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형필 변호사의 판결일지] 관리인의 회계 투명성과 구분소유자의 알 권리

2025-11-07     권형필

최근 서울고등법원이 선고한 업무방해금지 등 청구 사건(2023나20503**)은 집합건물 관리의 핵심 원리인 회계의 투명성과 관리인의 보고의무를 실질적으로 구현한 대표적 사례로 평가할 수 있다. 이 사건은 단순히 구분소유자 간 분쟁을 넘어 관리인의 개인 계좌를 통해 관리비를 운용해 온 관행이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지, 또 그에 대한 자료제공 의무가 어디까지 미치는지를 명확히 한 판결로서 향후 수많은 관리단·입주자대표회의가 마주할 유사한 분쟁의 준거가 될 것이다.

▲사건 개요
사건 개요사건의 발단은 A상가 아파트의 전 관리인 B씨가 관리비·장기수선충당금·잡수익 등의 회계업무를 자신의 명의 계좌를 통해 처리했음에도 후임 관리단의 요청에 따라 중소기업은행 계좌 거래명세표를 인도하지 않은 것에서 비롯됐다. 원고인 A상가 아파트 관리운영회는 건물의 회계정산을 위해 위 계좌 내역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며 문서의 인도를 청구했고 1심은 이를 일부 인용했으나 피고가 항소하면서 분쟁은 장기화됐다.

▲법원의 판단

서울고등법원은 판결문에서 관리인은 구 집합건물법 제26조 및 그 시행령 그리고 관리규약에 따라 매년 1회 이상 구분소유자에게 회계보고를 해야 하고 이해관계인이 청구하면 보고자료의 열람 및 등본교부를 청구할 수 있다고 명시된 점을 근거로 들었다. 아울러 민법 제681조, 제683조의 수임인의 선관주의 및 보고의무 규정을 원용해 관리인은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로 업무를 수행해야 하며 회계처리 과정 전반을 객관적으로 입증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특히 법원은 피고가 “계좌가 자신의 명의이므로 개인거래 내역이 포함된다”는 항변을 배척했다. 관리비가 실질적으로 공동주택의 공용비용이며 그 운용이 개인의 재산행위와 분리돼야 한다는 점에서 명의가 누구든 회계에 사용된 계좌라면 관리단의 인수·인계 대상 서류로 봐야 한다는 것이 법원의 논리였다. 피고가 관리인으로 선출되기 이전에도 감사 및 경리로서 동일 계좌를 이용해왔다는 점, 그리고 송금 내역이 관리비 사용 명목으로 반복적으로 확인된 점 등을 종합해 법원은 거래명세표 전부를 인도할 의무를 인정했다.

▲소결
이 판결에서 주목할 대목은 법원이 단순한 문서인도 명령에 그치지 않고 간접강제(민사집행법 제261조)를 병행해 하루 50만원의 배상금 지급을 명한 점이다. 피고가 재판 진행 중에도 자료 제출을 거부하며 원고의 열람 요구를 일관되게 방해했다는 사정을 들어 법원은 “임의이행 가능성이 없음이 명백하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확정판결 이후 30일 내에 문서를 발급하지 않으면 매일 위반일수별로 금전배상이 누적되는 구조를 설정함으로써 판결의 실효성을 담보했다. 이러한 판단은 단지 한 건물의 내부회계 문제를 넘어서 집합건물법상 관리인의 법적 지위를 ‘수임인’으로서의 책임관계로 재확인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법원은 관리주체가 “입주자대표회의의 의결기구적 감독을 받는 집행기구”라는 규약 조항을 인용하며 관리인은 위임계약의 수임인으로서 선관주의의무뿐 아니라 보고·보관의무까지 진다고 했다. 즉 관리인이 개인 명의로 회계 계좌를 운용했더라도 그 금원이 공동재산과 관련된다면 그 계좌의 내역은 공용문서에 준하는 공개대상이라는 것이다.

더불어 법원은 피고의 주장처럼 “이미 관리실 전표와 전산 자료가 존재하므로 거래명세표는 불필요하다”는 항변도 배척했다. 전표에는 누락된 항목이 다수 존재하고, 일부 자료는 2019년 이전이 소실돼 확인되지 않았으며 제3의 회계업체에 저장된 전산 자료 역시 완전하지 않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결국 이 사건은 단순히 회계자료 열람권의 문제가 아니라 자료의 완전성과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한 관리단의 확인권을 인정한 사례로서 의미가 깊다.

이 판결은 “개인 명의 계좌라도 공용자금의 운용에 쓰였다면 그것은 더 이상 개인적 비밀영역이 아니다”라는 법원의 명제에 귀결된다. 관리인의 직무가 종료됐더라도 그 기간 중 발생한 거래내역은 인수·인계의 대상이며 이를 거부하는 행위는 공동체의 회계투명성을 해치는 불법행위로 평가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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