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형필 변호사의 판결일지] 공동주택 위탁관리업체 선정 취소와 손해배상 책임

2025-09-26     권형필

공동주택의 위탁관리업체를 선정하는 입찰 절차에서 낙찰자가 결정된 후 입주자대표회의가 이를 일방적으로 철회하고 재입찰을 진행한 사안에서 법원은 낙찰자 지위를 임의로 박탈할 수 없으며 계약 체결 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 책임을 져야 한다고 판시했다. <수원지방법원 2024나511**>

▲사건 개요
이 사건은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가 위탁관리업체를 새로 선정하기 위해 경쟁입찰을 실시한 과정에서 비롯됐다. 입찰공고와 현장 설명회에서 구체적인 관리업무 범위와 조건이 제시됐고 여러 업체가 참여해 입찰서를 제출한 뒤 적격심사위원회의 평가를 거쳐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업체가 낙찰자로 결정됐다. 입대의는 공동주택관리정보시스템(K-apt)에 해당 업체가 낙찰자로 선정됐다는 사실과 낙찰일, 평가점수, 계약금액 등을 공개적으로 게시했다. 그러나 이후 일부 입주민들이 입찰 공정성에 관한 의혹을 제기하고 낙찰 철회를 요구하자 입대의는 해당 업체에 낙찰 사실을 유선 또는 서면으로 통보하지 않은 상태에서 입찰 결과를 무효화하고 새로운 입찰을 실시해 다른 업체를 낙찰자로 선정했다. 이에 최초 낙찰자로 결정됐던 업체는 자신은 적법하게 낙찰자로 결정됐음에도 입대의가 자의적으로 낙찰 결정을 철회함으로써 계약체결이 좌절돼 손해를 입었다며 위탁수수료 상당액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재판부의 판단

법원은 우선 낙찰자 결정의 효력 발생 시점과 관련해 입찰공고에 적격심사 후 최고득점 업체를 낙찰자로 결정하고 그 사실을 전자사이트에 등록한 후 유선 또는 문서로 통보한다고 기재돼 있었던 점, 입대의가 실제로 적격심사를 거쳐 해당 업체를 낙찰자로 결정한 사실을 K-apt에 ‘10개 업체 참가, 적격심사 결과 해당 업체 낙찰’이라고 공표한 점 등을 종합할 때, 낙찰자 결정은 이미 외부적으로 확정됐으며 이후의 통보는 단지 계약체결 의무 강제를 위한 부수적 절차에 불과하다고 봤다. 따라서 입대의가 낙찰 사실을 별도로 통보하지 않았다고 해 낙찰자 지위의 성립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또한 계약의 주요 내용이 확정되지 않았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입찰공고와 현장 설명회에서 위탁관리 업무의 범위와 조건이 구체적으로 특정됐고 각 업체가 그에 맞춰 입찰서와 관련 서류를 제출했으며 적격심사까지 마친 이상 계약의 주요 내용은 사실상 확정됐다고 봐 해당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나아가 입대가 관리규약상 기존 관리업체와의 재계약을 제한하는 규정을 유추 적용해 낙찰 결정을 철회할 수 있다고 주장한 부분에 대해서는 해당 규정은 ‘재계약’의 경우를 전제로 하는 것으로 본건과 같이 ‘경쟁입찰을 통한 신규 선정’에는 적용될 수 없으며 설령 입찰공고에 ‘입찰 이전 및 이후에 어떠한 이의도 제기할 수 없다’라는 문구가 있었다 하더라도 이는 입찰공고인의 위법한 결정에 대한 불복까지 배제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없고 그렇게 본다면 민법 제104조에서 정한 불공정한 법률행위에 해당해 무효라고 봤다. 또한 입찰 공정성에 대한 여러 의혹들이 형사절차 등에서 객관적으로 확정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일부 입주민들의 철회 요청이나 입주민 과반수의 결의만으로는 적법하게 이뤄진 낙찰 결정을 취소할 정당한 사유가 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또한 입대의는 위탁관리계약이 민법 제689조상 위임계약의 성질을 가지므로 당사자는 언제든지 해지할 수 있는데 아직 계약이 체결되기 전인 낙찰 결정 단계에서조차 이를 철회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위탁계약 체결 이후에 해지할 수 있는지 여부와 이미 낙찰자로 결정된 업체와 계약체결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데 따른 손해배상 책임은 별개의 문제라고 전제하면서 낙찰 후 계약체결을 거부하는 것은 경쟁입찰을 통한 공정한 사업자 선정 제도의 신뢰를 무너뜨려 선의의 입찰참가자에게 예측 불가능한 손해를 입히게 되므로 허용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소결
이번 판결은 공동주택 위탁관리업체 선정절차의 법적 구속력과 낙찰자 보호의 중요성을 분명히 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입대의의 자치적 의사결정권이 존중돼야 함은 물론이나 그것이 입찰의 공정성과 예측 가능성을 훼손하고 경쟁입찰 제도를 형해화하는 방식으로 행사돼서는 안 되며 낙찰자 결정은 단순한 행정절차가 아닌 법적 책임이 수반되는 계약 전 단계의 행위라는 점을 환기시켰다는 점에서 앞으로 공동주택 관리업계의 입찰 운영 및 분쟁 해결에 중요한 기준점이 될 것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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