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임 철회, 인감증명서까지 요구할 수 있을까?
정연채 변호사의 집합건물 법률 Q&A 100
[질문]
관리단집회 결의를 위해 위임장을 모으는 과정에서 처음에는 위임할 때 신분증 사본만 제출하면 가능하다고 안내했다. 그런데 일부 세대가 위임 철회를 요청하자 주최 측이 갑자기 “이번에는 인감증명서를 반드시 첨부해야 한다”고 조건을 강화했다. 이렇게 위임할 때보다 철회할 때 더 까다로운 요건을 요구하는 것이 과연 정당할까?
[답변]
최근 한 건물에서는 관리단집회 결의를 앞두고 ‘위탁관리업체 변경’ 안건과 관련해 위임장을 징구하는 과정에서 논란이 발생했다. 일부 세대가 이미 제출한 위임을 철회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는데 주최 측은 돌연 “위임 철회 시 인감증명서를 첨부해야 한다”는 새로운 요건을 추가로 안내한 것이다. 그러나 최초 위임장 제출 당시에는 단순히 신분증 사본만으로도 충분했기 때문에 과연 이러한 요건 가중이 적법한지 의문이 제기된다.
민법과 집합건물법 체계에서 위임 철회는 원칙적으로 위임과 동일한 절차·방식으로 가능하다고 해석된다. 대법원 역시 관리단집회에서 관리인 선임 결의가 성립하기 전까지는 위임 의사표시를 철회할 수 있으며 규약이나 정관에 특별한 제한이 없는 한 반드시 일정한 형식에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판시했다(대법원 2008. 8. 21. 선고 2007다83533 판결). 즉 위임이 간단한 신분확인 절차(예: 신분증 사본 첨부)로 가능했다면 철회 역시 동일한 수준의 절차로 인정돼야 하는 것이다.
위임 철회 요건을 위임 요건보다 가중하면 철회의 자유를 실질적으로 제한하게 된다. 인감증명서 첨부와 같은 과도한 요건은 사실상 철회를 지연시키거나 불가능하게 만들어 의결권 행사 자체를 왜곡할 우려가 있다.
유사한 사건에서 대법원은 주주의 의결권 행사를 현저히 곤란하게 하는 이사회 결의의 효력은 무효라는 입장을 취해 왔다(대법원 2011. 6. 24. 선고 2009다35033 판결). 이를 관리단집회에 유추 적용하면 별도의 합리적 근거 없이 철회 절차를 가중하는 것은 위법·무효로 평가될 가능성이 크다.
위임 철회를 위임보다 더 무겁게 제한하는 것은 의결권 행사 자유를 침해할 위험이 크므로 위법·무효로 판단될 수 있다. 관리단은 합리적 이유 없이 절차적 장벽을 높여서는 안 되며 입주민은 자신의 의사표시를 명확히 입증할 수 있는 방법 예를 들어 신분증 사본 첨부, 내용증명 발송을 통해 철회의사를 표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결국 위임 철회는 위임과 동일한 수준의 절차로 가능하며 불필요하게 가중된 요건은 법적 효력이 부정될 수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법무법인 산하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