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속 고립된 섬, 맹개마을

[주말에 가볼까?] 485. 경북 안동시

2025-08-28     이시우
맹개마을에 들어가기 위해 타야하는 트랙터

첩첩산중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어느 깊은 골짜기 강을 건너야만 닿는 마을이 있다. 오직 물줄기를 가르고 나아가는 소형 모터보트, 그리고 큰 바퀴를 자랑하는 트랙터만 이 강을 오갈 수 있을 뿐이다. 요즘 같은 세상에 그 흔한 다리 하나 없다는 뜻이다. 최근에서야 징검다리 하나가 생겼을 뿐이다. 접근의 불편함을 매력으로 삼는 이곳은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가송리에 자리한 맹개마을이다.

앞으로는 낙동강이, 뒤로는 청량산을 비롯한 백두대간의 여러 봉우리가 감싼 이곳은 육지 속 섬처럼 고립된 형태를 띤다. 사람이 살아가기에 쉽지 않은 환경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 일대의 풍경만큼은 놓치기 아까울 정도로 아름답다. 조선 시대의 대학자 퇴계 이황조차 친구에게 남긴 문장에 언급했을 정도로 빼어난 절경을 선사한다.

1980년대 초까지 맹개마을에는 네다섯 가구가 살았을 뿐이었다. 그마저도 교통, 전기, 상하수도 시설이 열악했던 탓에 하나둘 시내나 대도시로 떠났고 마을은 방치되다시피 했다. 버려졌던 마을에 다시 사람이 찾아온 것은 약 20년 후의 일이다. 농업회사법인 ‘밀과노닐다’의 김선영 대표, 박성호 이사 부부가 이곳으로 귀농해 밀과 메밀 농사를 시작한 것이다. 당시에는 허허벌판에 쓰러져가는 집 두 채만 있었다지만 부부는 이 땅을 훌륭히 가꿔냈다.

현재 맹개마을은 직접 재배한 유기농 밀로 소주를 빚는다. 이곳에서 출시한 ‘안동 진맥소주’는 한국 최초의 밀소주다. 물론 고문헌에 따르자면 그 역사는 훨씬 깊다. 조선 초기의 학자 김유가 쓴 조리사 ‘수운잡방’에 진맥소주의 주조법이 남아 있으니 말이다. 맹개마을은 수운잡방에 기록된 주조법을 토대로 밀소주를 복원했고 그게 오늘날의 안동 진맥소주가 되었다.

맹개마을에서 생산하는 진맥소주 라인업

진맥소주의 인기는 대단하다. 전통주 애호가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을 뿐 아니라 일부 물량은 해외 유명 식당에 납품되기까지 한다. 국내와 국제 대회에서 다수의 상을 휩쓸며 국제적인 인지도를 끌어올리는 중이기도 하다. 2024년 맹개마을은 ‘한국관광의 별’(문화체육관광부·한국관광공사), ‘찾아가는 양조장’(농림축산식품부)에 선정되며 더욱더 힘찬 날갯짓을 하고 있다.

맹개마을은 진맥소주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는 양조장 투어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예약자에 한해 진행되는 이 프로그램은 트랙터 타기 체험, 시음, 양조장 시설 견학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약속된 장소에 도착하면 맹개마을에서 트랙터가 마중을 나온다. 수심이 깊은 것은 아니지만 트랙터를 타고 강을 건너는 체험은 정말이지 독특하다. 트랙터 바퀴가 강물에 닿을 때 튀는 물방울, 덜컹거리는 소리가 긴장감을 즐거움으로 바꿔준다.

맹개마을에 도착하면 이 공간에 관한 설명, 안동의 풍경과 낙동강에 얽힌 여러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다음으로는 맹개마을에서 빚는 밀소주 ‘진맥소주’에 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농사를 짓는 중 밀의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 시작한 소주 주조가 여기까지 온 것이라는 이야기에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마을 내 토굴에서 오크통 숙성중인 진맥소주

이곳에서 빚은 소주를 직접 시음해 보는 시간도 갖는다. 대중적으로 가장 인기 있는 소주인 40도 진맥소주, 세계 각지에서 열리는 주류품평회에서 다수의 상을 휩쓴 53도 진맥소주는 더 자세히 살펴보기를 바란다. 미국에서 수입한 버번 캐스크에 소주를 넣고 숙성한 ‘시인의 바위’는 그동안 경험했던 것과는 다른 맛과 풍미를 내세운다. 같은 재료를 사용해 술을 빚었는데도 색다른 맛과 향이 느껴진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면 틀림없이 전통주의 매력에 푹 빠질 것이다.

속세를 벗어나 하룻밤 쉬어가기에 이만한 곳이 또 있을까. 맹개마을은 소수의 방문객이 고요한 하룻밤을 누릴 수 있는 숙소를 운영하기도 한다. 찾아오기 어렵다는 점을 역이용해 그 누구도 쉽게 방문할 수 없는 숙소를 구현한 점이 흥미롭다. 물 흐르는 소리,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말고는 아무런 잡음도 들려오지 않는다. 맑은 날 밤이면 하늘을 수놓는 별천지를 만나볼 수 있는 것은 당연하다.

맹개마을은 투숙객을 위해 진맥소주 한 잔을 곁들인 저녁 식사를 별도로 판매하기도 한다. 식사는 한식 요리들을 코스 형태로 내어준다. 맹개마을이나 주변 지역에서 생산된 식재료를 활용해 나물무침, 장아찌류 등을 제공한다. 특히 직접 재배한 메밀로 만든 묵과 맹개마을 내에서 채집한 표고, 돌나물 등도 꼭 맛보도록 하자. 안동찜닭, 간고등어 등 안동의 유명 요리와 돼지고기 바비큐도 함께 내어준다. 마음에 드는 소주 한 병을 구매해 일행과 하룻밤을 즐기는 것도 맹개마을을 제대로 경험하는 방법이다.

마을 주변에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고택과 서원, 명소가 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농암종택이다. 맹개마을에 들어가기 직전, 낙동강 자락에서 마주치게 되는 바로 그 고택이다. 이 고택은 1504년(연산군 10년) 임금의 노여움을 사 안동으로 유배된 농암 이현보의 종택이다. 지금도 농암 선생의 후손이 집을 지키고 있으며 한옥스테이로 운영 중이다.

교육의 장이었던 서당, 퇴계를 기리는 사원으로 구성된 도산서원 전경

퇴계 이황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고 싶다면 도산서원으로 향하자. 한양 생활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온 퇴계 선생이 학문하며 직접 제자를 가르치기 위해 설립한 도산서당이 중심인 공간이다. 도산서당 옆에 퇴계를 기리는 사당이 추가로 세워져 오늘날의 서원 형태가 갖추어졌다. 조선 후기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 당시에도 정리 대상에서 제외됐을 정도로 중요도가 높은 유적이다.

안동호 위를 거닐어 볼 수 있는 선성수상길

낙동강과 안동호의 절경을 제대로 누리고 싶다면 선성현문화단지가 제격이다. 안동댐 건설로 수몰된 옛 성선현 관아 건물을 복원해 둔 곳이다. 한복 체험, 유교 문화 체험, 전통 공예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민속놀이를 즐기기에 좋은 마당이 있다. 안동호 쪽으로는 물 위를 걸어갈 수 있는 1km 길이의 선성수상길이 이어진다.

글·사진: 이시우(여행작가)
출처: 한국관광공사 대한민국구석구석(korean.visitkore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