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의 청춘! 슈퍼 어싱 성지, 태안 기지포해수욕장
[주말에 가볼까?] 477. 충남 태안군
발 도장을 찍으면 파도가 밀려와 흔적을 지운다. 이따금 무게를 실어 발자국을 꾹 남기면 바람이 슬며시 모래로 채운다. 맨발 걷기는 열풍처럼 불어와 대중화됐지만 ‘어싱’이라는 단어로 부르니 지구와 공존하는 듯 색다르다. 땅에 맨발을 디디며 건강을 되찾는 시간, 태안으로 가보자.
‘어싱(Earthing, 접지)’은 땅(Earth)과 진행형(ing)의 합성어로 맨발을 접촉해 지구의 에너지를 받아들이는 행동을 말한다. 대표적인 방법이 맨발 걷기다. 몸속 정전기는 땅으로 내보내고 땅의 음이온을 신체로 받아들이는 것. 수분이 있는 흙길이나 바닷가 모래해변에서 걸으면 어싱 효과가 높아진다고 해서 ‘슈퍼 어싱’이라 부른다. 바닷모래는 물기와 염분을 함유해 음이온 흡수가 빨라 체내의 활성산소를 배출하는데 효과가 크다는 지론이다. 효과를 차치하더라도 남녀노소 오감을 깨우는 해변 맨발걷기는 말 그대로 힐링이다.
양말을 훌러덩 벗어던지면 어디든 슈퍼 어싱이 가능하지만 태안 기지포탐방센터는 세족대와 신발 보관대 등을 갖추면서 탐방객의 편의성을 높였다. 슈퍼 어싱 구간은 총 1.89km, 기지포탐방센터를 기착점으로 두 개의 코스로 나뉜다. 센터를 중심으로 삼봉해변까지 1코스(1.09km), 꽃지해변 방향으로 내려가는 창정교까지 2코스(0.8km)다. 왕복 2시간 정도면 완주 가능한 가벼운 산책코스다. 국내 유일한 해안국립공원을 걷는 데다 170.3km의 태안해변길 가운데 백미로 꼽히는 ‘노을길’을 포함한 구간이니 더욱 특별하다. 백사장 폭도 상당하다. 썰물과 밀물 때의 평균값은 폭 200m정도. 향토학자는 명사이십리라 부른단다.
갯벌의 올록볼록한 물자국 위주로 밟으면서 지압 효과도 누린다. 혹여 바닷가 생명들을 밟는 게 염려된다면 걱정 마시라. 대부분 황해비단고둥인데 껍질이 무척 단단해 부서지거나 죽지 않는다는 이광훈 문화관광해설사의 전언이다.
파도가 발목부터 훑고 발가락 사이로 빠져나간다. 모래를 데리고 왔다, 포말을 남기는 틈바구니에서 푹신한 모래감촉과 끼룩끼룩 괭이갈매기의 날갯짓, 파도소리, 딱딱한 조개껍질이 오감을 자극한다. 호미와 양동이를 들고 해변 곳곳을 서성이는 해루질하는 사람들도 만난다. 해질녘이면 쪽빛 노을 비단을 층층히 감은 바닷물결에 마음이 노글노글하다. 모래위에 남긴 발자국은 이내 파도 지우개로 지워진다. 그래서 숱한 발자국이 다녀가도 또 새로운 ‘어싱’의 무대가 펼쳐지는 걸까. 바짓단을 걷어 올리고 해변을 걷는 것은 낭만의 상징이었다. 여기에 건강까지 챙긴다니 마다할 일이 없다.
삼봉해변을 향해 슈퍼 어싱했다. 세 개의 바위 봉우리로 이뤄져 있어 삼봉이라 부른다. 옛날 수전노였던 어부가 병든 딸을 돌보지 않고 돈 모으기에만 급급했단다. 딸 셋이 모두 병을 얻어 죽었고 한 맺힌 딸 셋의 무덤이라는 전설이 전해진다. 삼봉 옆에 무덤 모양의 바위산은 아내의 화신이다. 바위에 뚫린 구멍은 수전노 어부를 데리고 승천한 용이 나온 ‘용난 구멍’이라고 불린다. 제일 왼편 ‘갱지동굴’은 해식동굴을 배경으로 한 사진스폿이니 놓치지 말자.
태안은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다. 해안선 길이가 약 559km로 서해의 독도인 격렬비열도를 포함해 119개의 섬을 가졌다. 이 길 따라 파도길, 솔모랫길, 노을길, 샛별길, 바람길 등 7코스가 조성됐는데 해변엔 여지없이 길이 나 있다. 기지포해수욕장을 시종점으로 걷고 싶은 만큼, 슈퍼 어싱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걸음마다 풍기는 갯내음은 서곡일 뿐 넓게 드리운 이국적인 모래 언덕이 탄성을 자아낸다.
방풍림 역할의 곰솔도 옆구리에 끼고 걷는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해변가와 안쪽 곰솔 군락의 모양이 다르다. 본디 소나무는 극양식물 즉 태양을 바라보며 자라는데 해변가 소나무는 방해 없이 자기 멋대로 가지를 치지만 군락으로 들어가면 아래 가지를 다 떨어트린 채 정갈하게 자란다. 이웃한 소나무와 공생하는 자연의 섭리다.
걷다보면 뾰족한 연필로 쓰윽 눌렀을 것 같은 크기의 구멍과 주변에 모래알이 발견된다. 이를 경단이라 부른다. 달랑게 혹은 염랑게가 집을 짓고 먹이를 섭취하는데 경단은 모래에서 유기물을 빨아들이고 뱉어낸 흔적이다. 수분이 빠지고 햇볕에 말라 가벼워진 모래를 바람이 내륙으로 데려간다. 모래알 크기가 0.7mm라면, 경단은 0.17mm다. 해안사구는 자연 모두의 합작품이라 할 수 있다. 2월부터 5월까지 북서풍이 불어 모래를 살찌우고 6월부터 한여름엔 동남풍이 불어 태풍과 폭풍으로 모래를 싣고 나간다. 이런 수요와 공급이 적절하게 조화돼 지금과 같은 두께를 유지하는 것이다. 다양한 지질환경은 자연학습장이 된다. 갯완두, 갯쇠보리, 갯그령 같은 식물과 멸종 위기종 표범장지뱀이 서식한다.
이제 국내 3대 낙조명소로 꼽히는 꽃지해변을 향해 걷는다. 붉은 햇덩이가 할미, 할아비 바위 사이로 떨어질 때를 기다린다. 꽃지해수욕장은 올해까지 7회 연속 ‘한국관광 100선’으로 선정된 명소이자 ‘대한민국 정원 태안’ 슬로건에 걸맞은 바다정원을 품고 있다. ‘태안 세계튤립꽃박람회’가 이곳에서 열리는데 세계적인 권위의 국제원예생산자협회(AIPH)로부터 세계 5대 튤립축제 중 하나로 인정받아 매년 수십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다.
이쯤 되면 너른 바다 담은 밥상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배가 든든하면 풍경도 달라지는 법. 태안의 향토음식으로 손꼽히는 우럭젓국을 놓칠 수 없다. 탕거리로 이름난 우럭을 꾸덕꾸덕 말렸으니 그 진한 맛이 더 하다. 두부와 무를 넣어 뽀얗게 우려낸 국물을 떠먹는 순간 속은 무장해제다.
글·사진: 길지혜(여행작가)
출처: 한국관광공사 대한민국구석구석(korean.visitkorea.or.kr)