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관리사 자격 위한 시험에 기업회계가? 

현장 이슈: 주택관리사보 자격시험의 문제

2025-09-29     서지영 기자

기업 원가회계·건축 관련 등
실무와 괴리된 내용 많이 다뤄
관리실무 중심으로 개선 필요

제28회 주택관리사보 2차 시험이 20일 치러졌다. [아파트관리신문]

[아파트관리신문=서지영 기자] ‘소방의 날은 몇 월 며칠일까?’ 지난해 제27회 주택관리사보 2차 시험 중 ‘주택관리관계법규’ 주관식으로 나온 문제다. 정답은 ‘11월 9일’로 화재 등 긴급신고 번호인 ‘119’를 통해 유추해 볼 수 있고 공동주택관리 관련 법인 소방기본법에 나오는 내용이다. 다만 실무와는 크게 관련 없는 내용으로 당시 많은 응시생이 당혹감을 느낀 문제다. 

주택관리사보 국가자격시험은 공동주택의 부대시설·복리시설 등 공용부분을 유지·관리·보수하고 이에 필요한 경비를 관리하는 관리사무소장이 되기 위해 치러야 하는 시험으로 1990년부터 격년제로 시행되다 2006년부터 매년 1회 시행되고 있다. 

정년이 따로 없는 장점 등으로 주택관리사가 은퇴 후 제2의 직업으로 주목받으면서 해마다 자격시험 응시자수도 늘고 있지만 과다 배출 부작용에 대한 우려 탓에 합격인원이 1600명 수준으로 한정돼 있어 경쟁률이 치열하고 문제 난이도 또한 높은 편이다. 올해 제28회 1차 시험에서도 1만8683명이 응시해 2952명이 합격하면서 15.80%의 낮은 합격률을 보였다. 

지난 20일 서울, 부산 등 9개 지역의 각 시험장에서 치러진 제28회 주택관리사보 2차 시험에 총 3791명이 응시한 것으로 확인되는 가운데 예년보다 높은 응시자 수로 합격률은 최근 몇 년간 중 가장 낮을 전망이다. 

이처럼 높은 경쟁률 속에 주택관리사 자격시험이 실무역량 배양보다 응시자를 많이 떨어뜨리기 위한 문제 위주로 출제되고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자격시험은 실제 업무 수행을 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자를 선발하는 시험이 돼야 하는데 갈수록 실무와 동떨어진 시험이 되고 있어 응시자들의 불만을 사고 있는 것. 

특히 1차 시험의 회계원리, 공동주택시설개론, 민법 과목은 공동주택 관리업무와 관련 없는 내용을 많이 다루고 있어 개선 요구 목소리가 높다. 

시설개론 시험 범위는 일반건축구조(목구조·특수구조 제외)와 철골구조, 홈네트워크를 포함한 건축설비개론 및 장기수선계획 수립 등을 위한 건축적산을 포함하고 있는데 주택관리사 업무인 시설 관리보다는 시공 쪽에 많이 치우쳐 있고 회계원리는 공동주택 회계보다 기업회계에 가까워 수험생들이 합격 후 실제 현장에 배치됐을 때 그간 공부한 것을 거의 활용하지 못하고 다시 관리를 위한 공부들을 새롭게 하게 된다. 올해 시설개론 시험에 나온 특정 구조용 강재의 항복강도나 벽돌쌓기 방법, 매립형 경량천장 공법의 종류라던가 회계원리 시험에 나온 기업의 재고자산 계산, 기본주당순이익 같은 것은 굳이 주택관리사가 알지 않아도 되는 주제인 것이다. 

2년 전 시험에 합격해 현장에 배치된 김경주 주택관리사는 “시험에서는 철저히 기업회계 중심으로 문제가 나오지만 현장에서는 수납 내역, 관리비 집계, 장기수선충당금 적립 같은 특수한 회계 항목과 관리비 부과·징수, 예치금, 잡수입 처리 같은 게 더 중요하다”며 “시험 공부를 하면서 기업회계 관련 분개, 손익계산서, 재무상태표 등에만 매달리다 막상 현장에 와서는 어느 항목을 어느 계정과목에 넣을지부터 막막해져 처음부터 다시 공부해야 했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시험을 완전히 공동주택 회계로 바꾸기는 어렵겠지만 실제 전표 처리, 관리비 산정, 장기수선충당금 적립 방식 등 아파트 회계 실무에 맞게 보완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의견을 전했다. 

지난해 시험에 합격해 최근 사업장에서 근무를 시작한 표희연 주택관리사는 “관리사무소에서 사용되는 ERP 프로그램 활용을 통한 세금계산서 발행이나 이메일 전송 등에 대해 공부했으면 더 도움이 됐을텐데 쓸데없는 원가회계를 왜 배웠을까 싶다”며 “시설개론도 잘 일어나지 않는 지진 관련이나 공학적인 개념보다 실제 아파트에 빈번한 누수 관련 이론을 배우는 것이 현장 근무에 더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문서작성 요령, 입주민 응대요령, 계약서 작성 시 주의사항, 노무 관련 등 실제 업무와 더 밀접한 내용들이 시험과 수험서에서 더 다뤄져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의 의견도 다르지 않다. 김정열 공인회계사는 “현재 회계처리 등과 관련된 시험문제는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K-IFRS)을 적용해 출제하고 있는데 공동주택회계처리기준 적용으로 문제가 변경돼야 하고 재무회계와 원가회계 모두 범위에 있지만 사실상 원가회계는 공동주택에서 필요 없어 빼는 것이 낫다”며 “K-IFRS는 상장사들에게 적용되는 기준이라서 아파트 실무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고 지적했다. 

한 관리회사 임원은 “실제 관리업무 내용과 맞지 않는 자격시험의 고질적인 문제는 주택관리사보 자격시험 출제위원이 관리현장을 잘 모르는 건축학과 교수 등으로 구성돼 있기 때문”이라며 “현장과 실무를 잘 아는 전문가로 출제위원을 구성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