서 관리단체의 구성 자체가 지연되거나 왜곡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신탁회사가 신탁계약에 따라 등기부상 소유권을 취득한 이상 해당 공동주택이나 집합건물의 법적인 구분소유자라는 사실은 명백하다. 신탁재산의 관리자라는 지위가 공동주택관리법이나 집합건물법상 구분소유자로서의 지위를 부정하거나 약화시키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따라서 신탁회사는 다른 일반 구분소유자들과 마찬가지로 관련 법률에 따른 권리를 행사하고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신탁회사가 법적인 구분소유자임에도 불구하고 관리비 납부를 거부하거나 의결권 행사를 방기한다면 해당 건물의 관리는 필연적으로 부실해질 수밖에 없다. 이는 관리비 미납으로 인한 관리 서비스의 질 저하, 관리단체 구성 지연으로 인한 관리 공백, 나아가 건물 가치 하락으로 이어져 결국 모든 구분소유자 및 입주민에게 피해를 주게 된다.

더 이상 신탁회사는 법적으로는 구분소유자이면서 현실에서는 구분소유자가 아닌 것처럼 행동해서는 안 된다. 신탁계약에 따라 구분소유자가 됐다면 그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것이 법률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마땅하다. 신탁회사가 구분소유자로서 적극적으로 관리단체 활동에 참여하고 의무를 이행할 때 비로소 신탁된 공동주택과 집합건물도 제대로 관리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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