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환 칼럼] 우리 집 옥상의 중계기, 입주민 권리와 공동체 관리의 경계

2025-10-08     오정환
법무법인 화온 오정환 대표변호사

아파트에 거주하다 보면 옥상에 설치된 안테나나 통신 중계기 같은 설비를 보고 ‘나한테 불이익은 없을까?’ 하는 의문이 들 수 있다. 특히 최상층 입주민이라면 전자파 노출, 소음, 조망권 침해 등 생활의 질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민감한 문제로 체감이 크다. 그러나 정작 문제를 제기하려 하면 그 대상이 누구인지,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 명확하지 않아 당혹스럽다.

최근 인천지방법원은 옥상에 설치된 통신 중계설비와 관련해 입주민 일부가 제기한 철거 청구 및 손해배상 청구를 전부 기각했다. 핵심 쟁점은 이렇다. 입주자대표회의가 중계설비의 설치·관리 주체인지, 중계설비의 설치가 공동주택관리법상 신고하거나 허가를 받아야 하는지, 중계설비의 설치로 인해 입주민에게 실질적인 피해가 발생했는지였다.

이에 법원은 입대의가 직접적인 설치·관리주체가 아니라는 점, 중계설비의 설치는 전기통신사업법에 따라 설치된 것으로서 공동주택관리법상 신고하거나 허가를 받아야 하는 행위에 해당하지 않는 점, 그리고 분양 당시 입주자에게 해당 설비 설치 가능성이 고지된 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입주민의 청구를 기각했다.

무엇보다도 주목할 점은 분양계약서와 입주자모집공고의 역할이다. 이 사건에서 입주민들이 입주 당시 제공받은 계약서와 고지 문서에 ‘옥상에 중계기 등 설비가 설치될 수 있으며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법원은 이를 두고 입주민들이 사전에 해당 설비 존재 가능성에 대해 고지받았으며 일정한 수준의 동의가 있었다고 평가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전자파나 소음으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명확하다. 입주민 측이 주장한 전자파 유해성이나 소음 피해가 객관적으로 입증되지 않았을 뿐더러 단순한 체감상 불편함만으로 법적 손해를 인정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 반영된 셈이다. 결국 공공 인프라로서의 통신망 기능과 공동주택에서의 일정 수준의 공용 불편은 일정 부분 감내돼야 할 필요가 있다는 현실이 재확인된 것이다.

입대의의 법적 지위도 재확인됐다. 공동주택의 입대의는 공법적 성격이 혼재된 자치기구로 입주자들의 위임을 통해 관리·운영에 참여하는 주체다. 하지만 이 사건에서처럼 입대의가 통신설비의 설치나 관리에 있어 직접적인 행위 주체로 보기 어려운 경우에는 그에 따른 법적 책임 역시 일반 민사소송을 통해 묻기 어렵다는 점이 강조됐다.

이번 판결은 공동주택에서의 권리 행사와 그 한계에 대해 현실적인 기준을 제시한다. 아파트는 사적 공간이면서도 동시에 공공적 구조를 가진 집합건물이다. 때문에 입주민 개개인의 권리 보호뿐만 아니라 관리규약, 계약서, 공용 설비의 필요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법적 판단이 이뤄질 수밖에 없다. ‘이건 불편하다’는 정서적 기준만으로는 법적 구제를 기대하긴 어렵다는 점이 다시 한 번 확인된 것이다.

이번 판결은 공동주택의 일상적인 갈등에서 자주 등장할 수 있는 주제를 다루면서도 법적 책임과 권리 행사에 있어 구조와 절차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의미 있는 사례다. 공동체 안에서의 갈등은 감정으로 시작되더라도 법은 언제나 계약, 규약, 책임 주체라는 원칙으로 판단한다. 입주민과 관리주체 모두가 이번 결정을 통해 권리 주장과 관리 행위의 경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계기를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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